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숲길' 따라 도심 속 힐링산책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09.28. 15:57

수정일 2017.09.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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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좋은 전망대이자 쉼터, 팔각정 ⓒ김종성

북악산의 좋은 전망대이자 쉼터, 팔각정

서울시가 조성한 테마 산책길 가운데 ‘세검정 계곡 숲길’은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북악산 자락 홍제천 상류에 자리한 정자 세검정에서 이어지는데, 운치 있는 계곡 백사실과 울창한 북악산 오솔길을 품고 있는 코스다. 따로 길을 만든 게 아니고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지나는 길을 자연스럽게 이어 만들었다.

상명대학교가 보이는 세검정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홍제천 상류의 물소리가 들리고 세검정이 보인다. 세검정(洗劍亭)은 한자 이름대로 조선 시대 인조가 이귀, 김류 등 부하들과 함께 반정을 모의하며 칼을 씻은 곳으로 알려졌지만, 세검정은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세초(洗草)의 현장이었다.

세초는 원고지를 씻는다는 뜻으로 조선왕조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사초(史草)와 원고들의 누설을 막기 위한 작업을 말한다. 간혹 불태우기도 했으나 보통은 종이를 물에 씻어 글자는 지워버리고 종이는 재활용했다. 세검정 인근에 종이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국가기관인 조지서(造紙署)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종이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재생산했다.

세검정 주변에 남아있는 단층의 옛집들 ⓒ김종성

세검정 주변에 남아있는 단층의 옛집들

정말 세검정 앞에는 세초를 했음 직한 평평하고 널찍한 너럭바위가 있다. 세검정 앞에 안내 글과 함께 정자와 주변 풍경이 펼쳐진 겸재 정선의 부채 그림이 전시돼 있다.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다. 겸재 선생의 세검정 그림을 보니 지난 세월만큼이나 주변 풍광이 참 많이 달라졌다.

세검정을 지나면 수수함이 묻어나는 동네가 여행자를 반긴다. 종로구의 번잡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경이다. 단층의 어느 집은 담벼락에 호박, 토마토를 키우고 있는데 절로 미소가 번진다. 가게 앞에 평상을 둔 작은 슈퍼와 마주쳤는데 이름이 ‘자하 슈퍼’다.

그 옆에 있는 다세대주택 이름은 ‘자하 주택’. 여기서의 ‘자하’는 인근의 자하문을 이르는 것으로 서울 한양도성에 있는 사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의 애칭이다. 창의문은 인근 주민들에게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었다. 가까이에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웠던 ‘자하 골’이라는 마을에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백사실 계곡 입구에 자리한 현통사 ⓒ김종성

백사실 계곡 입구에 자리한 현통사

자하 슈퍼를 지나면 오른쪽 골목 입구에 ‘불암(佛岩)’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것을 끼고 골목길 위로 올라가면 어린이집이 하나 보인다. 비로소 골목을 벗어나 북악산으로 오르게 되는 것이다.

산 들머리에 자리한 작은 절 현통사 옆으로 매끈하고 커다란 바위와 그 위로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줄기가 곧이어 계곡이 나타날 것을 알려줬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서 채 30분도 걷지 않았는데 이런 풍경을 만나자 나도 모르게 ‘여기가 서울 맞나?’ 혼잣말을 했다.

작은 오솔길이 이어지는 산 들머리에는 ‘산에 멧돼지가 살고 있으니 주의 바람’이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300여 미터 높지 않은 산에 무슨 멧돼지가 살까?’ 싶었으나 계곡과 나무들로 울창한 초록 숲 속에 들어서자 마치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온 것처럼 멧돼지보다 더한 짐승도 살 것 같았다.

북악산엔 느티나무, 산벚나무 외에 1960년대 척박한 산을 살리기 위해 들여온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참나무류 중엔 상수리나무가 많이 보였다.

많은 수생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사는 백사실 계곡 큰 연못 ⓒ김종성

많은 수생식물과 곤충, 동물들이 사는 백사실 계곡 큰 연못

숲속 길섶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글자가 새겨진 오래된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안내판을 보니 ‘백석’은 ‘백악’ 즉 ‘북악산’을 말한다. ‘동천’이란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에 붙이는 자구로 이곳이 예부터 알아주던 절경이었다는 표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 되겠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는 ‘백사실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백사실 계곡은 도롱뇽과 가재, 무당개구리, 북방 개구리 등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귀한 도롱뇽은 보기 힘들지만, 개구리는 개체 수가 많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거진 숲과 맑은 물 덕분이다.

숲속 옹달샘 같은 아담한 연못가에 서서 연못 속에 잠긴 고요한 산속 풍경을 감상했다. 들리는 건 물소리와 새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 소리뿐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청아한 계곡 물소리가 듣고 싶다면 비가 내린 후 찾아가면 된다.

백사실 계곡에 남아있는 별서 터 ⓒ김종성

백사실 계곡에 남아있는 별서 터

연못 옆에는 조선시대 별서 터가 있다. 농장이나 들 근처에 별장처럼 따로 지어놓고 농사를 짓던 집을 별서라고 한다. 또한 이곳은 창덕궁 궁녀들이 와서 빨래하던 곳이라고 한다. 숲 풍경도 좋고 물도 맑고 풍부하니 빨래를 하는 궁녀들도 기분 좋았을 것 같다.

백사실 계곡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오염과 훼손의 위험이 대두되자 서울시는 계곡 일대를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젠 예전처럼 계곡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할 수 없다.

돌돌돌~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 사람이 걸어가기 딱 좋은 계곡 옆 오솔길을 걷다 보면 시골 민가 같은 수수한 집들이 나온다. 소박한 비닐하우스도 보이고 돌담 너머 텃밭에는 호박, 옥수수, 고추 등이 정성스레 심겨 있다. 지금은 심지 않지만, 예전엔 능금이 많이 나서 지금도 능금마을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능금마을을 지나면 숲길이 끝나고 부암동으로 이어진다. 북악산을 더 느끼고 싶다면 숲 길가에 ‘약수터(북악산 팔각정)’라 쓰여 있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산속에 난 작은 오솔길이 마치 북악산 속살 같이 부드럽다. 길도 경사가 급하거나 험하지 않다.

북악산 팔각정에서 보이는 북한산 능선 ⓒ김종성

북악산 팔각정에서 보이는 북한산 능선

숲속 오솔길을 지나면 북악산로(북악스카이웨이)를 만난다. 남산처럼 북악산에 난 차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간첩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 산을 타고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수도 방어와 관광을 목적으로 북악스카이웨이를 건설했다. 차도 옆에 만든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전망 좋은 곳에 서 있는 북악팔각정이 수고했다며 여행자를 반긴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의 힐링 명소 세검정숲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세검정부터 백사실계곡과 북악산 팔각정까지, 멀리 떠나는 여행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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