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그를 뽑자 삶이 풍요로워졌다” 비전화공방 사람들

시민기자 이현정 시민기자 이현정

Visit731 Date2018.04.10 15:56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의 추구하는 비전화공방 사람들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의 추구하는 비전화공방 사람들

함께서울 착한경제 (97) – 전기 없이 돈 없이도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

지난주 첫 방영된 TV 프로그램 <숲속의 작은집>이 신선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프 그리드 라이프(Off-Grid Life 공공의 전기·가스·난방이 되지 않는 삶), 미니멀리즘(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 ASMR(바람·시냇물·비소리 등 자율감각 쾌락반응) 소리 담기, 슬로우 라이프 등 남다른 삶의 방식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이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있다. ‘비전화공방’ 사람들이다.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실현하고 있다는데,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빵을 구울 돌가마를 제작하고 있다.

​빵을 구울 돌가마를 제작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혔다. 하루하루 나의 능력과 열정의 최대치를 뽑아내야 하는 삶. 행여 뒤처질까 맘 편히 쉬지도 못한 채,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지쳐가고 있었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슬며시 회의가 밀려오는 순간, 눈길을 사로잡은 곳이 있다. 비전화공방. 이름도 낯선 이곳에선 스스로 먹을 것을 농사 짓고, 필요한 것은 만들어 쓰며, 전기 사용은 최대한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며, 자연친화적인 주택을 지어 생활한다고 한다.

비전화공방은 2000년 일본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가 일본의 나스에서 시작했다. 비전화공방의 제자들은 ‘3만엔 비즈니스’, 그러니까 ‘30만 원만 버는 비즈니스’로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해졌다고 한다. 몸도 힘들고 벌이는 부족해서 불안할 것만 같은데, 그들은 “이제야 드디어 나답게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들은 정말 행복해진 걸까?

비전화공방은 이제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울혁신파크에 둥지를 튼 비전화공방 서울은 지난해 봄 ‘비전화제작자’ 1기를 모집했다.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12명의 청년은 지난 1년 동안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의 제자 인증과정을 마쳤다.

이들은 서울혁신파크 내 농장에서 스스로 먹을 채소나 약초도 전통 농업 및 유기순환 농법으로 재배하고 수확했다. 양동이에 황토를 깔고 논을 만들어 벼농사도 지었다. 방사능 측정기를 설치해 사용하고 분석하는 방법도 배웠다.

비전화 제품을 직접 만들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도 실험하고, 전기를 지혜롭게 쓸 수 있도록 공부했다. 수제 도정기로 쌀을 도정해 밥을 지어 먹고, 비전화로스팅기로 직접 로스팅해 커피를 내려 마신다. 냉장고를 쓰지 않고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을 찾고, 비전화 냉장고 실험도 했다.

필요한 제품은 직접 만들어 쓴다. 졸업의례에 전시한 직접 만든 비전화 제품들

필요한 제품은 직접 만들어 쓴다. 졸업의례에 전시한 직접 만든 비전화 제품들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 소독만 해주면 내용물 교체 없이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전기도 필터도 필요 없는 정수기, 자신만의 멋진 태양열 식품건조기를 만들고 레시피도 개발했다. 맛있는 빵을 구울 수 있는 돌가마 제작 방식을 배우고, 화덕을 만들어 직접 난을 만들어 먹는다.

목조 스트로베일공업으로 직접 도면을 제작하고 동료들과 힘을 합쳐 비전화 카페도 짓고 있다. 전기가 없어도 풍요로운 카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또한, 이들은 ‘3만엔 비즈니스’의 철학을 배우고, 한 달에 이틀 일해 30만 원을 벌고 적게 벌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구체화하고 있다. 돈이 아닌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 자립력을 기르고 동료애를 확장했다.

이들은 이렇게 배우고 익힌 모든 것들을 시민들과 기꺼이 공유한다. 마르쉐시장@문화비축기지에 판매자로 참가해 시민들에게 비전화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꾸준히 시민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다. 시민 워크숍은 비전화공방 홈페이지비전화공방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 누구나 참가 신청할 수 있다.

비전화제작자 1기 졸업의례에서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전화제작자 1기 졸업의례에서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서울혁신파크 내 전봇대 집에서는 비전화제작자 1기 졸업의례 ‘서두르지 않고 한 발’이 있었다. 비전화공방에서의 1년 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졸업 후 자신이 계획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가졌다.

비전화 제작자들은 이제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해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난 뭘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 실패할 용기가 없었던 거구나” 깨닫게 되었다며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패해보니 별거 없구나 싶으면서 실천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비전화 공방은 스스로 바라는 삶을 찾고 그렇게 살아내는 힘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인가?’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인가?’ 스스로 되물으며 자신의 별을 찾아가는 자립의 과정이었다.

마르쉐@문화비축기지에서 직접 만든 식품건조기를 설명하고 있는 제작자

마르쉐@문화비축기지에서 직접 만든 식품건조기를 설명하고 있는 제작자

비전화 제작자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한다. 비전화공방에서 이들은 생활, 일, 기술, 사회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를 배우고, 공부와 기술, 생활, 일, 환경을 융합하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함께 하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중한 동료를 만난 것에 감사했다. 전기와 화학제품에 의존하지 않고도, 애써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 건 바로 동료가 있어서가 아닐까?

청년들은 이미 몇 해 전부터 현재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희망조차 남지 않았음을 자조해왔다. 그 비아냥거림 속에는 현재의 기성세대가 고집해온 삶의 방식이 이젠 더 이상 정답이 될 수 없음을 담고 있다.

오늘날 지구를 병들게 하는 전기와 화학물질, 그리고 돈에서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 이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혁신이 아닐까? 진정 내가 바라는 삶을 나답게 살아가는 것은 오늘날 청년들이 꿈꾸는 삶의 대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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