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만든 독립선언들이 있습니다”

정명섭

Visit325 Date2019.02.27 14:03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월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월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7) 2.8독립선언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조선 사람들에게 우리도 독립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당시 도쿄에 유학을 와 있던 학생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이광수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유학생 중 한명인 송계백이 조선으로 건너와서 중앙학교 교사인 현상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최린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천도교 교주 손병희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도 대대적인 저항에 나설 것을 준비한다. 송계백이 돌아온 후 도쿄의 유학생들은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했다.

1919년 2월 8일 오후, 일본의 수도 도쿄에 있는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유학생 총회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 최팔용이 뛰쳐나와 조선청년 독립단을 결성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유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자 백관수가 나서서 이광수가 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한민족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으며,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이닥친 일본 경찰이 마구 폭력을 휘두르면서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2.8독립선언은 일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용감하게 떨쳐 일어난 만세 시위였으며,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2.8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와 연관된 장소들이 있다. 먼저 국내에 들어온 송계백이 중앙학교 교사인 현상윤을 찾아가서 만났던 장소인 숙직실은 이후 최린과 현상윤 등이 모여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조직하는 일을 준비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숙직실은 강당이 세워지면서 철거되었다. 하지만 1973년 3.1기념관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세워졌다. 중앙고등학교가 주말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기 때문에 들려볼 수 있다.

그밖에도 기독교계의 대표인 이승훈이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저항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천도교와 손을 잡기 위해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천도교 중앙총부 역시 2.8 독립선언과 관련된 국내 유적지 중 하나다. 벽돌로 만든 서양식 2층 건물이었던 천도교 중앙총부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하지만 덕성여중이 있는 율곡로 3길 거리 한쪽에는 사라진 천도교 중앙총부 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시판이 있다.

치열하고 장엄한 투쟁으로부터 이제 백 년이 흘렀다. 이제 한숨을 돌리고 역사를 돌아볼 시간이 왔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백 년 전의 그 시간을 기억해야하기 때문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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