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광화문 순대국과 머리고기

정동현

발행일 2017.06.19. 16:12

수정일 2018.02.21. 16:12

조회 4,781

순대국과 머리고기-지도에서 보기

화목순대국 순대

맛있는 한끼, 서울 ② 종로구 화목순대국 광화문 분점

누군가는 그랬다. 광화문에 화목순대국 분점이 생긴 것은 이곳 직장인들에게는 축복이라고.

사위에 장벽처럼 널린 빌딩, 그 사이에 초풀처럼 자라난 식당들은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안식처다. 사람들은 작은 짐승이 풀숲 사이에 웅크리듯 저마다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긴 밤을 보내고 이글거리는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얻은 사람들은 상처를 다스리려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광화문에 산재한 해장국집이 여럿, 하지만 그 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곳은 바로 화목순대국이다.

여의도 본점 역시 유명한 것은 마찬가지. 무엇보다 좁은 실내를 최대한 활용하려 주방을 다락방으로 올린 구조는 가히 문화재급이다. 광화문 분점은 하나의 식당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개로 나눈 여의도에 비하면 훨씬 크고 쾌적하다. 크다고 해봤자 단층에 30여 석 되는 공간이 전부지만 말이다. 본점은 밤 10시까지 영업인 반면에 분점은 일요일 밤 9시부터 월요일 오전 9시, 그리고 평일 오후 3시에서 5시 브레이크 타임을 빼놓고는 24시간 영업이라 시간에 쫓겨 방문할 필요도 없다.

“순대 국밥 먹자.”

이 말이 나오면 주저 하지 않고 언제든 찾아가도 된다는 말이다. 화목순대국을 찾은 것이 몇 번인지 헤아릴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날이 추워도, 늦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불을 밝힌 이 곳 문을 열었다.

밖으로 선 줄에 ‘아니 순대국집에 웬 줄?’이라며 놀라는 것은 초행객 티를 내는 것.

그러나 그 안을 차지한 손님의 90% 이상이 남자인 것은 매번 새삼스럽다. 광화문에 서식 중인 모든 남자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한 풍경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재질의 벽, 낮은 천장에 ‘국밥 한그릇 말아먹어야’ 하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숙명 같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순대국밥 하나만 먹고 간 것은 언제인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무조건 시키는 메뉴는 모둠(2만2000원)이다. 모둠을 시키면 순대와 머리 고기 한 접시와 순대국 하나가 끓어 나온다.

화목순대국 순대와 머리 고기 한 접시

화목순대국 순대와 머리 고기 한 접시

일단 순대에 손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 순대를 입에 넣기 전 참을성을 발휘해 속을 먼저 살펴보자. 겉은 평범한 당면순대 같지만 당면 사이사이로 채소가 박혀있다. 맛을 보면 평범한 음식이 이런 맛을 내는가 싶어 감탄이 나온다.

당근과 파 같은 채소가 씹힐 때마다 단맛이 쭉쭉 베여 나와 이 집 특유의 각인(刻印)을 남긴다. 당면은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간간한 것이 전체적인 음식 상(象)을 잡는다. 평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쉬는 까닭은 바로 이 순대 때문이니 때를 못 맞춘 방문을 섭섭해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곁들인 내장과 머리 고기도 흔히 볼 수 있는 질이 아니다. 위에 뿌린 마늘을 곁들여 새우젓을 찍으면 고급 부위가 부럽지 않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집 4번 타자는 순대국밥이다. 밥을 토렴해서 나오는 이 집 순대국밥은 작은 양철 접시에 담겨 나온다. 부글부글 끓는 뚝배기 위로 코를 내밀면 특유의 돼지 내장 냄새가 난다. 혹자는 이 냄새 때문에 이 집을 꺼리기도 하지만 돼지를 끓인 탕에서 돼지 냄새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개개인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화목순대국의 돼지 냄새는 식욕을 돋울 뿐 거두게 하지는 않는다. 그 냄새를 따라 한 숟가락 뜨면 보기보다 훨씬 맑고 섬세한 맛이다. 양념을 재지 않고 넣어 투박하게 흐리멍텅한 종류가 아니다. 담백한데 한편으로는 얼큰하고 감칠맛이 돌아 자주 찾아도 물리지 않는다.

밀가루풀을 넣어 시큰한 맛을 끈적하게 담아두는 깍두기는 한 접시로 성에 차지 않는다. 또 한 접시, 다시 한 접시를 찾아도 싫은 티 내지 않고 중한 노동을 이겨내는 이 집 주인장과 그 아들은 다시 발걸음을 부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낮과 밤을 잇고 다시 밤을 낳는 화목순대국을 나오며 ‘잘 먹었다’고 외쳤던 기억은 겹치고 또 겹쳐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하루를 살고 나면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 갑과 을, 병과 정, 부호로 표현되고 숫자로 정리되는 별 것 없는 나의 하루. 그 하루를 견디게 하는 것은 특별하고 대단한 무엇인가가 아닌 구분되지 않는 한 끼와 숨 쉬듯 반복되는 잔잔한 애정인 것을.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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