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람기⑥] 대통령도 반하다! '수제화 대통령' 명장 3인방

시민기자 방윤희

발행일 2018.11.22. 16:12

수정일 2018.11.22. 18:03

조회 2,597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명장들이 만든 수제화들

성수 수제화 전시관 ‘희망플랫폼’에 전시된 명장들이 만든 수제화들

시민기자단이 전하는 ‘성수 수제화 거리’ 이야기 마지막 시간, 50년 넘게 수제화를 만들어오신 세 분의 장인을 만나 보았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의 시대에,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해 완성한 장인의 수제화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봅니다.

“발이 편해야지! 신발은 무조건 편안해해.”

사람은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는 속담처럼 어떤 수제화를 골라야 하냐는 질문에 성수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장인들은 하나같이 발이 부드럽고 편한 신발이 잘 만든 신발이라 했다. 뭔가 특별한 비법이 숨어있을 것 같아 물었는데,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제일 중요했다.

현재 성수 수제화 거리에는 수많은 장인들이 수제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 정영수·유홍식·전태수 명장은 50년 이상 수제화 외길을 걸어온 분들이다. 구두와 함께 한 명장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그들의 공방을 찾아갔다.

1mm의 불편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영수 명장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천연가죽과 찹쌀풀만을 고집하는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첫 번째로 만난 명장은 정영수 명장이다. 그를 만나러 간 곳은 허름한 상가 건물이었다. 명장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니 화려한 작업장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뚝딱 뚝딱 망치질 소리와 층층이 쌓여있는 구두들, 석고 모양의 구두골을 설계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에서 이곳이 구두를 만드는 땀의 현장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영수 명장의 공방에선 일반 구두매장에서 나는 인공 화학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천연가죽과 찹쌀로 만든 풀을 쓴다는 그의 말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냄새만으로도 그 만의 차별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발 사이즈가 얼마일 것 같아 보이세요?”

구두 만들기의 기본은 발을 재는 것에서 시작하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질문했다.

“235는 딱 맞고, 240은 크고... 그 중간 사이즈가 좋겠네.”

우와~ 귀신이었다. 내 발사이즈를 재보지도 않고 체형만 보고 정확히 맞추다니 놀라웠다. 발을 통해 개인의 성격과 삶을 알 수 있다는 명인은 애인이 속을 썩이는 것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애인이 생기면 함께 구두를 핑계로 궁합을 봐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

정영수 명장은 꼼꼼한 구두골 설계와 가죽 재단을 통해 1mm의 불편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정영수 명장은 꼼꼼한 구두골 설계와 가죽 재단을 통해 1mm의 불편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구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발 모양 틀인 구두골을 만드는 일은 구두 전체의 뼈대를 잡는 일이어서 굉장히 까다롭고 섬세함이 요구된다. 설계가 완성되면 가죽으로 패턴 디자인을 하고, 이어 완성된 패턴의 가죽을 재단한다. 이 일 역시 구두골 설계만큼 까다롭고 꼼꼼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구두와 발의 편차가 3mm만 되어도 착용 시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정 명장은 연필이나 샤프가 아닌 날카로운 칼끝으로 치수를 표시한다. 자신이 만든 수제화는 구두와 발의 편차를 0.3~0.8mm까지만 혀용한다고 하니 그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죽 재단이 완성되면 이제 ‘한 땀 한 땀’ 바느질이 시작된다. 모양을 잡기 위해 촘촘히 박아둔 못을 하나씩 빼면서 바느질을 해야 하기에 봉제 시간은 보통 2~3시간이 걸린다. 이 때 바늘이 들어간 자리의 가죽 구멍이 커질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바늘구멍에 송진을 발라주는데, 이는 물이나 습기로 실이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렇게 구두가 제 모습을 갖추면 마지막으로 구두의 앞뒤를 딱딱하게 잡아주는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명인이 걸어온 길을 눈짐작으로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 공방에 쌓여 있는 수많은 구두골과 가죽, 부자재 등을 보면 그의 삶이 보이는 듯도 했다. 현재 장애인들의 의료화를 제작하고 있는 정영수 명장의 꿈은 ‘제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다. 50년 넘게 한국인의 인체에 맞는 제화를 만들어 왔던 기술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에게 의료화 제조 기술을 전수하여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그의 손은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두 살부터 시작한 구두장이 인생, 유홍식 명장

구두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유홍식 명장

구두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유홍식 명장

두 번째 만난 명장은 12살 때 시작하여 구두만 50년 넘게 만들어온 유홍식 명장이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부가 싫어 어린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 명동에서 구두 가게를 하고 있는 고향 선배를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선배가 “너, 아버지가 아시면 혼난다!” 하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두를 만들었다. 구두 만드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가죽을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꿰매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소가 배어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구두를 만드실 거예요?”라는 질문에 장인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그러면서 “힘들지 않아요.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왜 힘이 들겠어요. 다시 태어나도 난 구두장이로 살 거예요.”라고 했다.

아침마다 공방으로 출근하기 전 사우나에 들러 뜨거운 물에 몸을 푼다는 그는 그곳에서 수제화에 대한 스케치를 한다고 했다. 눈을 떠 눈을 감을 때까지 온통 구두에 대한 생각만 하는 그는 천상 구두장이였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스티치가 시그니처인 유홍식 명장이 만든 남성화

한 땀 한 땀 수놓은 스티치가 시그니처인 유홍식 명장이 만든 남성화

수작업 탓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거칠어진 손과 달리 명장은 애처가였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얼마 전 화가인 아내와 함께 합동 전시회를 가졌다고 한다. 남편은 구두로, 아내는 그림으로 각자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온 부부의 사랑은 좋은 가죽에서 풍겨나오는 내음만큼 진하게 번져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제화이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하여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마음에 들 때까지 수선해 준다고. 역시 그에게 구두는 판매하고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숨결이 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영부인도 반하다, 버선코 구두 제작자 전태수 명장

수제화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전태수 명장

수제화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전태수 명장

마지막으로 만난 명장은 전태수 명장이다. 얼마 전 끝난 주말연속극 ‘같이 살래요’에서 수제화 매장의 주인 겸 명장으로 출연한 배우 유동근의 자문역할을 맡기도 했고, 대통령 영부인의 버선코 구두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대적인 구두에 한복의 전통기법을 입혀 만들어낸 버선코 구두는 그만의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명품이었다.

한평생을 구두에 바쳤다는 전태수 명장에게 수제화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만들어 달라고 독촉하는 손님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수제화 제작에 보통 7일 정도가 소요됩니다. 기성화에 발을 맞추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죠. 치수를 재고 석고로 발 모양을 본뜨고 구두골을 설계하여 디자인을 합니다. 재단 과정을 마치면 가죽을 일일이 바느질하기 때문에 봉제에만 몇 시간을 쏟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 시작됩니다. 또한 풀이 말라야 하니, 그 시간만큼 진득하게 기다려야 훌륭한 수제화가 탄생할 수 있지요”라며 우물에선 숭늉을 마실 수 없고 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구두와 함께한 그에게 구두는 인생이자 생명 같은 존재라고 했다. 평생을 구두쟁이로 살아온 것처럼 젊은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남은 인생도 구두장이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현재 서울형특화산업지구 성수IT종합센터 ‘서울수제화아카데미’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명장다운 답변이었다. 젊은 인재의 세대교체를 위해 자신이 갈고 닦아온 기술을 기꺼이 전수하고 있는 그에게 명장이란 수식어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동안 만난 고객 중에 어떤 고객이 기억에 남냐고 물었더니 백문이불여일견이라며 명장의 휴대폰 속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인생이고 보물인 그 모든 것들을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공방을 나서는 한 켠에 걸려있는 사훈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해도 할 일을 지금하자! 어차피 할 일 정확하게 하자! 나는 금수저다 지금은 흙이 묻었을 뿐이다.’ 역시 명장 공방다운 사훈이었다.

장인의 정성 가득한 성수 수제화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장인의 정성 가득한 성수 수제화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성수 수제화 거리의 명장인 이 세 분들은 ‘성수 수제화 신기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하여 스타들의 신발을 만들었다. 배우 조태관의 구두는 정영수 명장이, 가수 유노윤호와 에릭남의 구두는 유홍식 명장이, 배우 손호준과 배우 손은서의 구두는 전태수 명장이 만들었는데, 이 구두들은 각각 세 켤레씩 만들어졌다. 하나는 스타가 신고, 다른 하나는 전시를, 나머지 하나는 경매를 통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화 제작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 한다. 경매는 12월에 있다고 하니 스타들의 구두를 소장하면서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번 경매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수제화에 자신만의 철학과 예술혼을 오롯이 담아내는 세 명의 명장을 통해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만들어지고 소유할 수 있는 세상, 명장들의 수제화는 기다림의 미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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