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향기 솔솔~ ‘피천득산책로’부터 ‘허밍웨이길’까지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8.07.17. 15:12

수정일 2018.07.17. 17:29

조회 3,324

금아 선생의 노년기 모습을 담은 청동좌상

금아 선생의 노년기 모습을 담은 청동좌상

작가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서초구 반포천변에 조성됐다. 지난 7월 11일 개방한 이 산책로 이름은 ‘피천득 산책로’이다. 한국 수필문학에 한 획을 그은 수필가이자 시인이었던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선생을 기리는 산책로다.

반포천 일대는 금아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으로 금아 선생은 1980년부터 2007년까지 27년간 반포천 인근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집필 활동을 하던 틈틈이 반포천 둑길을 즐겨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을 ‘피천득 산책로’로 조성한 데는 그 같은 인연에서다.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앞으로 나오면 얼마 가지 않아 산책로 시작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책로는 고속터미널역에서 이수교차로에 이르는 1.7km까지 줄곧 이어진다.

숲속을 걷는 듯한 반포천변 산책로

숲속을 걷는 듯한 반포천변 산책로

반포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책로 양쪽으로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빽빽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푸른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포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서초구 우면산에서 발원하여 서초동, 논현동을 거쳐 지류인 사당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다.

반포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책로

반포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책로

느티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1km 정도 걷다보면 소공원이 보인다. 새롭게 조성한 이 공원에는 책 모양 조형물이 자리를 잡았다. 높이 2.2m의 대형 책 조형물은 금아선생의 대표작인 ‘인연’과 ‘이 순간’이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금아 선생의 대표작 ‘인연’ 중 한 대목을 책조형물에서 찾아 읽어 내린다. 애틋함을 자아내는 글귀가 가슴을 파고든다. 일본인 여성과의 오랜 인연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고백하듯 담아낸 이 수필은 간결한 언어로 절제된 감정을 표현한 수작으로 꼽힌다. 모두에게 고루 사랑을 받고 많이 읽힌 이 수필은 아예 두 쪽 분량으로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도록 활자화 했다.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씨도 키웠다.

`인연`의 한 대목을 읽을 수 있는 책 모양 조형물

`인연`의 한 대목을 읽을 수 있는 책 모양 조형물

금아 선생의 노년기 모습을 담은 청동좌상도 보인다. 시상을 떠올려 보려는 듯 고개를 든 채다. 이곳은 금아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민들의 포토존이기도 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의 금아 선생의 청동상 옆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음미하려는 듯 길 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둥그런 목재평상 3개를 배치했는데 금아 선생의 작품세계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선선한 봄가을로 이곳에서 시민들의 문화특강과 독서 토론회가 열리면 참 좋을 것 같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 문화특강과 독서토론회를 열어도 좋을 법한 공원

느티나무 아래 평상, 문화특강과 독서토론회를 열어도 좋을 법한 공원

조형물이 있는 공원을 나서면 다시 숲터널이 이어진다. 금아 선생의 작품인 ‘백날애기’, ‘너는 이제’, ‘꽃씨와 도둑’ 등 책 모양의 조형물도 연이어 나타난다. 10여m 간격으로 놓인 하얀색 벤치에도 앉아본다. 벤치 등받이에는 시가 적혀 있다. 금아 선생 특유의 천진스럽고 소박한 시들이라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마음을 울리는 글귀를 한 점씩 읽으며 걸음을 떼다보면 가슴 한켠 잊고 지내던 감성을 불러 일으켜 어느덧 풍성한 마음 속 여유를 찾게 된다.

벤치 등받이에 적힌 피천득의 시

벤치 등받이에 적힌 피천득의 시

산책로 아래 반포천 둑길로 내려가 금아 선생처럼 뚝방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이때쯤 만발한 주홍빛깔 원추리꽃이 등처럼 길을 밝힌다. 둑길 사면에는 황매화 비비추, 기린초 등 초화류도 있어 계절별 피고 지는 꽃을 감상하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원추리꽃이 만발한 반포천 둑길가

원추리꽃이 만발한 반포천 둑길가

제방 너머로 이수교차로가 모습을 드러내면 피천득 산책로는 끝 지점에 다다르지만 길은 계속 이어진다. 동작역 1번 출구 앞까지 500여m 이어지는 이 산책로는 반포천 인근 주민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허밍웨이길’로 불린다. 콧노래가 나오는 쾌적한 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잣나무가 우거진 이 길은 2010년 서울시 여성행복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여성이 행복한 길로 인증 받은 길이기도 하다. 물론 남성들이 걸어도 무방한 길이다. ‘허밍웨이길’ 끝 지점은 동작역 1번 출구 앞이다. 여기서 몇 걸음만 직진하면 동작대교에 닿는다.

허밍웨이 길

허밍웨이길

한강의 풍광을 보려면 동작대교에 꼭 올라가 보길 권한다. 오른쪽으로 버드나무와 무성한 갈대가 물결을 이루는 반포한강공원과 서래섬, 잠수교를 조망할 수 있다. 푸른빛 동작대교 너머로는 용산 일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와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신다.

동작대교 너머로 보이는 용산 일대

동작대교 너머로 보이는 용산 일대

언제 읽어도 감동을 주는 글로 모두에게 고른 사랑을 받았던 금아 선생의 작품은 이제 반포천변 산책로에 남아 여전히 향기를 전하고 있다.

■ 피천득 산책로

○ 위치 :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이수교차로 반포천변 구간

○ 총길이 : 1.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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