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지킨 건축왕 ‘정세권’ 그리고 북촌

시민기자 박분

Visit1,356 Date2019.04.25 15:52

정세권 선생이 개발한 한옥집단지구를 천조각에 마을 이름을 써서 표현했다

 정세권 선생이 개발한 한옥집단지구의 마을이름을 천 조각에 써놓았다

경복궁과 창덕궁, 두 궁궐 사이에 자리한 북촌은 조선 시대 고관대작들의 거주지로 알려진 곳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 북촌은 서울에서 근대한옥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누구든 한번쯤은 방문하고픈 마을로 자리 잡게 됐다.

북촌이 서울 도심 속 아담한 한옥마을로 자리 잡은 데는 일제 강점기에 대형 필지를 사들여 개량 한옥을 지어 분양한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1888~1965)의 역할이 크다.

정세권 선생이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조성한 한옥집단지구에서 착안해 'ㅅ'자에 모티브를 둔 전시실 전경

정세권 선생이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조성한 한옥집단지구에서 착안해 ‘ㅅ’자에 모티브를 둔 전시실 전경

때마침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북촌 한옥청에서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정세권과 조선집’ 전시는 일제에 맞서 한옥과 한글을 지켜낸 ‘조선의 건축왕’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시회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정세권 선생의 삶을 연대기별로 조명하고 있다. 그가 서울 전역에 ‘ㅅ’자 방파제 모양으로 조성한 한옥집단지구에서 착안해 ‘ㅅ’자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ㅅ’자는 한옥의 지붕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보다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일본식 집이 늘어가는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선생이 ‘조선집’이라 불린 근대 한옥을 대량 공급하는 과정과 조선어학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다 고초를 겪은 선생의 행적을 차례로 되짚는다.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담은 흑백영화 10편을 전시기간 동안 보여주는 영화상영실 모습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담은 흑백영화 10편을 전시기간 동안 보여주는 영화상영실 모습

정세권 선생은 1930년대 조선물산장려회와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기도하다. 조선어학회 회관을 지어 기증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급기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돼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재산도 일제에 몰수당했다.

집 한 채 남기지 않고 떠난 그의 유품은 놋주발 한 벌과 ‘조선말 큰 사전’책과 쌀을 퍼 담는 쌀되 정도일 뿐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그의 초상과 함께 쌀되가 전시돼 있다. 쌀되에 귀중한 한 끼 밥과 소중한 겨레말을 담으려 매진했던 그를 기리기 위함이다.

전시실 한쪽에는 좌석이 비치된 작은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후, 1960년대까지 제작된 흑백영화 중 전통한옥과 조선집을 생생하게 담은 ‘미몽’(1936), ‘반도의 봄’(194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 10편의 영화를 편집해 전시기간 동안 보여주고 있다.

화분이 놓인 북촌의 골목길 풍경

화분이 놓인 북촌의 골목길 풍경

한옥청 마당으로 나오면 익선동, 소격동, 재동 등 여러 개의 마을 이름이 적힌 천들이 한옥지붕위에서 바람에 나부낀다. 정세권 선생이 개발한 한옥집단지구들이다. 북촌은 물론이고 서쪽의 서대문과 사직동 일대, 동쪽의 신설동과 왕십리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이다.

한옥청에서 나와 아담한 한옥들이 어깨를 맞댄 골목길로 향한다. 골목을 기웃대다 담장 아래 키 작은 화초들로 환한 골목길을 발견했다. 작은 꽃들의 미소가 골목길을 밝힌다. 우연찮게 마주치는 소소한 풍경들이 있어 북촌의 골목길은 더욱 정겹다.

처마 끝에 덧댄 연두색 빗물받이와 홈통이 보이는 북촌한옥의 모습

처마 끝에 덧댄 연두색 빗물받이와 홈통이 보이는 북촌한옥의 모습

북촌에서 풍광 좋은 북촌 8경을 빠짐없이 보려면 북촌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찾아 가는 게 편하긴 하다. 하지만 조금 헤매더라도 이처럼 생각 없이 들어선 골목길에서 만나는 풍경도 나름 뿌듯함을 안겨준다. 탐방객들이 자주 몰리는 곳을 피해 조용히 북촌을 알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생활공간이기도 한 북촌에서 ‘조용한 관광 에티켓’은 필수다. 왁자하니 떼 지어 다니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도시형 한옥에서 함석은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함석 처마는 빗물이 마당으로 바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홈통에서 하수구로 물이 빠지게 했다’’ 한옥청에서 봤던 전시물의 한 대목을 북촌한옥은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골목을 걷다 한옥들을 눈여겨보면 처마 위, 빗물받이와 벽을 타고 길게 내린 홈통이 눈에 띈다. 빗물을 배수하기 위해 지붕 끝에 덧댄 연두색의 이들 소재가 바로 함석이다. 함석은 물이 닿아도 녹이 잘 슬지 않는 장점이 있어 도시형 한옥을 지을 당시 새롭게 사용된 건축 자재였음을 알게 된다. 알면 알수록 북촌 나들이는 더욱 특별해진다.

기와지붕이 머리를 맞댄 북촌의 졍겨운 풍경

기와지붕이 머리를 맞댄 북촌의 졍겨운 풍경

북촌의 중심 도로인 북촌로를 건너면 가회동11번지 일대로 북촌의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이라 골목길마다 탐방객들로 붐비는 지점이기도 하다. ‘북촌전망대’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기와지붕이 머리를 맞댄 잔잔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촌4경으로 불리는 북촌만의 멋스런 풍광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가회동 31번지 일대 또한 한옥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한옥과 어우러진 도심 속 풍광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북촌한옥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끝자락을 살짝 치켜 올린 고운 처마선, 오래돼 반들거리는 쇠문고리, 담장에 박힌 예쁜 문양 등 한옥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눈으로 끝없이 받게 된다.

언덕에서 북촌골목길을 내려다보면 한옥이 빼곡한 골목길 너머로 남산과 서울N타워, 고층 빌딩 등 도시의 숲이 아스라이 잡힌다. 북촌 6경으로 서울의 근대와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이 모습 또한 북촌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꼽힌다.

북촌에 자리한 백인제 가옥 모습

북촌에 자리한 백인제 가옥 모습

가회동 주민센터 뒤쪽에 자리한 백인제 가옥 또한 북촌의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에는 안채와 사랑채, 별당 등이 들어서 있어 근대한옥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별당에서면 북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운치를 더한다. 8월 중 금·토요일은 야간개장 한다니 기대가 된다.

한옥과 현대적 건물이 조화를 이룬 가회동 성당

한옥과 현대적 건물이 조화를 이룬 가회동 성당

한옥이 즐비한 북촌을 닮으려 함일까? 북촌에는 외양이 조금 특별한 성당이 있다. 가회동성당은 길가에서 보면 전면에 아담한 한옥이 있어 전혀 성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옥 옆으로 돌아가면 십자가가 보이는 본체 건물이 있어 그제야 성당임을 알게 된다. 한옥과 현대적 건물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회동 성당은 북촌과 조화를 이룬다. 서로 유유상종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열리는 북촌전통공예체험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열리는 북촌전통공예체험관

가회동 북촌로 11길과12길 일대에는 수작업 소리가 들리는 전통 공방들이 있으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한옥청 가까이에 위치한 북촌전통공예체험관에서는 염색, 매듭, 단청 등을 북촌장인에게 직접 배워볼 수 있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외에도 전시된 전통공예도 관람할 수 있다.

전통공예체험 비용은 5,000원~2만 원 내외로, 종로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고 개인은 현장 접수 후 당일 체험이 가능하다. (문의 : 02-741-2148)

아름다운 북촌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정세권 선생의 숨은 업적을 돌아볼 수 있었다. 북촌한옥마을을 천천히 거닐면서 건축왕이자 독립운동가인 정세권 선생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 ‘북촌, 민족문화 방파제-정세권과 조선집’ 전시는 5월 10일까지 이어진다.

한옥청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재동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 12분 거리에 있다.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무료 관람할 수 있고, 월요일은 쉰다.

문의 : 북촌한옥청 02-2133-5580 , 서울한옥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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