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1주년, ‘멀지만 가야 할 길’ 함께 가다

시민기자 김진흥, 문청야 시민기자 김진흥, 문청야

Visit323 Date2019.04.29 16:39

평화의 집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 기술 영상쇼를 선보였다

평화의 집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 기술 영상쇼를 선보이고 있다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지난해 4월 27일,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에 천명했다. 남과 북이 서로 손을 잡고 관계를 개선하면서 평화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남북이 일으킨 평화의 바람이 휴전의 상징인 판문점을 감싸 안았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9년 4월 27일, 남과 북이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판문점은 어땠을까. 남과 북이 손을 맞잡았던 1년 전처럼 따뜻한 평화의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을까.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가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렸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가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8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를 진행했다. 통일부, 서울시, 경기도가 주최가 되어 준비한 이번 행사는 ‘(멀지만 가야 할) 먼 길’이라는 주제로 평화 퍼포먼스가 이뤄졌다. 퍼포먼스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와 관련된 국가들에 속한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쳤다.

1시간 동안 별다른 설명 없이 음악가들의 릴레이 연주가 이어졌다. 그런데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장소가 남달랐다.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린 하렐 첼리스트를 시작으로 여러 음악가들이 기념 식수, 의장대 사열장 등 지난 남북정상회담과 연관된 장소들에서 악기를 켰다.

1년 전 감동을 그대로 재현한 미디어 파사드 공연

1년 전 감동을 그대로 재현한 미디어 파사드 공연

특히, 1년 전 감동을 재현하기도 했다. 마지막 순서였던 정재일 &한승석의 ‘저 물결 끝내 바다에’는 평화의 집에서 미디어 파사드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했다. 1년 전 남북정상회담 당일 저녁, 마지막 공식 행사로 회담장인 평화의 집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 기술 영상쇼를 선보였던 장소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혼합현실 기술을 접목시킨 것으로 당시 남북정상회담 환송 공연 피날레로 전 세계 앞에서 선보여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멀지만 가야 할) 먼 길’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평화 퍼포먼스가 이뤄졌다.

‘(멀지만 가야 할) 먼 길’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평화 퍼포먼스가 이뤄졌다.

그때를 기억한 사람들은 그 당시 미디어 파사드와 오버랩되면서 감동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온 한 시민은 “1년 전 밤에 펼쳐졌던 미디어 파사드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마지막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술로 선보이니 또 한번 감동적이었다.”라고 전했다.

평화의 집 내부 접견실

평화의 집 내부 접견실

기념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주요 내·외빈이 참석했다. 아쉽게도 남북한 정상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 대신 영상 메시지로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 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전하며 마음으로나마 함께했다.

남북 두 정상이 남북의 흙과 물을 한데 모아 심은 기념 식수

남북 두 정상이 남북의 흙과 물을 한데 모아 심은 기념 식수

퍼포먼스에 앞서, 대한민국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해 서울 시민을 비롯한 대한민국 국민 약 1,000여 명을 초청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던 판문점의 곳곳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초청된 국민은 가기 전부터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평소 가기 힘든 장소고 남북정상회담의 의미 있는 곳들을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정부서울청사를 출발한 버스는 2시간 정도 달렸다. 이후 판문점이라는 푯말이 보이자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판문점에 도착한 시민은 판문점 내 장소들을 견학했다. 도보다리, 의장대 사열장, 평화의 집, 군사분계선, 1년 전 남북 두 정상이 거쳤던 장소들을 둘러보았다. 각 장소마다 통일부 관계자가 설명하면서 국민에게 장소의 의미를 생생히 전달했다.

남북 정상이 오랫동안 산책하며 얘기 나눴던 도보다리

남북 정상이 오랫동안 산책하며 얘기 나눴던 도보다리

특히,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곳이 도보다리였다. 도보다리는 판문점 회의실과 동편 중립국감독위원회 캠프 사이에 있는 50m 길이의 작은 다리다. 이곳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당일에 공동식수를 끝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산책을 했던 곳이다. 그러던 중, 도보다리 끝에 있는 의자에서 둘만 마주보고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펼쳤다. 당초 계획보다 30분 넘게 진행됐다. 한적한 장소에서 새소리만 들린 채 두 사람이 다정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국내, 외로 전파를 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송재인 통일부 주무관은 “도보다리는 원래 유엔사에서 ‘풋 브릿지(Foot Bridge)’라고 부르는 것을 직역해 도보다리로 칭했다. 1953년 정전 이후, 맞은편에 있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요원들이 판문점을 드나들 때 이동하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서 판문점 습지 위에 다리를 놓았다. 원래 다리가 폭이 좁고 저쪽으로 연결되는 게 없었는데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확장공사를 진행해서 지금의 이 모습을 갖추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보다리가 판문점 회의실(T1, T2, T3)처럼 파란색으로 페이트칠 되어 있다. 이것은 유엔사가 관리하는 시설은 모두 파란색으로 칠하기 때문에 도보다리도 역시 파란색이 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중앙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중앙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다

도보다리 만큼이나 주목 받았던 곳이 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판문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곳,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다.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구역으로 남북 군인들이 인접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는 곳들 중 하나다. 대중에게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때, 북한 지도자로는 최초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로 이곳을 통해 남한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흔들었던 두 정상의 첫 대면은 남북정상회담의 특별한 순간들 중 하나였다.

통일부 어린이 기자단 소속으로 온 한 초등학생은 “기존에 판문점은 무거운 느낌이 있는 곳이었다. 남북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평화로운 분위기라서 놀랐다. 지금은 군사분계선이라는 작은 턱이 가로 막고 있지만 통일이 되어 이러한 분단이 무너졌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은 평소 때와는 좀 달랐다. 맞은편에 있어야 할 북한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정확한 것은 알아봐야겠지만 오늘 많은 국민이 방문하고 평화적인 행사가 되고자 북한군 스스로 모습을 비추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기념 식수, 의장대 사열장, 회담장 등 남북 정상들이 거쳤던 판문점 내 장소들을 두루 다녔다. 국민은 사진에 담으면서 지난해 장면들을 떠올렸고 감동을 몸소 느꼈다.

평화의 집,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상징하는 듯 인사하는 대형 조형물이 눈에 띈다

평화의 집,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상징하는 듯 인사하는 대형 조형물이 눈에 띈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 행사의 주제는 ‘(멀지만 가야할) 먼 길’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만 해도 통일을 향해 순풍이 이어질 듯했다. 하지만 현재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잠시 평화의 바람이 잠잠해진 느낌이다. 70여 년간 분단된 고리가 단번에 끊어지긴 어려웠다. 통일이 멀게만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목표를 향해 멀지만 같이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4.27 판문점 선언이 열리기 몇 개월 전만 해도 적대시했던 북한이 직접 손을 내민 것처럼 분단의 오랜 아픔을 한 매듭 한 매듭 차근차근 풀어나가고자 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국민은 어떻게 ‘먼 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경주 씨는 “1주년을 맞아 정상들이 만난 장소들을 보게 돼 좋았다. 멋진 공연들로 통일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행사 오기 전까지는 통일을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그랬던 저를 반성하게 됐다. 통일이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언급했다.

한 서울 시민은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며 실제로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우리가 가깝게 있는데 가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공연을 보는데 판문점 앞에서 첼로 연주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라면서 “친구끼리 좋을 때도 있지만 싸울 때도 있다. 싸우고 나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서로 앙금이 많겠지만 이제 조금씩 푸는 것 같다. 계속 길을 간다면 언젠가 끝에 다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판문점은 1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전날까지만 해도 비바람으로 행사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념식 당일에는 해가 졌음에도 봄의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큰 불편이 없었다.

잔잔한 음악들과 함께 지난 남북정상회담을 되새기는 공연이었던 기념식은 크고 성대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좋은 날이지만 그 기쁨을 모두 드러내기보다는 차분하게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천천히라도 좋으니 줏대 있게 그 길을 따라 두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남북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동일조건변경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