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홍난파 가옥에서 만난 ‘고향의 봄’

정명섭

Visit912 Date2018.09.17 16:52

홍난파 가옥

홍난파 가옥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 월암 근린공원과 홍난파 가옥

사람들은 길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이라는 선입견에 걸음을 멈추곤 한다. 나에게는 정동의 끝자락에 있는 강북삼성병원의 뒤편이 그러했다. 분명 도로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오르막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강북삼성 병원에 김구 선생님이 계셨던 경교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1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역사문화 마을인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용기를 내서 장벽을 넘는 전사의 기분으로 오르막길을 오르자 잘 조성된 화단이 있는 길과 새로 재개발된 아파트 단지들이 보였다.

성곽길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성곽길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편에 한양성곽이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사거리에 있는 돈의문에서부터 인왕산까지 이어지는 성곽인데 새로 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래쪽에는 조선시대 축성한 부분이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 쌓은 것도 시대별로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 때 처음 쌓았을 때는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와서 약간만 다듬은 상태로 쌓았고, 세종대왕 시절에는 모서리를 다듬어서 쌓았다. 마지막으로 순조 때 쌓은 부분은 마치 벽돌처럼 크기를 일정하게 다듬은 돌들을 올렸다. 성곽을 따라 월암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잔디밭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중간 중간 운동기구과 놀이기구들이 있다. 그리고 성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보인다. 무엇보다 언덕에 만들어져 있어서 주변 전망이 잘 보인다는 점도 이곳에 발길을 머물게 했다.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 근린공원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 근린공원

월암 근린공원은 단순히 한양 성곽을 따라 지어진 쉼터가 아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산책로 중간 즈음에는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운영하면서 일제 침략의 부당함에 저항했던 영국인 베델의 집터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있다. 배설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그는 일본의 모함 때문에 재판을 받고 수감까지 되어야만 했지만 끝끝내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담쟁이 뾰족한 지붕을 가진 서양식 주택과 만나게 된다. 담쟁이 넝쿨에 싸여 있는 고풍스러운 이곳은 원래 독일인 선교사가 살다가 후일 홍난파의 집으로 사용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그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고향의 봄과 봉선화 같은 가곡을 작곡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악단인 난파트리오를 결성해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일본에 협력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1941년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곳은 홍난파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으며, 주중에는 들어가 볼 수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고, 그가 작곡한 가곡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 시절의 홍난파와 만나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이렇듯 역사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을 찾아가서 역사와 만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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