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동네 망원동에 숨겨진 정자, 이름이 두 개인 사연

정명섭

Visit931 Date2019.03.11 16:47

1989년 복원한 ‘망원정’ 모습

1989년 복원한 ‘망원정’ 모습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8) 망원정

이곳을 처음 만난 것은 대략 17년 전쯤이었다. 이제 막 지어진 파주출판도시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나는 합정역에서 셔틀버스를 타야만 했다. 자리에 앉아서 잠을 청하기 전 이 정자를 봤다. 쉴 새 없이 차들이 오가는 강변북로 바로 옆에 정자 같은 걸 지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 정자가 강변북로 보다 훨씬 전에 지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부끄러움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이 정자의 이름은 ‘망원정’으로 1424년에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이 지었다. 다음 해, 세종대왕이 이곳에 행차했다가 비가 내리는 걸 보고 기쁜 마음에 정자의 이름을 비가 와서 기쁘다는 뜻의 ‘희우정’으로 바꿨다. 기록에는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살펴보러 나왔다고 하지만 한강에서 기우제를 지내러 온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세종대왕은 인자했지만 그의 재위 기간은 태풍과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빈번했다. 따라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정자의 이름을 바꿀 정도로 기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희우정이라는 이름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소유로 바뀌면서 망원정으로 바뀐다. 낡은 정자를 수리한 월산대군은 멀리까지 경치가 보인다는 뜻의 망원정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정자 바깥쪽에는 망원정, 안쪽에는 희우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지금은 정자에 올라가도 강변북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 밖에 안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강가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서 망원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강의 풍경을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지금은 섬이 되어버린 선유도에 있던 선유봉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내내 세월을 견뎌왔던 망원정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훼손되기 시작한다. 특히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와 광복 이후 훼손되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망원정은 1989년 다시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너무나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곳에 가려면 망원역이나 합정역에서 내려서 걷거나 버스를 타야만 한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막다른 곳에 야트막한 문과 시멘트 블록 위에 올라가있는 담장이 보인다. 그리고 그 담장 너머 가파른 계단 위에 2층으로 된 정자와 만날 수 있다. 바로 앞이 강변북로고, 뒤편은 주택가라 일반적인 정자에서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함 같은 건 눈곱만큼도 느낄 수 없다.

다만 이곳에 서서 마음속으로 강변북로를 지우고 주택가를 없앤 다음에 사라진 선유봉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 한 때는 임금이 흩뿌리는 비를 보면서 기뻐했으며, 대군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곳은 이제 도로와 주택가 사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정자는 그대로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것들이 주변에 들어찬 것이다. 역사와 함께 말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