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뭉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시민기자 이현정

Visit535 Date2018.08.14 15:10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의 동상 및 시비 등을 만날 수 있다

안중근의사 동상을 비롯해 남산 곳곳에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서울 착한 경제 (106) 광복절 맞이 남산 일대 역사여행

8월 15일은? 광복절! 그렇다면 8월 29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광복절이야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29일이 경술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29일은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는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한 날이다.​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나라를 되찾은 것일까,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스런 과거일까? 일제의 잔혹한 만행일까? 독립을 위한 의지일까? 진정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서울 남산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을 찾아서…

역대급 폭염이라지만, 남산의 짙은 녹음 아래로 들어서니 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하다. 서울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굽은 길을 따라 오르자니, 저만치 커다란 은행나무 뒤로 강렬한 여름 햇살을 가득 품은 조형물들이 보인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곳,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은 이곳 통감관저 2층에서 당시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앞서 창덕궁에서 조약안을 순종 황제에게 보이고 각 조항을 설명하고 가결하는 어전회의를 거치긴 했지만, 형식적인 회의일 뿐이었다. 조약 조인 사실은 일주일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29일 국원양여에 대한 순종의 칙유와 함께 반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통감관저는 1890년대 후반 일본공사관 용도로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했던 왜성대라 하여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데, 1885년 맺은 한성조약에 따라 일본공사관 부지로 내준 것이다.

일본공사관으로 쓰이던 건물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 체결로 통감부가 되었다. 일본인 통감이 외교 사무를 대행한다는 것인데, 통감부는 실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설치한 감독 기관이었다. 점차 그 비중과 권한이 커지며 공간이 부족해지자, 1907년 인근에 새로 지어 옮기고 이곳은 통감관저로 사용되었다. ​현재 통감관저 건물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당시 관저 입구에 서 있던 은행나무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통감관저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안쪽 나무 그늘 아래 부끄러운 듯 숨어있다. 2010년 8월 2일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것이다.

통감관저 터, ‘거꾸로 세운 동상’ 뒤로 이곳에 통감관저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통감관저 터, ‘거꾸로 세운 동상’ 뒤로 이곳에 통감관저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앞엔 낯선 조형물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거꾸로 세운 동상’으로,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섰던 ‘하야시 곤스케’ 동상의 돌 조각 3점을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는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그 일환으로 2015년 8월 22일 설치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검은 원반형 반석 위,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새겨진 글귀가 한여름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설치물 ‘세상의 배꼽’인데, 2016년 8월 29일 이곳 통감관저 터에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기억의 터’를 조성하며 설치한 것이다. 입구 쪽에는 위안부피해 할머니 247명의 성함과 증언을 시기별로 새긴 조형물 ‘대지의 눈’이 있는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또다시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기억의 터 ‘대지의 눈’ 조형물

기억의 터 ‘대지의 눈’ 조형물

흔적 없이 사라진 자리에 되살아난 항일 불꽃

오던 길을 되돌아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찾았다. 1907년 확장 이전한 통감부가 있던 자리로, 남산순환버스 정거장 옆 표지석만이 옛 통감부이자 조선총독부 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한일병합조약 체결 후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보다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이곳은 19926년 경복궁 안에 신청사를 짓고 옮기기 전까지 조선총독부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통감부터 표지석 옆엔 김익산의사 의거지 표지석이 나란히 놓여 있다. 1921년 9월,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익상은 이곳 조선총독부 사무실에 폭탄을 던진 후, 일본의 철통 포위망을 뚫고 중국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일본인의 조상을 모시는 ‘경성신사’를 지었던 터

일본인의 조상을 모시는 ‘경성신사’를 지었던 터

서울애니메이션센터를 지나, 숭의여자대학교 언덕길을 올랐다. 1898년, 일본인들은 이곳에 일본인의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모신 남산대신궁을 건립했다. 이후 서울 각지에 신사가 세워졌으며, 1916년 남산대신궁을 정식 신사인 경성신사로 바꾼다. 경성신사의 주신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 외에도, 일본 국토를 개척한 세 신 오쿠니타마노미코토, 오나무치노미코토,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로 확대되었다. 이는 한반도가 일본제국의 영토임을 종교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남산을 일본인의 성역으로 만들려고 했다. 1925년에는 경성신궁보다 격이 높은 조선신궁을 세운다. 남산 능선 성곽을 허물고, 힐튼호텔 앞 삼거리부터 언덕 위 백범광장, 안중근의사 기념관, 분수대, 옛 남산식물원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공간에 조성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메이지천황을 주신으로 삼은 조선신궁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 정책 및 전시 황민화 정책을 앞장서서 수행한 국가신도의 전진기지였다.​

일본군 장군을 기리는 ‘노기신사’가 세워진 터에 손이나 입을 씻기 위한 ‘데미즈야’가 남아 있다

일본군 장군을 기리는 ‘노기신사’가 세워진 터에 손이나 입을 씻기 위한 ‘데미즈야’가 남아 있다

1934년에는 러일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노기 마레스케 일본군 장군을 기리는 노기신사가 세워졌다. 노기 마레스케는 메이지천황이 죽자 부인과 함께 자결함으로써 일본에서 충신으로 유명해진 인물인데, 노기의 죽음을 본받아 조선인도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현재 리라초등학교 뒤 남산원 운동장과 화단에는 신사에서 사용됐던 유구가 의자나 화단 지지대 등으로 남아 있다. 남산원 입구에는 일본 신사나 사찰 경내에 두어 참배자가 참배하기 전 손이나 입을 씻는 용도 사용되었던 데미즈야가 남아 있다. 앞면에는 마음을 씻으라는 뜻의 ‘세심’이, 뒷면에는 수조 기증 연도와 기증자가 새겨져 있다.

이렇듯 남산 곳곳에는 일제에 의해 신사가 잇따라 들어섰다. 남산 기슭에는 통감부와 통감관저뿐 아니라, 정무총감관저(현재의 필동 한국의 집), 헌병대사령부(현재의 남산골 한옥마을)와 같은 식민통치기구와 군사시설이 있었다. 또한, 일본인 거류 구역이 된 진고개 일대(오늘날 중구 예장동과 주자동, 충무로1가에 이르는 지역)에는 화려한 상가가 조성되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경제수탈기구가 들어섰다. 이로써 남산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공간이 됐다.

3.1독립운동기념탑(좌), 안중근의사 기념관(우)

3.1독립운동기념탑(좌), 안중근의사 기념관(우)

하지만 남산에는 당시 일본에 의해 세워진 신사나 건물들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해방되던 해 성난 국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대신 현재 남산 곳곳에는 김익산의사 의거지 표지석을 비롯해,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 동상과 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는 ‘백범광장’,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배출한 ‘성재 이시영 동상’, ‘조지훈 시비’, ‘3.1독립운동기념탑’, ‘유관순 동상’, ‘이준 열사 동상’, ‘만해 한용운 시비’,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등이 있다. 당시 항일불꽃으로 산화해간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살펴보자니, 문득 ‘당신은 제대로 잘살고 있습니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목숨까지 걸며 지키고자 했던,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우리는 잘 지켜가고 있는 것일까?

일제의 식민지 지배 중심부였던 남산은 이제 선조들의 독립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민족공원으로 되살아났다. 남은 8월은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문구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남산 일대를 둘러봐도 좋겠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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