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봄, 세월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방법
발행일 2019.04.15. 17:10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메인 행사는 저녁 7시에 시작이었지만 이날 광화문 광장은 공연, 시낭송 등 무대가 꾸며지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대회가 열리는 등 하루 종일 분주했다.
경복궁 인근 북측 광장에선 시민들이 노란우산으로 대형 리본을 만드는 플래시몹이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단 말에 지나가던 사민들은 망설임 없이 대열에 합류했다. “오른발, 왼발, 방향 바꿔 돌고, 뛰세요” 진행자의 구령에 맞춰 간단한 동작을 익혔다. 어설퍼도 상관없고 틀려도 괜찮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안내선을 따라 걸었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 사이클 복장으로 달려온 사람, 교복을 입은 학생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자”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4월 16일을 의미하는 4시 16분이 되자 일제히 우산을 펴 세월호의 상징인 커다란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시민들은 엄중하고 강하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광장의 분위기는 경쾌하고 따뜻했다.
플래시몹을 마친 시민들은 어깨에 노란 나비를 태운 채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리본을 만들거나 만들기 체험에 참여했다. 광장은 노란 물결로 일렁였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민들 어깨에도 노란 나비가 사뿐히 앉아 있었다. 별이 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은, 세월호 천막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은 아담한 목조건물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이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주장하며 천막을 쳤던 그 자리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시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전시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안산 단원고 1학년 수련회 당시 찍은 단체사진이다. 아이들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속에 아이들을 담는다. 그 모습이 마치 “잊지 않을게”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학생들 사진 옆에 노란 꽃을 눌러 만든 꽃누루미(압화) 작품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의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다. 떠나보낸 자식이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는 시를 마저 읽으면 안타까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전시 공간 뒤쪽에 적혀 있는 희생자 304명의 명단까지 눈으로 확인하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봉천동에서 왔다는 50대 주부는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울부짖음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스런 공간이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찾아왔다”면서 “좀 더 안전하고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처벌 받은 책임자가 아무도 없다. 1970년 남영호 참사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참사도 처벌 받은 책임자가 없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고 한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이지만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에 대형 사고들을 기록하는 이유가 이 땅에 다시는 그런 재난이 없도록 하자는 다짐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린 학생 둘이 길을 묻는데 손목에 찬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제2의 세월호 참사라 일컬어지는 스텔라데이지호 주황리본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참사는 안 된다. ‘반복되는 참사를 멈추는 길은 책임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글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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