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독립역사를 마주하는 그날을 위해!

시민기자 이선미

Visit363 Date2019.07.05 15:56

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2일 서울시청에서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한 협약식이 개최됐다.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7인의 독립운동가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을 기리는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용산구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공존’과 ‘개방’, ‘역사’라는 세 가지 원칙 하에, 독립운동가 묘역과 효창운동장이 공존해야 하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이곳의 역사가 온전히 구현되어야 함을 방향으로 설정했다.

효창공원은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1940년대에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충혼탑 설립을 명목으로 조선 왕실 무덤을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효창공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묘역은 원래 규모의 3분의 1로 줄었고, 도로로 둘러쌓이면서 고립된 공간이 되고 말았다.

광복이 되자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삼의사(1946년)와 임정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을 모시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기다리며 가묘를 조성했다. 그리고 1949년 7월 본인도 이곳에 잠들었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를 모신 최초의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를 모신 최초의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 이장은 포기했으나, 운동장은 강행해 1960년 준공됐다. 1961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골프장 건설을 시도하다 저지당했다. 이후 공원에는 반공투사 위령탑,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 시설 등이 들어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효창공원 재조성 계획은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네 기관이 업무협약을 통해 이러한 암초를 모두 끊어내고 미래 효창공원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다.

효창독립 100년공원 기본구상(안)

효창독립 100년공원 기본구상(안)

아울러 이날 협약식과 함께 ‘효창독립 100년 공원(가칭)’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효창독립 100년포럼’의 발대식도 진행됐다.

포럼은 유족과 보훈, 체육계와 지역 주민 등 주요인사 33인을 포함한 43인의 위원과 101명의 시민참여단으로 구성돼 12월까지 운영된다. 포럼을 통해 수렴된 의견으로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20년 상반기 현상설계 공모 추진, 2021년 착공, 2024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제 첫 걸음을 뗐지만 이렇게 의견을 아우르며 가는 길 자체가 효창공원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효창공원이 일상에서 독립역사를 마주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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