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광복절 의미 되새길 수 있는 곳

시민기자 최용수 시민기자 최용수

Visit489 Date2018.08.10 15:47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비석이 없는 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비석이 없는 묘)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의 독립이 되거든 조국으로 나의 유골을 운구해 달라”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전 남긴 유언이다. 의사가 순국(殉國)한지 어느덧 108년이나 되었건만 유언조차 온전히 받들지 못하고 가묘(假墓) 형태로 효창공원 ‘3의사묘역(三義士墓域)’에 모셔 있다니, 후손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웠다.

며칠 후면 광복절이다. 광복절을 맞아 효창공원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보통의 도심공원과는 달리 효창공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하늘과 대지를 이어줄 듯 신비감이 느껴진다.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하늘과 대지를 이어줄 듯 신비감이 느껴진다.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2번 출구에서 도보 10여 분 거리, 공원입구 창열문(彰烈門)을 들어서니 우뚝 선 ‘상징조형물’이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이어줄 듯 신비감이 묻어난다.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공원을 걷는다. 약 12만3,307㎡의 공원은 ‘3의사묘역’과 ‘임시정부요인묘역’ 그리고 ‘김구묘역’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지금의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효창원(孝昌園)’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청나라 군대가 진압 차 파병되었고, 일본도 1885년 청과 맺은 텐진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파병했다.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문 효창원을 일본군 주둔지로 결정하고 비밀병참기지로 삼았다. 조선왕가의 원소(園所)였던 효창원을 일본은 군대를 주둔시켜 독립군 토벌작전의 아지트로 활용했다. 1924년에는 일부를 공원화 하더니 급기야 1943년에는 문효세자의 묘까지 서삼릉(西三陵, 고양)으로 이장한다. 해방 후 일제의 모든 시설은 철거되었고 그곳에는 7인의 애국지사가 영면(永眠)하고 있다.

애국지사 7인(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이동녕, 차이석, 저성환, 김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열사 내부 모습

애국지사 7인(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이동녕, 차이석, 저성환, 김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열사 내부 모습

공원의 중앙에는 애국지사 7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열사(義烈祠)와 ‘3의사묘(三義士墓)’가 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박열, 이강훈 등이 3의사의 유골 수습을 촉구하여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이 발족된다. 상하이 훙커우공원(지금의 루쉰공원)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 행사 때 물통폭탄을 투척한 매헌 윤봉길 의사(義士)와 도쿄에서 일왕을 폭사(爆死)시키려다가 사형 당한 이봉창 의사, 상하이에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옥사한 구파 백정기 의사가 바로 그들이다. 3의사의 유해가 국내로 운구되어 공원 중앙에 안장한 것이 ‘3의사묘역(三義士墓域)’이다. ‘3의사묘(三義士墓)’에는 비석이 없는 가묘(假墓)가 하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안장될 자리이다. 언제쯤 그날이 올까? 면목이 없다.

공원 우측에 있는 임시정부요인묘역, 좌로부터 차이석, 이동녕, 조성환의 묘

공원 우측에 있는 임시정부요인묘역, 좌로부터 차이석, 이동녕, 조성환의 묘

3의사묘역의 오른편에는 1948년에 조성한 ‘임시정부요인묘역(臨時政府要人墓域)’이 있다.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고 임시정부와 운명을 함께 했던 임정요원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이 모셔져 있다. 이동녕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의 소장이 역임했고, 만주·연해주 일대 독립운동 조직의 운영을 맡았다. 1919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는 등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영면할 때까지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차이석은 임시정부 해체 위기마다 임시정부 수호에 앞장섰던 인물로 임시의정원 부의장, 임시정부 비서장 등을 지냈다.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인 조성환은 1912년 만주를 시찰하던 일본 총리(사쓰라) 암살을 기도하다 발각되어 유형(流刑) 생활을 했고, 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과 군사특파단장을 역임하며 한국광복군 창설과 운영에 크게 기여한 애국지사였다.

백범김구기념관, 뱀범의 일생과 독립운동 관련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뱀범의 일생과 독립운동 관련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의열사 왼쪽에는 백범 김구 묘와 기념관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백범은 해방 후 새로운 국가 건설에 앞장서던 중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암살된다. 당시 전 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이 거행되었고 유해는 ‘3의사묘역’이 있는 효창공원에 안장된다. 동학군 ‘애기 접주(接主)’로 보낸 소년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에 이르기까지 대한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한국근대사 그 자체였다. 일제가 내건 현상금이 수십억 이상이 되었다니 그의 비중을 짐작하고 남을 것 같다. 2002년에 건설된 ‘백범김구기념관’은 그의 삶과 임시정부 독립운동을 한 눈에 보여준다.

효창공원은 7인의 애국지사 묘역 외에도 다양함이 있어 좋다. 동쪽 높은 곳에는 신라의 고승(古僧)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원효로’라는 도로명이 원효대사의 법명에서 따왔다니 흥미롭다. 공원 상징조형물과 반공투사위령탑이 있고, 자연학습장과 어린이 놀이터, 3개 코스의 산책로가 숲속으로 조성되어 있다. 산책길은 코코메트와 나무데크 무장애길이어서 운동하는 주민들로 넘쳐났다.

효창공원에는 애국지사의 뜻을 새긴 무궁화 동산이 있다(윤봉길 무궁화 모습, 거사 당시 시간을 형상화했다)

효창공원에는 애국지사의 뜻을 새긴 무궁화 동산이 있다(윤봉길 무궁화 모습, 거사 당시 시간을 형상화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한 말이다.

깊은 고뇌와 정치철학이 담긴 그의 소원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며칠 후면 광복절이다. 의미 있는 광복절을 기념하고 싶다면 효창공원으로의 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무궁화 향기 넘실대는 효창공원에서 7인의 애국지사를 만나는 것, 후손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보답 아닐까.

■ 효창공원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교통 :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 1,2번 출구 도보 10분
○문의 : 02-2199-8823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동일조건변경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