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욕구 불러일으키는 회현지하도 아날로그 산책

매거진 지하

Visit587 Date2018.11.15 17:36

우표 수집

우표 수집

회현지하도상가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아날로그적 풍경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한국은행과 서울중앙우체국의 영향으로 우표 및 기념화폐 수집 점포가 하나 둘 생겨났고 중고LP, 오디오, 카메라상점 등이 위치하면서 아직도 7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 감성의 보루다. 사운드의 생생함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LP, 디지털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특별함을 담는 필름 카메라,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우표 수집과 이름처럼 영원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만년필까지. 아날로그의 향수를 간직한 회현지하도상가의 시간 속으로 떠나본다. 

과거를 기록하는 것은 곧 현재를 모으는 것 | 광우사  

새로 나온 우표를 사서 우표책에 소중하게 꽂아 놓고 크리스마스실을 사서 모으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가게 안팎으로 이러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활사 박물관’과도 같은 이곳 <광우사>는 우표와 옛날 화폐를 비롯 각종 기념물들을 수집한다.

김병원 대표는 다양한 수집 취미 중에서, 우표 수집이 으뜸이라고 말한다. 우표는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이미 액면가가 제시된 유가증권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적 기념행사 때 발행되는 기념우표는 수집 취미에 역사적 기록도 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수집은 개인의 취미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수집이 쌓인다는 것은 개인사의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광우사에는 우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62년 발행된 오백 원짜리 지폐, 1969년 발행된 주택복권, 1975년 지하철 개통 기념으로 발매된 지하철 표 등 당대를 고스란히 담은 갖가지 품목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면서 발행된 2,000원짜리 기념지폐는, 기념지폐로서는 처음으로 발행된 것이라 소장 가치가 무척 높다고 한다.

매장에는 오래된 물건뿐 아니라 요즘 사용되고 있는 선불카드, 아이들이 갖고 노는 만화 카드 등 현재 진행형인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수집은 지나간 것을 찾거나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오늘이 모여야 과거를 기록하고 수집할 수 있다’는 말은 비단 수집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는 듯하다.(회현지하도상가 나-9, 10호/ 02-753-9210)  

벽면을 가득 채운 LP

벽면을 가득 채운 LP

아날로그 문화 전파사 | LP love (엘피러브) 

몇 년 전 아이돌 그룹이 한정판으로 LP를 발매했다. 아이돌 팬인 중고등 학생들에겐 LP 자체가 생소했던지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턴테이블’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LP를 듣던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자아내지만, 신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신문물이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 가게 이름 그대로 김지윤 대표는 30년 간 500만 장의 LP를 수집한, LP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마치 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빼곡히 쌓여 있는 클래식, 팝, OST, 가요 등 모든 장르의 LP들이 세월을 그대로 머금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LP love는 국내에 유통되는 기존 LP뿐 아니라 국내에선 찾기 힘든 귀한 LP도 보유하고 있다. 듣고 싶은 음악이나 갖고 싶은 LP의 경우 해외에서 직접 구해온 것들도 많다고. 때문에 이곳은 흔한 동네 레코드 가게가 아닌 문화를 수입해 오고 수집하는 ‘문화 전파사’이기도 하다. ‘LP를 찾아 나서는 순간이 곧 음악의 시작’이라는 LP love. 이곳은 음악에 대한 김 대표의 애정과 철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원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오늘날, 김 대표는 LP를 이렇게 비유했다. 디지털로 만든 소리는 깨끗하고 좋은 음향을 자랑하지만 향기 없는 꽃과 같다고, 반면 LP는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야생화와 같아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이다. (회현지하도상가 라-23, 24호 / 02-318-8255)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

순간을 필름에 담다 | 가산카메라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카메라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졌다. 소풍과 수학여행 때 카메라로 추억을 담고 일주일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었던 필름 사진들. 생각해보면 사진을 기다리는 자체가 기대와 설렘의 순간이었다.

<가산 카메라>에는 1970, 80년대 카메라부터 온갖 종류의 필름들이 진열되어 있다.

“지금은 오히려 필름카메라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어요. 물론 필름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다루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젊은 층 사이에서 레트로(복고) 감성이 트렌드이지 않습니까? 디지털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감성과 특별함을 필름카메라에 담고 싶어 해요. 또 찍은 후 기다렸다가 나오는 필름 사진에서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거든요.”

김영효 대표는 공무원 생활을 퇴직하고 평소 취미였던 사진찍기(출사, 出寫)를 더욱 전문적으로 즐기고자 가산카메라를 시작했다. 사진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그는 ‘기록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있는 그대로를 잘 찍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감성이 그대로 사진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감성이 모이고 모여 한 사람의 기록이 되고, 추억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회현지하도상가 바-29, 30호/02-771-5711) 

다양한 만년필

다양한 만년필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만년필의 기록들 | BOHEME (보엠)

‘떠돌이’를 뜻하는 ‘보헤미안’에서 따온 가게 이름이 특이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기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공재홍 대표의 설명이 곁들여지니 기록의 도구인 만년필을 파는 BOHEME(보엠)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곳의 단골고객은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만년필은 초보자들이 쓸 수 있는 보급형부터 수집과 보관용으로 제작되는 고가의 만년필 등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한 21세기 디지털 문화 속에서도 손으로 글씨를 쓰는 만년필 산업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예부터 만년필은 특별한 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하사품의 의미로 쓰였다. 졸업과 입학 시즌, 어른들에게 만년필 혹은 볼펜, 연필을 선물 받았던 건 아날로그 세대에겐 낯선 풍경은 아닐 듯하다. 요즘엔 장수와 영원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 존경하는 분들에게 역으로 선물하기도 한다고.

독일의 유명한 만년필 브랜드의 대표 ‘베른하르트 뢰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쓰면 느려지고, 느리면 분명해 진다’고. 그렇다. 가끔은 차분하게 여유를 갖고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글씨를 써보자.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 분명하게 그리고 천천히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 회현지하쇼핑센터 아-8호 / 02-777-0256)

출처 : 매거진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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