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제대로' 대화하고 계신가요?

최경

발행일 2017.03.03. 16:37

수정일 2017.03.03. 16:37

조회 1,148

풍경ⓒ김남영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60) 기술이 필요한 가족 대화

제작진 사무실로 한 50대 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아서 제보 보고 연락했어요. 대화가 끊긴 가족, 그거 우리집 이야기에요. 저는 집에서 왕따에요. 집사람도 애들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아요.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A씨는 쉬는 날, 가족들 몰래 집 옥상에 올라가 휴대전화를 붙들고 제작진에게 해결방법을 찾아달라고 간곡하게 도움을 청해왔다.

“집사람 너무 말이 없어요.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히 안하거든요. 주로 나 혼자 얘기하고 나 혼자 끝내고... 베개머리 송사라고 그러잖아요. 잠자리에서 딸내미는 어떻고 아들내미는 어떻고 나는 이야기를 좀 하자는 편인데 한참 이야기 하고 있으면 옆에서 쿨쿨 잠자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혼자 실컷 떠들었다 싶고 그런 게 계속 쌓이는 거예요.”

제작진이 집을 방문했을 때 A씨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마시면서 투덜거렸다. 연애할 때는 말수 적고 차분한 아내가 마음에 들어 결혼했다는 그는 이제 아예 자신에게 입을 다물어버린 아내 때문에 답답함을 넘어서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홧김에 시작한 술은 이제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지경이 됐지만 그마저도 아내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어떨 땐 일부러 더 마셔요. 술병 한번 뺏어보라고. 그런데도 반응이 없어요.”

그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 중에 아내가 집에 돌아왔고, 제작진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는 부엌에서 조용히 식사준비를 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지도 않았다. 얼마 뒤엔 함께 사는 장성한 아들도 돌아왔지만 방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아들은 몇 달 전 제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따로 살고 있는 딸을 제외하고 세 가족이 있었으나 집안은 고요했고 누구 하나 말을 붙이는 사람이 없었다. A씨는 그저 거실 한켠에 상을 펴놓고 앉아 술만 마실 뿐이었다. 제작진은 아내에게 왜 남편과 말을 하지 않는지 물었다.

“자기 기분이 안 좋아도 가족들한테 내색을 안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조금만 싫으면 곧바로 표현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애들도 그렇고 저도 말을 붙이기가 겁이 나는 거예요. 얘기를 하면 말꼬리 잡고 늘어진다고 그러고 언성도 높아지니까 더 말하기 싫고 입을 딱 닫아버리게 되는 거예요.”

그 때, 저쪽에서 술을 마시던 A씨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진짜 오늘 더 기분이 나빠요. 나한테 왜 방송국을 불렀냐. 이런 걸 물어봐야 정상 아니에요? 색깔이 없어요.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는 거잖아요. 자기 주징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나는 돌아버릴 것 같은데.”

남편 A씨가 화를 내기 시작하자, 아내는 더 이상 말문을 닫아버렸다.

다음날 아침. 가족들이 오랜만에 아침상에 둘러앉았다. 아내와 아들은 간간이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지만 A씨에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한동안 굳어진 표정으로 밥을 먹던 A씨가 폭발했다.

“밥 같이 먹는 것도 진짜 특별한 거예요. 방송국에서 왔다고 선심 쓴 겁니다. 오늘.”

아내가 느릿느릿 반박했다.

“어쩌다 빼먹는 거잖아요. 엊그제도 밤 12시까지 기다리다가 당신이 술 마시느라 안 오니까 그냥 잔거죠.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밥 같이 먹었잖아요. 당신 생일날 기억 안나요?”
“생일? 말 한마디라도 오늘 당신 생일인데 축하한다 해봤어? 밥 같이 먹으면 뭐하냐고. 앞에 앉았어도 유령 취급하는데.”
“그럼 그 상태에서 생일 축하한다 소리가 나오게 생겼어요? 안 나오지. 화해를 해도 준비가 돼야 되는 거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런 식이지.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듣는다.. 말을 먹어버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너는 한 게 뭐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또 말하기 싫어지지. 당신은 뭘 그렇게 잘했는데요?”

겨우 시작된 대화에서 부부는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옆에서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밥을 먹던 아들이 끼어들었다.

“이렇게 싸우려고 방송국사람들 불렀어요? 자랑이에요 이게?”
“이 자식이!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지금 말을 해야 하는데 대화가 안 되잖아!”

아들은 박차고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부부싸움에 참다못한 아들이 나섰지만 화만 돋우는 꼴이 된 것이다.

“아버지가 답답하다 하시지만 저도 답답해요. 매일 똑같은 소리 듣는 것도 지겨워요. 가족이 이렇게 된 데엔 누구 한명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각자 고쳐나가면 될 것 같은데 서로 남 탓만 하고 있으니까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것 같거든요. 아버지는 어머니 때문에 집안이 이렇게 됐다, 어머니는 할 일 다 했는데 아버지가 저런다고 생각하시니까 아버지 탓하고, 저랑 누나는 아버지가 계속 술 마시고 화내시니까 아버지 탓하고... 답이 없어요.”

A씨가 바라는 것은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는데, 대화를 시도하다 말다툼으로 번지고, 그러다보면 집안은 며칠 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걸까? 이들 가족의 대화방법을 지켜본 가족상담 전문가는 이렇게 조언했다.

“표면적으로는 남편한테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내도 자기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어요. 말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낫거든요. 화해의 방식을 아예 모르고 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의사소통방식을 모르니까 남편은 자기를 무시한다고 여기는 것이고 아내도 그 점이 답답하겠죠. 게다가 싸움에 끼어든 아들까지도 말하는 방식이 비난이에요. 이건 잘못된 대화로 가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비난은 무시와 경멸, 멸시로 이어지거든요. 그 다음단계는 자기합리화, 자기 방어, 그 끝은 마음의 문 닫기입니다. 그렇게 가기 전에 이 대화 방식을 고쳐야 합니다.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가족 사이에서도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잘못된 대화의 전형적인 특징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대화는 온데 간데 없고 감정만 격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대화의 기술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꼬투리를 잡거나 비난하기를 멈추고 현재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쉽고 간단한 것 같아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말 한마디가 가족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면 과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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