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한복판 오래된 시간을 머금은 곳, 여긴 어디?

정명섭

Visit1,217 Date2019.07.08 13:53

광통관

광통관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44) 광통관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걷다보면 유리로 전면을 덮은 고층 빌딩이나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오랜 세월을 가린 건물들 사이에서 좀 이상한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더 없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2층 건물의 정체는 바로 광통관이다.

근처에 있는 광통교의 이름을 딴 것인데 붉은 벽돌로 된 벽체 사이사이에는 돌기둥이 세워져있고, 지붕과 맞닿은 끝 부분에는 아주 정교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기둥과 길쭉한 창문 덕분에 2층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아치형의 1층 창문과 문 역시 여러 가지 장식적인 효과를 줘서 화려함을 더한다. 특히 살짝 튀어나온 건물의 양쪽 끝에는 완만한 경사를 가진 지붕이 있는데 잔뜩 부풀어 오른 모양이라 돔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문의 지붕 위쪽으로도 크고 작은 다락 창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바로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로 건너편 동아빌딩 앞에서 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광통관 뒤편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전면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창문과 지붕을 비롯한 여기저기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광통관은 1914년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다음해 다시 짓는 과정에서 지붕과 돔이 현재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이 멸망하기 1년 전인 1909년 탁지부 건축소에서 설계하고 세운 것이다. 원래는 회의장 용도로 만들려고 했는데 때마침 사옥이 필요했던 대한천일은행과 수형조합이 이 건물을 대여했다. 그래서 1층은 대한천일은행과 수형조합이 사무실로 이용했고, 2층은 회의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인 셈이다. 아울러 대한천일은행이라는 민족 자본의 산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고 나서 대한이라는 이름을 빼고 조선상업은행으로 바꾸게 되었다.

해방 이후 상업은행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한일은행과 합병해서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는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광통관 역시 우리은행 영업장으로 사용 중에 있다. 우리는 흔히 근대라고 하면 멀리 떨어져있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을지로 한복판에 백 년 전에 지은 건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서울 속에서 역사를 계속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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