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더 멋진 서울로 ‘야행 코스’ 따라가보니

시민기자 방주희 시민기자 방주희

Visit395 Date2017.06.16 13:08

남산 육교에서 바라본 보랏빛으로 물든 `서울로7017`의 야경 ⓒ방주희

남산 육교에서 바라본 보랏빛으로 물든 `서울로7017`의 야경

서울로7017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회현역과 서울역 주변에 이르면 몸이 알아서 서울로7017로 이끈다. 몸도 도심 한복판을 벗어나 자연이 드리워진 숲길에서 쉬고 싶은 모양이다. 서울로7017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서울도보관광(dobo.visitseoul.net)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서울도보관광’ 프로그램은 서울 주요 관광명소를 서울문화관광해설사의 전문적인 해설을 들으며 도보로 탐방하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서울로7017` 코스는 주변 명소를 역사·건축·야경 3가지 테마 중 선택할 수 있다.

역사 테마 ‘서울로 근·현대 건축기행’ 코스는 서울로를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개화기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코스다. 건축 테마 ‘한양에서 서울로’ 코스는 사람 중심 초록보행길로 재탄생한 서울로7017을 걸으며 조선시대 한양에서 서울로 거듭나기까지 600년간 도시 변화를 볼 수 있는 시간 여행 코스다. 야경 테마 ‘서울로 야행’ 코스는 서울 밤풍경과 함께 서울로를 걷는 코스다. 기자는 이 중 ‘서울로 야행’ 코스를 선택했다.

‘서울로 야행’ 도보코스는 ‘서울역 15번 출구 → 서울로7017 → 남대문교 회→ 한양도성 → 백범광장 → 남산육교 → 숭례문’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일정을 확인하고 집결지로 나섰다. 집결지인 서울역 15번 출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서울의 상징이 된 `문화역서울 284`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전시, 공연이 열리고 있다. ⓒ방주희

서울의 상징이 된 `문화역서울 284`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전시,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야행코스 첫 출발점인 ‘문화역서울 284’는 현재 ‘시간 여행자의 시계’라는 테마로 다양한 장르 영화와 전시, 공연이 진행 중이다. 80년 기차 역사(驛舍)의 역사(歷史)를 마감하고,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변모해 상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 중이다. 보다 자세한 관람 안내는 홈페이지(www.seoul284.org)를 참조하면 된다.

서울 상징이 된 ‘문화서울역 284’ 앞에서 해설사 설명을 들었다. 그는 1899년 철도가 처음 들어섰고, 1910년 남대문정류장이 역 근처에 세워진 것을 기점으로 서울 관문이 된 서울역의 역사를 풀어놓았다. 일본이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완공한 지금의 서울역은 남대문역으로 개장했다가 1925년에 경성역으로, 1947년에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된 서울역은 1층에 매표소와 대합실이 있었고, 역사 2층으로 올라가면 이발소와 서양식 레스토랑인 그릴이 있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그릴이 등장할 만큼 젊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1970년에 들어서면서 그릴은 고급 식당이 됐고, 1988년 민자 역사가 들어서면서 역사 4층으로 이전했다. 현재까지도 영업 중이다.

광장 앞,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방주희

광장 앞,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문화역서울 284’ 광장에는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1919년 9월 2일 그는 당시 남대문역이었던 이곳에서 새로 부임해온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폭탄이 빗나가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던 그의 계획은 미수에 그쳤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정부는 강우규 의사를 기리기 위해 그가 폭탄을 투척한 이 자리에 동상을 세웠다.

1960, 1970년대 서울은 비약적인 산업 발전을 이루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과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 그로 인한 주거, 교통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1970년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는 마포대교와 연결된다. 해설사는 태블릿 PC를 통해 당시의 고가도로와 서울역 풍경을 담은 사진 자료를 보여주었다.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사람길로 재탄생시켜 2017년 시민의 품으로 새롭게 돌아왔다. 끊어진 길을 연결해 걷고 싶은 길이자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 공간이 된 서울로7017. 서울역이 지닌 수많은 사연과 함께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는 점에서 서울역과 의미를 같이한다.

한편, ‘서울로7017’은 645개 원형화분과 18개 편의시설 및 시민 휴식 공간, 17개 보행길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로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비니 마스가 설계했고, 뉴욕 맨해튼 첼시 지역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금요일 저녁시간을 즐기기 위해 산책 나온 시민들로 가득찬 서울로7017 ⓒ방주희

금요일 저녁시간을 즐기기 위해 산책 나온 시민들로 가득찬 서울로7017

‘서울로7017’에 오르자,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서울 시내가 손 안에 들어올 것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로는 금요일 저녁을 만끽하기 위해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벤치형 화분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방방놀이터에서 트램펄린을 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아이들, 증강현실을 보여주는 호기심 화분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즐거워 보였다. 서울로7017 곳곳이 사진 속 배경이 되어 사람들에게 추억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사람과 사연을 실어 나르고 있는 서울역 철길이 보인다. ⓒ방주희

수많은 사람과 사연을 실어 나르고 있는 서울역 철길이 보인다.

기찻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해설사는 지도를 꺼내들며 주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가곡 ‘동무생각’ 노래도 부르며 ‘청파동’은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길목이었다고 설명해준다. <춘향전>의 암행어사도 청파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근처 ‘약현성당’은 약초꾼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고 한다.

`서울로7017`에서 바라본 남대문교회의 외관은 웅장하다. ⓒ방주희

`서울로7017`에서 바라본 남대문교회의 외관은 웅장하다.

대우재단 빌딩과 서울로가 이어진 연결통로를 지나 남대문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남대문교회는 1887년 미국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알렌에 의해 설립된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중원은 미국의 실업가 세브란스의 후원을 받아 세브란스병원으로 개칭되고, 알렌 주도하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며 제주원교회로 발전했다. 병원과 함께 남문 밖으로 이전하며 남대문교회로 설립되었다. 남대문교회 웅장함과 근엄함에 절로 숨죽여 걸게 되었다.

대우재단 빌딩 연결통로를 지나 남대문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방주희

대우재단 빌딩 연결통로를 지나 남대문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남산자락에 이르렀다. 서울로7017이 남산공원을 향해 오르는 길을 이어주어 훨씬 편히 올라갈 수 있었다. 남산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한양도성도 만날 수 있었다. 한양도성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도성이다. 태조 때 특별한 기술 없이 돌을 쌓는 방식으로 처음 세워졌고, 이후 세종과 숙종, 순조를 거치면서 기술이 발달해 돌을 깎아 쌓게 되었다고 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성곽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남산은 나무를 구한다고 해서 목면산이라고 했고, 햇볕이 잘 든다고 해서 인경산이라고도 했다. 김유신 장군 기마상을 지나 순성길로 향했다. 도성 안에서는 성을 쌓고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했다. 그 길이 서울 순성길이다. 도성 안팎으로 순찰하며 돌을 빼내는지, 낙서를 하는지 등을 살피며 아주 엄하게 벌했는데, 이 길이 지금은 서울 둘레길 코스가 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보현봉이 보였다. 태조와 무학대사가 보현봉으로 가는 길에서 서울을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정도전은 백악산(청와대 뒷산)을 주산으로 하고 남산을 암산으로 보자 했는데, 무학대사는 인왕산자락을 안고 도시 배치를 하자고 했다. 이성계는 정도전 의견을 따랐다. 무학대사는 관악산 화기가 200년 후에 화마를 불러온다고 예언을 했지만 태조는 듣지 않았고, 이는 나중에 무학대사와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건국 200년 후인 1592년이 임란이다. 무학대사 예언이 적중을 한 것이다.

서울 순성길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한양도성의 탄생과정을 듣고 있다. ⓒ방주희

서울 순성길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한양도성의 탄생과정을 듣고 있다.

서울타워의 중간 지점에서 백범광장을 지나 옆길로 빠졌다. 날씨가 덥지 않아 걷기에 그만이었다. 해설사는 김구 선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명성황후 시해 소식에 분개한 청년 김구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인 일본군관을 죽이고 인천형무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이 소식을 알게 된 고종황제는 인천형무소로 전화를 걸어 사형 중지명령을 내렸고, 김구 선생은 가까스로 사형을 면제받았다. 당시는 전화가 개통된 지 3일째 된 날이었다고 한다. 전화 한통이 한 청년 목숨을, 우리나라 역사를 바꿔놓은 순간이었다.

남산언덕에 위치한 10층 구조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만날 수 있었다. ⓒ방주희

남산언덕에 위치한 10층 구조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만날 수 있었다.

남산을 빠져나와 남산언덕에 자리한 회현 제2시범아파로 발길을 옮겼다. 시범아파트란 말은 아주 모범적으로 잘 지었다는 뜻이다. 마포에 와우아파트가 22일 만에 무너지자,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아파트를 짓자고 한 것이 시범아파트다. 남대문과 동대문이 가깝고 남산과 가깝다는 지역적 입지 때문에 시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지나 다시 ‘서울로7017’로 향했다. 남산육교 위에서 ‘서울로7017’을 내려다보자 도심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야경에 황홀했다. 낮과는 다른 서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매력 있었다.

오늘 도보코스가 더욱 특별했던 건 해설사 분 경험담과 어우러진 설명, 태블릿 PC에 담긴 그 시절 사진 덕분이었다. 태블릿 PC를 통해 서울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현실감과 현장감, 이해력 모두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들에게 코스를 설명하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고 말하는 해설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그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웃음이 났다. 서울도보관광 프로그램은 모두에게 추억을 전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여행이었다.

■ ‘서울도보관광’ 프로그램 안내
○ 신청 : 서울도보관광예약 사이트(dobo.visitseoul.net) 통해 사전예약 후 이용 가능
○ 이용료 : 무료
○ 문의 : 서울도보관광(02-6925-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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