지금 덕수궁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 두 가지

시민기자 박분

Visit632 Date2019.10.28 13:44

덕수궁에는 궁궐의 전각들과는 모습이 다른 서양식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이 두 곳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맞이해 대규모 기획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을 열고 있다. 덕수궁관에서 지난 10월 17일부터 열린 광장 1부 전시는 1900년~1950년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전시는 ‘의로운 이들의 기록’, ‘예술과 계몽’, ‘민중의 소리’, ‘조선의 마음’ 등 4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전시된 사군자 그림 ⓒ박분 

전시된 사군자 그림 ⓒ박분

전시장에 들어서면 매화와 난, 대나무 등이 그려진 ‘사군자’ 그림들과 먼저 만나게 된다. 대한제국기 내부대신을 역임한 민영환이 자신의 명함에 쓴 유서(복제본)와 그가 자결한 방에서 자라났다는 대나무를 그린 양기훈의 ‘혈죽도’도 선보이고 있다.  

19세기 한반도는 제국주의에 혈안이 된 세계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격변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재산을 독립운동에 모조리 바쳐 말년을 가난하게 보냈던 사대부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으니 의병 출신 화가인 박기정(1874∼1949)과 김진우(1882~1950)가 그들이다. 특히 ‘설중매'(1933)를 그린 박기정은 오로지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사군자를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폭의 그림 같아 보이는 ’설중매‘는 12폭 병풍에 그려진 대작으로 볼수록 고결한 기품이 느껴진다.

전시장에는 해설사가 있어 자세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박분
전시장에는 해설사가 있어 자세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박분

유럽에서 미술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대나무를 널리 알린 이응노(1904~1989)의 작품, ‘대나무’(1971)앞에서 “절개와 의로움을 상징하는 사군자는 마음의 다짐과 수양이며 우정의 징표이고,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조선후기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린 우국지사 초상 연작들 ⓒ박분 

조선후기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린 우국지사 초상 연작들 ⓒ박분

조선 후기의 초상화가 채용신(1848~1941)이 그린 우국지사 초상 연작도 눈길을 끈다. 최익현, 전우, 고능선 등 우국지사들의 초상이 차례로 보인다. 채용신은 고종을 비롯해 왕의 어진을 많이 그렸지만 1906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로는 낙향해 우국지사의 초상화를 그렸다. 특히 상복 차림의 ‘전우 초상’(1920)은 각별함을 더한다. 전우(1841~1922)는 을사늑약 오적을 처단할 것을 상소했던 우국지사로 이 작품은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 상복을 입고 3년 상을 치르던 때의 모습을 담은 초상이다.

     근대문학도서를 마나볼 수 있는 '예술과 계몽' 전시실 ⓒ박분 

근대문학도서를 마나볼 수 있는 ‘예술과 계몽’ 전시실 ⓒ박분

근대문학도서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예술과 계몽’전시실이다. 3·1운동 이후 창간된 문학 동인지 <백조> 창간호(1921)를 비롯해 <창조> <폐허’> <개벽> 등 다양한 잡지와 소설, 시집들이 전시장 복판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1920년부터 1930년대 전반기에는 인쇄와 출판 사업이 활발해졌다. 조선총독부의 ‘문화 정책’ 일환으로 언론, 출판, 교육의 장이 어느 정도 열렸던 것이다. 비록 철저한 검열이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 종류의 도서들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됐다.

   이종명의 영화소설 <유랑> ⓒ박분 

이종명의 영화소설 <유랑> ⓒ박분

전시장에는 미술 작품뿐 아니라 근대기 신문과 잡지, 문학, 연극과 영화 자료 등 다양한 매체들이 전시돼 있어 역동적인 한국의 근대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도서에는 표지화와 삽화를 그린 화가들의 이름도 명시돼 있어 도서출판과 계몽운동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금서였던 아동용 교과서 ‘유년필독’(1907)은 현채가 저술하고 안중식이 삽화를 그렸다. 최남선의 ‘조선유랑가’(1928)는 김창섭이 장정(裝訂 책을 꾸밈)했고, 이종명의 ‘영화소설 유랑’(1928)은 임화가 장정했다.

   전근대기에 쓰인 활판 인쇄기 ⓒ박분 

전근대기에 쓰인 활판 인쇄기 ⓒ박분

전근대기에 널리 쓰인 활판 인쇄기도 전시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1883년 박영효, 김옥균에 의해 관 주도의 출판기관 박문국이 설치되었고 이곳에서 최초의 납활자 인쇄본 신문인 한성순보가 발간된 바 있다.

    

장민승 작가의 영상 설치물 ‘미상(未詳)’ ⓒ박분

장민승 작가의 영상 설치물 ‘미상(未詳)’은 어두운 공간에서 조금은 신령스럽기도 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등록된 576명의 옥인들이 대상이다. 단지 삼일만세운동에 함께했다는 죄목으로 일제에 의해 체포돼 감옥에 갇힌 평범한 양민들이다. 이름 없는 독립지사의 모습들이 ​명멸하는 불빛처럼 시야에서 보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암울한 시대에 고단한 삶을 살아야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처연한 음향과 함께 이들의 넋을 위로하듯 향을 피운 연기가 영상에 자욱이 깔리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 덧붙여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 이 공간을 통해 역사적으로 특별히 기억되지 못한 그들의 넋을 기리고 극락에 가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아트존 ⓒ박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아트존 ⓒ박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아트존에는 전시 기념품 코너가 마련돼 있다. ‘광장’을 주제로 집필한 단편 소설 7편을 묶은 소설집 ‘광장’을 비롯해 전시를 기념한 엽서와 숄더백 등 다양한 기념품이 준비돼 있어 둘러봄직하다.

광장 1부 전시는 19세기 말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격동의 시대에 ‘의로움’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2020년 2월 9일까지 진행된다.

  덕수궁 석조전 ⓒ박분 

덕수궁 석조전 ⓒ박분

유럽 궁전의 건축 양식을 따 근대의 멋을 듬뿍 담고 있는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전시실에서는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한창이다. 백여 년 전 대한제국 황실의 식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이다.

서양 식문화 도입으로 인한 황제의 수라상 변화와 경축일 잔칫상에 올린 음식의 변화상을 통해 대한제국이 지향한 근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개항, 새로운 물결, 대한제국 선포와 변화의 시작, 황제의 잔칫상,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 대한제국 국빈 연회 음식, 황실 연회로의 초대로 나뉜다.

   안중식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조일통상장정 체결 기념연회도' ⓒ박분 

 안중식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조일통상장정 체결 기념연회도’ ⓒ박분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초입에 채색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조일통상장정 체결 기념연회도’(1883)이다. 일본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여 개최된 연회를 그린 것으로 안중식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그림 속 연회상차림은 한국 전통 상차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식탁 가운데 큰 그릇에 음식을 높게 괸 모습은 한식 상차림에 따른 것이나 참석자들 앞에는 서양 식기를 배치해 이채를 띤다. 1876년 일본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한 조선은 개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양과 교역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자 새로운 문화가 밀려들어왔다.

    서양식기들이 전시된 모습 ⓒ박분 

서양식기들이 전시된 모습 ⓒ박분

기둥에 금박을 입힌 화려한 방으로 들어서자 서양식 식기들이 즐비하다. 어여쁜 찻잔세트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접시들이 당시 귀빈용 식기임을 짐작케 한다. 1895년 궁내부의 부속기관으로 진선사를 신설했다. 황실의 수라와 연회를 관장하는 진선사는 황실의 부엌으로서 황실의 모든 음식을 담당하였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기물과 외국인 접대에 쓸 서양물품도 관리했다. 2년 뒤, 1897년, 조선의 왕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했다. 대한제국은 부국강병을 위해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서양과 친교를 맺으면서 서양의 예법을 배워나갔다. 전시실에는 잔칫날 풍경을 담은 두 폭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임인진연도병풍’이라고 불리는 병풍 형태의 이 그림에는 1902년 임인년(壬寅年) 고종 즉위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경운궁에서 거행한 진연(進宴) 행사 광경이 담겨 있다.

고종황제가 루스벨트 대통령 딸에게 대접한 한식 메뉴도 전시되었다 ⓒ박분 

고종황제가 루스벨트 대통령 딸에게 대접한 한식 메뉴도 전시되었다 ⓒ박분

고종 황제가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대접한 한식 메뉴도 전시됐다. 고종은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한 방편으로, 1905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딸을 위한 오찬을 준비했다. 신선로로 불리는 열구자탕과 메밀면을 사용한 골동면, 숭어찜 등 17가지 전통 한식이었음을 그녀는 후일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황제가 주최하고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서양식 요리를 대접하는 게 관례였지만 앨리스 루즈벨트가 접한 것은 한식이었으니 어찌된 일일까?

안내문에는 ‘구본신참’이라는 대한제국의 국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구본신참(舊本新參)은 조선 후기 개화파에 의해 전개된 서양 문명의 수용 논리로 옛것을 근본으로 새로운 것을 참작한다는 뜻이다.

당시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전통한식으로 미국 대통령의 딸을 극진히 대접하면서 외교적 힘이 되어주길 원했던 고종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힘을 잃고 말았다.

   대표적인 궁중음식의 하나인 신선로는 화통이 붙어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요리 용구를 말하기도 한다 ⓒ박분 

대표적인 궁중음식의 하나인 신선로는 화통이 붙어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요리 용구를 말하기도 한다 ⓒ박분

궁중음식에서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음식인 신선로(神仙爐)도 전시장에 나왔다. 여러 어육(魚肉)과 채소를 색스럽게 넣어 끓인 음식으로 궁중에서는 맛이 좋은 탕이라는 뜻에서 열구자탕(悅口資湯)이라 하였다. 무려 25종류의 식품이 들어가니 손이 많이 가는 정성어린 음식이다. 음식이름과 함께 혼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신선로는 화통이 붙어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요리 용구를 말한다. 궁중에서 쓰인 신선로는 손잡이가 박쥐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고 당초무늬, 수복무늬, 산수무늬 등 용기의 무늬 또한 수려하다.

   대한제국의 서양식 연회장을 재현한 석조전 대식당 ⓒ박분 

대한제국의 서양식 연회장을 재현한 석조전 대식당 ⓒ박분

대한제국의 서양식 연회장을 재현한 곳은 석조전 대식당이다. 대한제국 의례서인 대한예전의 그림을 따라 준비한 연회석이 즐비하다. 이화문 백자를 고안해 넣은 식기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난 후 황제는 이곳에서 만찬을 베풀었다고 한다. 100년 전 격변기의 역사와 변화하는 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특별전은 11월 24일까지 진행된다.

궁궐 산책길에 풍성한 전시를 만날 수 있는 덕수궁 나들이를 강추한다.

 

●덕수궁

– 위치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 문의 : 02-771-9951

– 운영 시간월요일 휴무, 매일 09:00 – 20:00(매표시간 20시, 퇴장시간 21시까지)

– 입장료 : 1,000원, 어른(만25세이상)

–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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