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인가, 미술관인가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시민기자 김진흥

Visit1,994 Date2019.03.15 15:33

‘정원이 있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정원이 있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서울시는 지난 3월 14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을 개장했다. 서울의 가장 일상적인 공간 중 하나인 지하철역이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하예술정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설치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선순환을 경험하는 특별한 공공미술역사를 조성했다.

3월 14일,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개장식

3월 14일,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개장식

그럼, 왜 수많은 지하철역들 중 녹사평역을 프로젝트로 삼았을까?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綠莎坪)’이라는 이름의 녹사평역은 지난 2000년, 역 주변에 서울시청 신청사 건설 등을 계획해 만든 지하철역이다. 그래서 깊이 35m(민간 건물 지하 11층 정도)와 6천㎡ 연면적의 당시 최대 규모로 화려하게 지었다. 그러나 서울시청 이전 계획이 무산됐고 이후 한동안 역 쓰임새를 찾지 못했다. 개찰구와 기계실로 사용되는 지하 2~3층 공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어 있었다. 서울시는 녹사평역만의 개성 있는 공간을 시민 맞춤형 공간으로 고안해낸 것이 ‘녹사평역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위대한 도시, 품격 있는 도시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시민 삶 속에서 체험하고 향유하고 느낄 수 있는 일상 속 예술이 중요하다”라면서 “녹사평역은 과거 서울시청을 이 주변에 옮기도록 계획하에 만들어진 특별한 지하철역이다. 그동안 숨겨진 보물처럼 녹슬고 빛이 바랬는데 예술 프로젝트로 다시 살아났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시민과 함께 많은 곳들을 예술 공간으로, 시민들이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유리 나루세 &준 이노쿠마의 ‘댄스 오브 라이트’ 작품. 유리 돔 천장 아래 얇은 커튼을 쳐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빛을 담았다.

유리 나루세 &준 이노쿠마의 ‘댄스 오브 라이트’ 작품. 유리 돔 천장 아래 얇은 커튼을 쳐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빛을 담았다.

서울시는 녹사평역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지난해 8월부터 국내외 여러 작가들을 선정했다. 이들은 ‘시간의 감각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작품들을 설치해 역 전체를 아름다운 예술공간으로 꾸몄다.

우선, 가장 돋보이는 것은 녹사평역의 상징인 유리 돔 아래 메탈 커튼을 달아 만든 유리 나루세 & 준 이노쿠마 작가의 ‘댄스 오브 라이트’다. 이것은 ‘지하 공간에 펼쳐지는 빛의 댄스’라는 주제로 천창으로부터의 빛의 변화를 돋보이게 한다. 낮에는 돔 전체가 부드럽게 밝아지고 밤에는 주위의 인공조명을 배경으로 돔의 그림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가며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에 놀라곤 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을 방문한 임기영 씨는 “역 전체가 환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준다. 원래 녹사평역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예쁜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하 4층 개찰구 천장에 설치된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작품, 뒤편에는 ‘숲 갤러리’ 작품이 있다

지하 4층 개찰구 천장에 설치된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작품, 뒤편에는 ‘숲 갤러리’ 작품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개찰구가 있는 지하철 4층에 오자 여러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개찰구까지의 연결 통로 양쪽 면에 있는 정진수 작가의 ‘흐름’ 작품은 사람과 자연에서 발견한 작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채집한 비디오를 집합해 만들었다.

개찰구로 향하는 길에 시민들의 시선을 잡는 김아연 작가의 ‘숲 갤러리’는 숲의 밀도와 시간과 그 속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장소로, 남산 소나무 숲의 구조와 변화를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상상의 숲을 표현했다. 개장식 날에는 나무들 사이에서 음악 공연을 펼쳐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개찰구 천정에는 조소희 작가의 ‘녹사평 여기…’가, 개찰구 주변 벽에는 정희우 작가의 ‘담의 시간들’ 작품이 전시됐다. 조소희 작가는 “닫혀 있는 공간에서 부드럽고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녹사평역 예술 작품들을 통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는 시민들

지하철을 기다리며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는 시민들

지하철 탑승구에서도 미술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탑승구 주변에는 김원진 작가의 ‘깊이의 동굴–순간의 연대기’ 작품들이 시민들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기억을 지층으로 비유한 것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되고 변이하는 기억에 대한 사유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했다.

시민들은 미술 작품들을 바라보며 관심을 나타냈다. 신기해하는 모습부터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특히, 녹사평역은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역인 만큼 미술 작품들을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도 만나볼 수 있었다. 한국 여행 중인 보거트 씨는 “미술관 같은 지하철역이다. 다른 역들과는 밝고 신선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녹사평역 프로젝트의 과정을 기록한 아카이브 전시

녹사평역 프로젝트의 과정을 기록한 아카이브 전시

서울시는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개장식에 맞춰 특별한 행사들을 펼쳤다. 오프닝 퍼포먼스로 음악그룹 ‘the튠’의 무대로 시작해 지하 1층과 지하 4층에서는 시민 참여 이벤트와 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또한 반려식물 분양, 화관·미니 꽃다발·테라리움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버섯을 활용한 참여전시 ‘미시적 삶:버섯되기’, 녹사평역 주변을 해설과 함께 걷는 ‘녹사평산책’ 등 다양한 시민 참여 이벤트들로 시민들에게 새로운 녹사평역 모습들을 알렸다.

지하 1층의 ‘미시적 삶:버섯되기’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지하 4층의 ‘녹사평역:예술로 머물다’ 전시는 24일까지 계속된다. 녹사평역부터 용산공원 갤러리까지 주변 지역을 걷는 ‘녹사평 산책’ 프로그램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하다. 3월 중에는 매주 1회(목요일) 운영되며 4월부터는 주 2회(목‧토요일)로 확대 운영될 예정이다.

지하 4층 한켠에 마련된 시민 쉼터

지하 4층 한켠에 마련된 시민 쉼터

녹사평역을 자주 이용한다는 한 시민은 “원래 개찰구가 지하 2층 정도에 있었는데 이제는 지하 4층으로 옮겨서 더 여유롭게 녹사평역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용산공원 등 다양한 시설들이 역 주변에 만들어질 텐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오랫동안 아름다운 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재준 녹사평역 프로젝트 기획자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작품의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에 있다. 지하철역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잠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면 식물이 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고 본다”라고 언급했다.

시민들에게 화분을 분야하는 시민정원사들

시민들에게 화분을 분양하는 시민정원사들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에 대한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메모들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에 대한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메모들

녹사평역은 한때 버림받은 곳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예술 작품들과 식물들로 가득찬 화려한 지하철역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곳이 현재 이태원과 경리단길을 연결하고 남산과 미래의 용산공원을 잇는 또 하나의 핫 플레이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산소 뿜뿜, 언제 가도 쉴 수 있는 공간”
“시민이 주인이 되어 함께 가꾸고 즐기는 공원이 되었으면 해요”
“서울 시민들의 넉넉한 휴식처가 되길 희망합니다”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에 대한 소망을 적은 시민들의 글귀다. 서울시가 이 문구들을 잘 보고 간직해서 녹사평역을 시민들의 맞춤형 문화예술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문의 : 녹사평역 프로젝트 페이스북, 녹사평역 프로젝트 운영사무국(02-338-8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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