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치소 안 어떻게 생겼을까? 40년 만에 시민 공개!
발행일 2019.09.30. 16:10
성동구치소 수감자의 방 ⓒ김윤경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나온 곳과 많이 비슷하지 않아?”
“최근 방영 중인 <시크릿 부티크>도 촬영한 곳이래.”
단 하루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던 성동구치소 ⓒ김윤경
지난 9월 28일 단 하루,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옛 성동구치소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구치소 앞 나부끼는 시민개방행사 입간판이 없었다면 카메라를 꺼내도 될까 싶었다.
성동구치소는 1977년 개장해 2017년 6월 이전할 때까지 40여 년 간 구치소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규모로 최대 2,000여 명의 수감자를 수용했고 2017년 6월 문정법조단지(현 서울동부구치소)로 시설 이전을 했다. 2020년 철거를 앞둔 성동구치소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이다.
성동구치소로 들어가는 출입문 ⓒ김윤경
구치소는 대부분 원형 그대로 훼손 없이 공개됐으며, 자율관람(여자수용동)과 해설자가 있는 투어관람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개방에 앞서 6일간 SH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150명의 사전접수 신청자를 받았고 현장에서 접수한 300여 명의 시민을 포함해 450여 명의 시민들이 15회에 걸쳐 구치소 체험을 했다.
구치소 관람 체험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모습 ⓒ김윤경
정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구치소 투어를 신청한 시민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표정이었다. 안내에 따라 해설자와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 해설은 전직 교도관이 맡아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자들만 수감되어 있던 중앙건물 ⓒ김윤경
중앙건물은 남성 수감자들이 있었던 곳이며 왼편에 있는 건물은 여성 수감자들이 있던 곳으로 좀 더 아담했다. 해설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좁고 답답한 공간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고 익숙해진 풍경이어서 인지 아주 생경한 모습은 아니었다.
수감자들을 감시하던 망루 ⓒ김윤경
약 40분 동안 수감동, 감시탑(망루), 운동장 및 세탁실, 취사장, 면접시설 등을 돌았다.
“이 곳에서 8명이 함께 생활을 했다고요?” 2.2 평 방안에 8명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시민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되물었다. 수감자들이 잠자리를 바꾸는 이유가 구치소 밖에 쓰여 있다. 허리측만증이 있다거나 잠버릇, 다리 불편 등이 사유다. 어떤 위치로 잠을 자는 지 그림으로도 보여준다.
담쟁이넝쿨이 우거진 창살 너머로 수감자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김윤경
복도 양 옆에 창살이 있는 문에서는 무성해진 수풀들이 보인다. 당시 그들에겐 그 창살 너머로 무엇이 보였을까.
배식, 잠자는 위치를 그린 그림, 수용자 생활 안내문 등 복도 벽 곳곳에는 감방생활의 옛 흔적들이 보인다 ⓒ김윤경
텅 빈 구치소 모습은 그저 빈 건물 같지만, 여전히 붙어 있는 구치소 재활용 분리수거 원칙과 무인 접견 시 주의사항 등은 이곳이 구치소로 쓰이던 곳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감시탑 망루로 나가는 복도 끝 문은 가까이 가도 보이지 않을 만큼 좁았다.
운동장 옆 편의시설이 있는 건물 ⓒ김윤경
운동장을 보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풍경이 떠올랐다. 답답한 감방생활에서 작게나마 땅을 밟으며 자유를 느꼈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수감자들의 세탁시설 ⓒ김윤경
운동장 옆 건물에는 사랑의 전화가 있었다. 세탁실과 교육실, 면회실과 접견실도 보았다. 영치품을 넣어주는 곳과 접견을 기다리는 대기실에 오자 해설자는 “10분을 만나기 위해 멀리서 와서 여기서 기다리는 겁니다.” 라며 죄를 지었지만 안타까운 가족들의 마음도 느껴질 거라고 말했다.
시민개방의 날, 수감동 복도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 소리가 울려퍼졌다 ⓒ김윤경
삭막하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구치소 곳곳에는 문화공연이 함께 했다. 수감동 복도에는 콘트라베이스 연주 소리가 사형수의 마음을 뒤흔드는 듯한 비장한 마음을 알렸고, 감시탑 망루에는 높은 담과 전기철망, 날카로운 울타리 속에서 새벽마다 들리는 나팔소리를 표현하는 듯한 트럼펫이 울렸다. 잠시나마 자유롭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운동장에는 클라리넷 소리가 흘렀다. 연주자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서 시민들은 사진을 찍었다.
구치소 입감절차는 생활수칙을 전달하고 머그샷을 촬영하며 신원확인(입소절차) 후 상담을 한다. 이후 물품을 지급받아 면회 및 이동을 하면서 옥중 편지를 쓰고 점호를 하며 식사와 입감(감옥에 들어감) 절차를 거친다. 구치소는 교도소나 유치장과 다르다. 구치소는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으로 아직 법원에서 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즉 재판 받지 않은 피의자(재판 개시전)나 재판은 받으나 형을 받지 않은 피고인이 머문다.
여자수용동 내부 모습. 예전에 쓰던 물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김윤경
여사동(여자 수용동)은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했다. 사물함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이불이 보이고, 수감자들이 앉은 자리 위치에 붙여진 거울도 보인다. 남자수용동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여성 수감동 독방 내부 ⓒ김윤경
“아빠, 여기 독방은 너무 좁아요.” 아빠와 함께 온 아이가 말을 하자 직접 안을 들어가 본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파구 근처에 사는 여성은 지나가다 행사를 해 우연히 들렸는데 드라마 속에 나온 장면과 많이 비슷해 보이고 1층이라 그런지 예상보다는 공간이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다.
수의를 입고 머그샷을 찍는 체험과 옥중편지 쓰기 및 희망의 메시지, 블록배치 등의 코너도 마련되었다. 수의를 입고 사진을 찍은 박예나(동의초 3) 학생은 “엄마가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서 할머니, 엄마와 함께 왔다. 신기하고 재미있었지만 이 다음에 커서는 안 오고 싶다.”고 똑똑하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체험 소감을 이야기했다.
어두운 내부에 있다 밖으로 나오자 빛이 더 환하게 느껴진다 ⓒ김윤경
“이제 드디어 출소하는 거야!” 한 시민이 큰 소리로 외치며 인증샷을 찍자 주위 시민들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첼로 앙상블의 연주 등 문화공연이 함께했다 ⓒ김윤경
구치소 밖 무대에는 대기하는 시민을 위해 공연이 열렸다. 첼로앙상블이 연주하는 '문리버(moon river)'와 '아리랑', '애국가'의 선율이 더더욱 깊이 울려 퍼졌다.
구치소 출구에 적힌 '잊지 말아요 오늘을 ! 다시 뛰어요 내일로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성동구치소 시민행사는 문화공연과 구치소 투어를 통해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시민과의 이해와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구치소 밖에 이어진 담벼락에는 담쟁이가 쭉 늘어져 햇빛에 반짝였다. 어두운 곳에 있었던 탓일까. 눈부신 햇빛이 더욱 밝아보였다. 기자는 불과 두 시간도 있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세상에 온 듯 갑갑한 마음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 밖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자유가 주는 귀중함을 새삼 깨닫고, 구치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다.
구치소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를 보고 있는 아이 ⓒ김윤경
옛 성동구치소가 사라지는 자리에는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택 1,300세대 공급과 지역발전을 위한 문화체육복합시설, 교육 및 창업 등 다양한 공공시설을 조성해 부족한 도시기능을 보완하는 장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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