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땅굴이 있다? 봉인된 시공간에서 만난 역사

정명섭

발행일 2019.05.27. 15:15

수정일 2019.05.27. 16:56

조회 3,394

궁산 땅굴 전시관

궁산 땅굴 전시관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38)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겸재 정선 미술관 뒤편 궁산 자락에는 궁산 땅굴역사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를 썼던 경험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시간을 내서 들려보기로 했다.

다소 뜬금없는 장소에 이상한 전시관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선형 계단으로 내려가면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의 입구가 보인다. 안전 문제 때문에 철골을 덧댄 형태이긴 하지만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땅굴은 높이와 폭이 2미터가 넘고, 길이는 거의 70미터에 달한다. 제주도나 지방에서는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이 종종 발견되고, 와인창고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경희궁이 있던 지역에 만들어놓은 대규모 지하군사시설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땅굴은 없었다. 물론 백인제 가옥에서 볼 수 있듯 태평양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군의 공습을 우려해서 지하에 방공호를 파놓기는 했다. 하지만 궁산 자락의 땅굴은 단순한 방공호가 아니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 지금의 김포공항 위치에 육군 항공대가 운영하는 비행장을 건설한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의 알뜨르에는 해군이 주둔할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중국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던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삼기 위해 각종 군사시설들을 세웠고, 김포의 비행장도 그 중 하나였다. 궁산 땅굴의 위치나 규모로 봐서는 무기와 유류를 보관하는 것은 물론 공습을 받게 되면 지휘부가 피신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으로 보인다.

궁산 땅굴 내부

궁산 땅굴 내부

특히 땅굴이 있는 궁산은 행주산성의 대각선에 위치한 곳으로 한강을 관측하기 유리한 곳이라 삼국시대부터 성을 쌓아두었던 지리적 요충지다. 따라서 관측소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일전쟁에 이어서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조선을 급속도로 군사기지화 한다. 그러면서 미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있었던 제주도를 군사요새로 만들고, 가덕도와 지심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섬 곳곳에 포대를 구축한다. 여수와 목포에도 대공포대와 해안동굴진지를 만들어놓았다. 광복이 되면서 이런 시설들은 하나 둘씩 사라진다. 특히 서울은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심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재개발과 재건축 붐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상처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도 곳곳에 남아있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한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같은 곳을 잘 보존하고 기억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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