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에서 만난 70~80년 풍경

시민기자 박은영

발행일 2019.07.03. 15:49

수정일 2019.07.03. 15:49

조회 6,876

등록문화재 제 413호로 지정된 최규하 대통령 가옥

등록문화재 제 413호로 지정된 최규하 대통령 가옥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특별하나 장소가 등장한다. 바로 서교동에 위치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가옥이다. ‘좀 사는 집’ 느낌의 동룡이네 집으로 변신한 대통령의 가옥을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73년부터 1976년 국무총리로 부임하기 전까지,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이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다. 최규하 대통령은 가족들과 함께 그 집에서 거주했다. 그리고 2008년, 서교동 가옥은 10월 10일 등록문화재 제413호로 지정됐다.

현관으로 오르기 전 볼 수 있는 정원의 모습

현관으로 오르기 전 볼 수 있는 정원의 모습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 출구로 나와 걸었다. 최규하 대통령 가옥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가니 서교동 주민센터 맞은편, 최규하 대통령 가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문을 들어서자 티테이블이 있는 아담한 정원이 보였고, 차고에는 대통령이 생전에 타고 다녔다는 자동차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안내를 도와주시는 분이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라 했다. 또한 이곳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혼자 다닐 수 없고 해설사분의 설명을 들으며 같이 움직여야 했다.

오래된 밥솥 등 부엌 살림을 볼 수 있는 지하 부엌

오래된 밥솥 등 부엌 살림을 볼 수 있는 지하 부엌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구조였다. 1층에는 안방과 응접실, 영부인이 기거하던 작은 방이 있었고, 2층에는 서재와 전시실, 지하층에는 살림살이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부엌과 전시실이 연탄보일러실이 있었다.

찻잔이 세팅돼 있는 1층의 식탁

찻잔이 세팅돼 있는 1층의 식탁

집은 그리 낯선 느낌이 아니었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80년대 중산층의 집과 같이 느껴졌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지하에 주방 살림살이가 있었다. 갖가지 밥솥과 식기류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손님을 많이 치르는 날에는 이웃에서 접시를 빌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대통령이 퇴임 후에 대부분의 식사를 하던 곳으로, 주방 바로 옆으로 주차장과 연결돼 있는 구조였다.

지하에는 연탄보일러실도 있었다. 국무총리 시절, 오일 파동이 일어났고, 탄광 시찰을 다녀온 이후 평생 연탄보일러만 사용했다는 일화는 특별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지하에는 외교관 시절 사용하던 각종 여행 가방들도 볼 수 있었다. 오래돼 보이는 것부터 현재도 구할 수 있는 회사의 제품까지, 시대별 다양한 캐리어의 변천사를 엿볼 수도 있어 흥미로웠다.

손님과 함께 담소를 나눈 응접실

손님과 함께 담소를 나눈 응접실

안방과 작은 방, 손님 접대용 응접실, 식탁 등이 있는 1층으로 향했다. 손님을 접대했다는 응접실에는 서거 전까지 사용했다는 50년대에 구입한 선풍기가 보였는데, 아주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은 오래된 선풍기의 모습이었다.

안방에는 자개장이 시대를 상징하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붙박이장에는 사용하던 이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안에 들어온 물건은 쓰레기가 아니면 다시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는 해설사분의 말씀은 최규하 대통령이 검소한 생활습관을 증명하고 있었다.

홍기 여사가 생전에 사용하던 미싱

홍기 여사가 생전에 사용하던 미싱

작은 방에는 영부인이 사용했다는 미싱과 옷가지가 있고, 주로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던 식탁에는 여러 개의 찻잔이 단아한 모습으로 세팅돼 있었다. 사랑방 역할을 했던 1층 응접실은 대통령이 외부 방문객을 맞아 담소를 나누거나 말년에 주로 시간을 보내던 곳이라 한다.

2층 두 아들의 방을 터서 사용하던 서재에는 대통령의 흔적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두 분의 초상화와 외교관 시절 사용했던 여권, 외무부 장관 임명장, 국무총리 임명장 복제본 등이 전시돼 있다.

달력을 찢어 메모지로 사용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최규하 대통령의 서재

달력을 찢어 메모지로 사용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최규하 대통령의 서재

친필로 작성한 메모는 물론, 달력을 잘라 메모지로 사용했던 흔적 역시 특별했다. 전시실 유품 코너에는 대통령이 착용했던 양복, 구두, 지팡이와 애연가였던 대통령의 라이터 등 소지품과, 영부인이 사용하던 핸드백과 전화번호 수첩, 당시 1원짜리 동전을 담았던 지갑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대문부터 지하방, 안방 화장실까지 메인열쇠와 여분열쇠를 구분해 보관한 열쇠함에는 대통령 친필로 작성한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하니 매우 꼼꼼한 성격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2층 창문으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은 서교동주민센터로 생존 시 경호동이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방마다 구분해 꾸러미를 만든 열쇠꾸러미 상자

방마다 구분해 꾸러미를 만든 열쇠꾸러미 상자

집 안 곳곳에는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했던 최 대통령 부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때문에 전직 대통령 가옥보다는 70~80년대 검소하고 근면하게 살았던 당시 서울의 중산층 주택을 보는 듯했다.

서울시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의 영구보존을 위해 지난 2009년 7월 유족으로부터 가옥을 매입하고, 가족들로부터 유품을 기증받았다. 그로부터 약 3년 5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시민문화공간으로 무료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무엇보다 짧은 재임기간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기억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에서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공무원으로 발탁, 외무부와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으로 임명되기까지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최규하 대통령의 가옥은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생활용품이 그대로 보존돼 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대통령의 사저라는 느낌보다 절약하며 사는 강직한 한 개인의 일생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그 중심에 있는 아픈 현대사까지 말이다.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최규하 대통령의 생가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 최규하 가옥 전시관람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5길 10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0~18시(매주 월요일·1월 1일 휴관)
○ 관람인원 :15인 내외
○ 관람료 : 무료
○ 관람방법 :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에서 사전예약 및 현장접수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