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선 안 될 역사 ‘국치의 길’, 미리 가보다

시민기자 최용수, 김경민

Visit910 Date2017.09.27 15:30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 경술국치의 현장 ⓒ최용수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 경술국치의 현장

‘국치일(國恥日, 나라가 수치를 당한 날)’,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날인 1910년 8월 29일을 말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법,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국치의 길’을 조성 중이다.

서울의 대표 명소 남산. 이곳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암울한 역사를 올올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1910년 한일병탄조약 이후 사실상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 의해 피탈되면서, 일제는 조선의 얼굴이자 수도 한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산에 가장 격이 높은 조선 신궁을 세운다. 그 후 메이지 왕을 제신으로 숭배하게 했으며, 조선 통치 중추인 통감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남산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서고 1995년 이전하기까지 100여 년간 시민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그 치욕스러운 역사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현재 조성 중인 국치의 길을 둘러보고 있는 시민위원 310 ⓒ김경민

현재 조성 중인 국치의 길을 둘러보고 있는 시민위원 310

남산 ‘국치의 길’은 바로 이러한 역사 현장을 직접 걸으며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의미로 일제강점기 역사현장을 조성 중이다. ‘한국통감관저 터’에서부터 ‘조선신궁’까지 총 1.7km의 역사탐방로는 2018년 8월 완성될 예정이다.

지난 9월 23일,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과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310인 시민위원회’ 단장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위원 310’ 50여 명이 조선통감관저 터에 모였다. 서울시의 ‘3.1운동100 대한민국100’사업의 두 번째 답사행사인 ‘국치의 길을 걷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참여자들은 오후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조선통감관저 터 ~ 조선총독부 터 ~ 노기신사 터 ~ 한양공원 비석 ~ 조선신궁 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었다.

통감관저 터에 세운 `거꾸로 세운 동상`과 `기억의 터` ⓒ최용수

통감관저 터에 세운 `거꾸로 세운 동상`과 `기억의 터`

조선통감관저 터

첫 번째 장소는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남산 북쪽 기슭 예장자락에 위치한 현재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조선통감관저 터’다.

이곳에서는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테라우치 마사다케와 이완용이 일제와 대한제국의 강제합병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 현장이라는 통감관저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은 한일병탄조약의 공포일이다).

이곳은 1906년 통감관저로 건설되어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다. 현재 통감관저 흔적은 없지만, 대한제국 병탄 발판을 닦아 통감관저에 서 있던 하야시곤스케군상 잔해를 모아 이곳에 거꾸로 처박은 ‘거꾸로 세운 동상’과 일본군위안부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자리하고 있다. 거꾸로 동상은 과거 통감부 앞에 세워졌으나 이후 훼손되어 없어졌던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의 원흉인 하야시 곤스케 동상 좌대 판석 3점을 발견하여 이를 거꾸로 세우고 오석을 설치한 것이다. 이곳에는 글자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상’을 비추어 읽을 수 있도록 하여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였다.

다가오는 10월 26일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 지 108주년이 되는 해다. 바로 옆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7명 추모비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피맺힌 울분과 숭고한 애국에 고개가 숙여졌다.

총독부 터와 의사 김익상 표석이 서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에 모인 답사단 ⓒ최용수

총독부 터와 의사 김익상 표석이 서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에 모인 답사단

한국통감부·조선총독부 터

중구 예장동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 정류장 부근, 일제가 을사늑약에 따라 1906년에 설치한 ‘한국통감부의 터’다.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 등이 이곳에서 대한제국의 주권을 탈취하는 공작을 폈다.

1910년 경술국치가 되자 통감부 청사는 ‘조선총독부’ 청사가 되었다. 이후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훼손하고 정면을 가로막아 일제가 조선의 통치자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1926년 조선총독부를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 경복궁 안으로 조선총독부를 이전한 후에는 ‘은사기념과학관’으로 변경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곳에는 1921년 9월 12일 전기시설 수리를 가장해 잠입하여 조선총독부 청사 폭파를 기도한 의사 김익상 표석이 총독부 표석과 함께 서 있다. 이곳에서 해설자의 생생한 해설과 더불어 당시의 숨막혔던 의거 순간을 되새기면서 잠시나마 나라 잃은 젊은이의 설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입구 화단에 버려진 노기신사의 수조 ⓒ최용수

사회복지법인 남산원 입구 화단에 버려진 노기신사의 수조

노기신사 터

다음은 노기신사 터에 도착했다. 이순신장군을 찬양했다는 도고 헤이하치로와 함께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노기 마레스케를 수호신으로 받들어 193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산원’ 입구 오른편 화단에 수조 하나가 있다. 앞쪽에는 기증자(高木德)가 기록되어 있고, 뒤쪽에는 ‘洗心(세심)’이라 적혀있다. 이것이 노기 마레스케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노기신사는 1933~1934년 각 지방 유지들이 후원금을 거두어 건립했다고 한다. 이곳의 화분받침과 축대로 방치된 노기신사 유적들을 보니 치욕스러운 역사도 역사인 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물주의 무관심 속에 이것들이 방치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존하기 위한 서울시 노력이 엿보였다.

한양공원 비석에서 설명을 듣는 답사단 ⓒ김경민

한양공원 비석에서 설명을 듣는 답사단

한양공원비석

답사단은 일제가 조선신궁을 참배하기 위해 찻길을 훼손한 흔적이 남아있는 지금 소월길을 따라 걸으며 남산케이블카 탑승장을 지나 한양공원 비석에 도착하였다.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에서 100여 미터 올라간 지점,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석. 비석의 내력을 설명하는 표석이나 안내문 없이 사각 돌기둥 3개만이 꽂혀 있다. 한양공원은 1908년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 30만 평을 무상 임대받아 조성한 위락시설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10년 공원 입구에 표석을 세웠다. ‘漢陽公園(한양공원)’이란 글씨는 고종 친필글씨로 알려졌지만 어디에도 고종이 썼다는 내용은 없다고 서해성 감독은 설명했다.

조선신궁 터

1925년 일제는 한양공원 13만 평에 조선신궁을 완공했다. 일제가 조선에 세운 가장 높은 곳에 세운 신사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옛 ‘남산식물원’ 자리다. 조선시대 남산은 그 위에 오르면 도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에 백성들이 함부로 오르지 못하는 산이었다. 조선 시대 국사인 무학대사 등을 모신 국가 제사시설인 국사당이 있던 성스러운 산이었다. 일제는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강제로 이전하고 남산 능선 성곽을 허물어 1925년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선의 영산 남산 중턱을 무참히 훼손했다. 이후 조선신궁(신궁은 신사보다 더욱 격이 높은 곳이며, 신도 사찰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높음)을 세우고 일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한일합방 원흉 메이지왕 신위를 안치했다. 처음에는 임진왜란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들려 했다니 조선신사야말로 조선의 혼을 말살하고 조선인의 내면까지 지배하려 한 국치의 응축된 현장임을 알 수 있었다.

신궁관련 비석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 철조망 안쪽 풀숲에서 발견되었다. 친일부역자로 알려질 것이 두려워서인지 비석 뒷면 기증자 이름은 모두 정으로 쪼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기증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진다. 현재 한양도성 복원사업 중으로 이곳은 일반인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일제가 허물었던 남산 기슭은 해방부 중앙정보부가 자리하고 있다. ⓒ최용수

일제가 허물었던 남산 기슭은 해방부 중앙정보부가 자리하고 있다.

남산은 해발 265m의 낮은 산이지만 서울 어디서나 보이고 모두에게 내어주는 친근한 산이다. 남산이 애국가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닐까. 일본인 거류지를 조성하고 신민지배 핵심 통치기구를 구축했다. 국권을 빼앗고 신궁을 세워 조선인을 정신적으로 옭아매었다.

광복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위치하여 일제가 남산을 허물고 식민 지배를 위한 시설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내년에 ‘국치의 길’이 완공된다. 일제강점기 사건과 감정 체험을 통해 ‘기억하지 않아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는 디테일하게 기억하여야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름 없던 꽃에 망초, 망국초, 개망초 등의 이름을 붙여 나라 잃은 설움과 치욕을 대대손손 기억하도록 한 민초들의 이름을 기억하자”는 해설자의 말이 올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들의 촛불 혁명과 겹쳐 떠올랐다. 이번 체험은 국치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안내
○ 홈페이지 : www.seoul100.kr
○ 문의 : 사무국(02-2133-0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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