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행촌성곽마을 이야기

시민기자 최용수

Visit1,960 Date2017.04.13 15:24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최용수

행촌성곽마을의 현재 모습. 과거 이곳에는 뽕나무가 많아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였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행촌권 성곽마을의 시작점인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 도시형태 및 생활문화자료조사, 주민인터뷰 등을 실시하여 최근 『성곽마을 생활문화기록집』을 발간하였다.

그중 ‘행촌성곽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인왕산 성곽아래 자리한 행촌동과 교남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조선 후기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성곽 바깥마을로, 근대 서울의 실크 생산 중심지이자 한국 커피 문화의 발상지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옥바라지 마을이었다.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최용수

행촌권 성곽마을을 안내하는 입간판과 성곽이 보이는 교남동 월암근린공원 입구

1884년 고종황제는 부국강병의 일환으로 일종의 관영회사인 ‘잠상공사(蠶桑公司)’를 설립한다. 잠상공사는 중국 상해로부터 뽕나무 100만 그루를 수입하여 서울·인천·부평에 심었고, 급기야 경희궁 후원에도 수천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경희궁과 인접한 행촌권 성곽마을 일대에도 자연스럽게 수많은 뽕나무가 재배되었고, 이에 근대 서울 실크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선 만난 주민 장충래(76세) 어르신은 “60여년 넘게 행촌동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동네 곳곳에 대추나무, 유자나무 등이 많았고 특히 뽕나무는 앞마당, 뒤뜰 할 것 없이 없는 집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더 이상 뽕나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과 기후조건이 좋아 지금은 다른 종의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최용수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개화기에 접어들자 조선에도 커피가 전래되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향을 맡은 사람은 고종이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가 그에게 커피를 선보인 것이다. 이후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고 한다.

행촌동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좌), 쁘레상이 나무장수에게 커피를 건네며 흥정했을 자하문 고갯길(우) ⓒ최용수

행촌동에서 바라본 서대문형무소(좌), 쁘레상이 나무장수에게 커피를 건네며 흥정했을 자하문 고갯길(우)

고종과는 달리 대중에게는 다른 경로로 커피가 알려졌다. 1910년 경 땔감사업을 하던 프랑스인 쁘레상은 무악재와 자하문을 넘어오는 나무장수들에게 ‘화살통만한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건네며 흥정을 붙인다. 당시 신기한 서양차가 ‘양탕국’이라 불리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서서히 커피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한양행 건물 뒤편으로 가면 쁘레상 집터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 기호식품이자, 연간 국내 소비량이 250억 잔이나 되는 커피가 행촌성곽마을에서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니 흥미롭다.

교남동 홍난파의 옛 가옥 ⓒ최용수

교남동 홍난파의 옛 가옥

이 외에도 행촌성곽마을에는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승리한 권율장군의 집터와 은행나무, 파란 눈의 외국인 독립운동가 테일러의 집 ‘딜쿠샤’와 베델 집터, 홍난파의 집, 서울기상관측소 등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명소들이 있다. 성곽마을 인근에서는 사직단과 단군성전, 경희궁,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경교장 등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행촌권 성곽마을의 풍부한 일조량과 여유 공지, 주택의 옥상 등에서의 도시농업을 활용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남동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 계절을 관측하는 표준목인 벚나무와 단풍나무에도 봄이 왔다 ⓒ최용수

교남동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 계절을 관측하는 표준목인 벚나무와 단풍나무에도 봄이 왔다

행촌성곽마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숨겨진 역사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해오고 있다. 화사한 봄날 서울을 떠나지 않고 가족, 친구들과 색다른 나들이 장소를 찾고 있다면, 행촌성곽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가는 곳마다 숨겨진 역사의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적 여유가 더 있다면, 한양도성길 인왕산코스를 올라가보자. 멋지게 펼치진 서울 도심의 조망을 덤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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