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왕십리 등심구이와 깍두기볶음밥

정동현

Visit3,017 Date2017.07.24 14:00

등심구이와 깍두기볶음밥-지도에서 보기

왕십리 대도식당 등심구이

왕십리 대도식당 등심구이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⑦ 성동구 대도식당 왕십리본점

낮은 기와집 몇 채가 붙어 있다. 사람들은 박람회에 온 듯 줄을 서서 이 기와집에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면 연기가 뿌옇다. 입구 한 켠에는 유리 벽 뒤로 한 무리의 남자가 하얀 옷을 입고 고기를 썰고 있다. 그 앞으로는 문이 없는 방과 여러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또 가득이다.

종업원들은 스테인리스 쟁반에 빨간 고기를 깔고 방 사이를 잰 걸음으로 오고 간다. 방에 앉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잰 척 하는 이가 하나 없다. 다들 폼이 느슨하고 표정이 밝으며 말과 웃음소리가 크다. 일하는 종업원들도 손이 크고 빠르다.

이곳에 오면 옛날 산도적이라도 된 것 같다. 고기를 더 내놓아라. 술도 더 달라. 있는 것 모두 다 가지고 와라. 그렇게 큰 소리 치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놀고 웃고 싶다. 왕십리 대도식당에 오면 그렇다.

대도식당은 1964년 왕십리에 문을 열었다. 역사를 따지자면 한 할머니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는 옛 조선왕실 상궁으로부터 음식 솜씨를 전수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대도식당 음식 차림을 보면 할머니가 비법을 전수받았던, 아니면 본래 음식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간에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나오는 찬은 단촐함을 넘어 심플하다. 깍두기와 양배추, 파채, 고추장과 기름장이 전부다. 고급스런 고기집에 가면 으레 딸려 나오는 숯불도 아니다. 묵직한 주물팬이 화력 좋은 업장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 있을 뿐이다.

파채 버무리와 양배추는 대도식당 특유의 맛 비결

파채 버무리와 양배추는 대도식당 특유의 맛 비결

메뉴를 보면 또 어찌나 간단한지 고기 메뉴는 등심 하나 뿐이다. 식사는 된장죽과 깍두기볶음밥 두 종류. 여느 고기집에서처럼 따로 국이나 찌개를 내어주지 않는다. 육회와 같은 사이드 메뉴도 없다. 오로지 등심, 오로지 식사 두 종류로 땡이다.

하긴 소고기를 부위 별로 골라 먹는 것도 알고보면 최근이다. 그전에는 부위 가릴 것 없이 ‘로스구이’라고 퉁 쳐서 구워 먹고는 했다. 뭐부터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결정장애가 있는 이에게도 최적화된 식당이다. 인수대로 맞춰 고기를 주문하면 기름 한 덩이와 함께 고기 한 판이 올라온다. 이 기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 콩팥 옆에 붙은 기름, 두태 기름이라고 한다. 풍미가 고소하여 각종 볶음 요리에 아는 사람만 몰래 몰래 썼다고 한다. 이 기름을 불 올린 주물팬에 슥슥 문질러 기름 코팅을 해주는 것이 첫째, 주물팬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면 그때 고기를 올리는 것이 둘째다.

고기를 올리기 전에 상태를 보니 마블링이 하얗게 낀 녀석도 있고 살코기만 붙어 빨간 것도 있다. 등심을 쓰지만 채끝도 함께 붙은 것을 들여오기에 상마다 받는 고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어쨌든 많이 먹으면 그만이다. 한 번 먹으면 무슨 부위고 어떤 상태인지 째째하게 가릴테지만 많이 시켜서 많이 먹으면 좋은 부위도 어떻게든 얻어 걸리기 마련이다.

굽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차피 한국식으로 얇게 썬 고기니 진득하게 굽다가 핏물이 반대편으로 올라오면 그때 한번 뒤집는다. 그렇게 구워야 고기에 갈색이 돌며 구워진다. 마이야르라는 화학반응은 140도 고온에서 일어난다. 알아둬야 할 것은 이 반응은 고기가 갈색빛으로 구워질 때 일어나며 그 색이 나와야 맛이 좋다.

이런 얇은 고기는 자주 뒤집으면 열이 식어 고기가 구워지지 않고 쪄진다. 즉 갈색이 돌지 않고 수육처럼 희멀건 색이 난다.

된장죽과 깍두기밥 또한 대도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된장죽과 깍두기밥 또한 대도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고기가 구워졌으면 파채를 보자. 고춧가루와 식초를 듬뿍 쳐 짜고 신 파채가 아니다. 대신 파를 두껍게 썰고 기름을 둘러 간간하게 양념을 했다. 파의 쓴 맛이 기름과 어우러져 오묘하게 둥근 맛이 난다. 고기를 파채에 싸고 깍두기를 씹는다. 양배추도 고추장에 듬뿍 찍는다. 몸에 열이 오르고 기운이 뻗친다. 그렇다고 배를 가득 채우면 안 된다.

이 집 된장죽과 깍두기볶음밥은 꼭 먹어봐야 한다. 주문을 넣으면 이모의 신묘한 기술이 펼쳐진다. 우선 남은 파채로 주물팬 검댕을 닦아낸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그 팬 위에 된장, 아니면 깍두기를 붓는다. 부글부글 끓는 팬 위로 고기를 담는 그 스테인리스 쟁반을 덮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쟁반을 옆으로 밀고 밥을 숟가락 두 개로 볶고 비빈다. 그 옛날 일본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 쌍검이 그러했을까? 챙챙챙 소리를 내며 숟가락 두 개가 허공을 교차하는 모습을 보면 이 집 역사란 식모 몸에 배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된장죽에는 양배추가, 깍두기볶음밥에는 깍두기가 들었으니 상 위에 올라간 것들이 또 그대로 옮겨 간 것이다. 기물, 재료 어느 것 하나 낭비가 없다.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 된장죽은 토장을 비빈 듯 수확이 끝난 가을 들판처럼 푹 익은 땅 맛이 나고 깍두기는 그 해가 끝난 겨울, 장독대에서 꺼낸 푹 익은 김치 산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난 고기가 먹고 싶으면 고급스런 식당에 가서 폼 잡고 남이 굽는 고기를 먹는 대신,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연기로 가득 찬 대도식당에 앉는다. 그리고 무슨 일을 벌일 것처럼, 많이 먹고 많이 웃는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살 것 같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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