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서워요’ 극심한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법

최경

Visit1,074 Date2017.01.20 16:10

야경ⓒnews1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55) 현대인의 위기, 공포 2편 –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이유

ㅎ씨는 2년 째 집 밖을 나가지 못한다. 다리가 다친 것도 아니고, 앓아누운 것도 아니다. 집 밖을 나가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증상이었다.

“어느 날 지하차도에 차가 멈췄는데, 순간 영원히 지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곳에 갇혀있을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오는 거예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거요. 엄청난 공포였죠. 이러다 내가 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지하철을 못 타요.”

한번 시작된 증상은 평온했던 그녀의 삶을 아예 멈춰버렸다. 몇 달 동안은 현관문조차 열수 없었고, 집에서 가까운 슈퍼마켓도 몇 번을 시도하다 길모퉁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채 집으로 뛰어 들어오곤 했다. 이런 증상이 있기 전까지 ㅎ씨는 누구보다 활달하고, 친구도 많았고, 혼자 해외 배낭여행을 하며 즐겁게 살았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에 공포에 갇혀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

그런데 ㅎ씨와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어떤 이는 병원을 다니기 위해 기차를 타야 하는데, 기차에서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곧 죽을 것만 같은 증상이 시작되면 중간에 내릴 수가 없어 도저히 기차를 탈 수 없다고 했고, 어떤 이는 같은 증세로 비행기 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공황>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공황장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엄청나게 무서운 경험을 한 그런 사람들이 겪게 되는 온갖 생리증상 있죠. 심장계통 증상 또 호흡계통, 소화계통, 신경계통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그런 수많은 증상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전투할 상황이 아닌데 내 몸이 전투모드를 갖추면 나는 해석을 하게 되잖아요. 어? 이건 뭐지? 나 이러다가 죽거나 미치는 거 아니야? 이런 극심한 공포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첫 번째 엉터리 답이 그 사람을 계속 지배하는 거예요.”

공황장애의 원인은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인 소인과 후천적인 경험 속에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질 때 공황으로 발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공황장애를 앓는 이들은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격렬한 신체반응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지만, 정작 병원에 도착해서는 증세가 사라지고 신체적인 이상이 있는 병명이 나오지 않았던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공황장애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 치료를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엄청나게 두려운 신체증상이 나타났을 때 곧 죽을 것 같지만 공황발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습니다. 공포상황이 아닌데 몸이 폭발적인 증상을 보일 뿐이에요. 이럴 때 위험하다고 해석한 것을 절대 안전하다는 해석으로 바꾸라는 거죠. 인지행동치료는 바로 다양한 감정적인 고통이나 생리적 고통, 행동의 문제를 변화시키는 치료법입니다.”

실제로 가벼운 공황증세를 겪는 경우, ‘이건 공황증세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증세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하자면 스스로 공황증이라고 해석을 내리는 순간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 밖을 나서지 못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ㅎ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녀는 제작진과 함께 차를 타고 몇 번이나 병원을 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처음엔 차에 오르지도 못했고, 두 번째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2시간 만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ㅎ씨를 위해 특별히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왕진을 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도왔다. ㅎ씨에게서 일어나는 신체반응에 대해 전문의는 계속 설명을 해줬고, 비록 병원까지 가지 못했지만 꽤 긴 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뒤 그녀는 용기를 내 매일 조금씩 외출훈련을 하며 시간을 늘려갔고, 급기야 혼자 택시를 타고 40분이 걸리는 병원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물론 몇 번의 성공으로 완치가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공포의 벽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으로도 큰 진전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인의 4분의 1이 한번쯤 극심한 불안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100명 중 6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공포와 불안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짊어진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불안요소가 적은 안정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불안감과 공포를 조장하고 자극하는 걸 통치수단으로 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현실에서 공포가 언제 나를 옭아맬지 알 수 없다. 그저 그 공포가 가진 실체를 잘 들여다보고 스스로 만든 허상이 아닌지 살펴보며 잘 다루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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