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맛있‘소’! 입에서 살살 녹는 한우

정동현

발행일 2018.03.05. 14:51

수정일 2018.04.30. 13:56

조회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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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30) 중구 다동 ‘낙동강’

넘실대는 그 강을 보면 죽음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낙동강에 페놀 방류 사건이 일어나고, 부산 사람들은 한동안 수돗물 마시는 것도 꺼려했다. 가끔 서울에서 친척이 내려오면 ‘수돗물 냄새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동네에 흐르는 하천에서는 썩은 내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때마침 완공된 낙동강 하구둑을 두고 여론이 나뉘었다. 밀물 때는 밀양까지 짠물이 밀고 올라와 김해평야에 댈 물이 없었다는 하구둑 건설 찬성논리와 하구둑 때문에 을숙도 철새 도래지가 파괴되고 갯벌이 사라졌다는 반대논리는 줄이 꼬인 두 개의 연처럼 서로를 엮고 또 엮었지만 어쨌든 지어진 둑을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민물과 짠물을 오고가던 물고기들의 길은 이미 막힌 뒤였다. 텔레비전에서는 기자가 강가에 가서 등 굽은 물고기를 들고 오염이 심각하다는 멘트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약수터에 줄을 서서 물 받는 것도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휴일이면 산 중턱의 약수터에 물통을 줄 세워놓고 배드민턴을 치는 중년 남녀 사이에서 친구들과 돌 위를 건너뛰며 놀았다. 그때부터 ‘먹는 샘물’을 팔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물도 사먹는 시대’가 되었다며 수군거렸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물을 사먹는 시대가 되었다. 하다못해 정수 필터라도 걸러야 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등 굽은 물고기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낙동강은 길고 긴 푸른 잔디밭이 된다. 녹조로 뒤덮인 낙동강 위로 물고기는 여전히 떼죽음을 당한다. 나는 그곳을 떠나 서울에 산 지 오래다. 낙동강 물이 아니라 한강 물을 마시며 사투리 대신 표준말을 쓴다. 갈매기는 보이지 않고 매연을 뒤집어 쓴 비둘기뿐이다. 태풍은 이 도시를 비껴나가고 바다는 멀리 있어 공기 중에 짠내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약수터에 올라가 친구들과 뛰어노는 대신 건물과 건물 사이 바람이 세차게 드나드는 골목 어귀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며 하루의 절반을 써버린다. 을지로 다동의 골목에서 ‘낙동강’이란 이름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단골 집을 찾아 길을 찾던 중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낙동강’이란 옥호를 쓰는 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름을 기억했다. 잊혀 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날을 잡아 그 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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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낙동강’이란 파란 글자만 보였다. 좁은 골목이라 그만큼 작은 집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보니 뒤로 꽤 큰 크기로 건물이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문지방으로 경계가 나뉜 여러 방이 있었다. 여느 가정집처럼 초록 관엽 식물 화분도 여럿 있었다. 벽에 액자가 붙어 있고 깊게 무늬를 넣은 옛스런 가구들도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넣었다. 이곳은 내가 낙동강 어귀 살 적처럼, 동그랗게 모양을 잡은 소고기 등심을 팔았다.

그 시절에는 소고기 부위를 나누지 않고 ‘로스구이’로 퉁 쳐서 팔았다.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먹고 살만해지면서 소고기 부위는 세분화 되었다. 이 집의 고기는 한우 등심이다. 그 등심을 옛날처럼 굳이 모양을 잡아 얼려서 얇게 저몄다. 사대문 안에서 한우를 먹으려고 하니 싼 값은 아니다. 숯불을 넣고 고기를 올렸다. 화력이 좋으니 고기는 금방 익었다. 고기를 참기름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고기는 씹히기보다 사탕처럼 서서히 녹았다. 소고기의 지방은 상온에서는 굳고 열을 가하면 녹는다. 불을 만나 녹은 지방에 혀에 묻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비싼 고기를 얼린 이유는 얇게 저미기 위해서일 것이고 이 고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여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씹는 맛은 덜하다는 말은 씹는 수고가 덜하다는 뜻도 된다. 고춧가루를 듬뿍 쓴 파채를 곁들이다 보니 한 사람 당 이인분을 쉽게 해치웠다. 따로 시킨 된장찌개는 이 집의 명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 직장인들이 몰려와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일을 하듯 빠르게 숟가락질을 한다고 했다. 저녁 한적한 시간에 들렀기에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모닥불이 따닥따닥 소리를 내듯 매콤한 맛이 혀를 툭툭 치고 물컹하게 익은 무가 달큰한 맛을 내며 이에 물리니 속도를 줄이기가 힘들었다. 다음 약속이 있는 양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던 주인은 ‘왜 이리 빨리 드셨냐’며 웃고 ‘자주 오라’고 말을 덧붙였다.

밖으로 나오니 한강의 민물 냄새 은근히 풍기는 서울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서울에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나는 잊혀져가는 모양새와 맛을 내는 음식을 먹었다. 그 맛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말초 신경이 아닌 뼈와 근육이 알고 느끼는 맛이었다. 그리고 나를 키우고 나를 만든 이름이었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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