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예술양식의 두 거장을 만나다

시민기자 고륜형

발행일 2017.01.17. 15:32

수정일 2017.01.17. 17:56

조회 1,426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아르데코의 여왕-타마라 렘피카 전`이 열리고 있다. ⓒ고륜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아르데코의 여왕-타마라 렘피카 전`이 열리고 있다.

글을 읽으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나 어법을 통해 저자를 알 수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사용하는 선과 붓의 터치, 색채, 양감과 질감 등 화풍을 보면 화가가 누구인지 그려진다. 논리적 전개 구조와 단어 선택이 빚는 문체가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면, 전시 목적과 화풍은 화가의 세상 참여 방식을 담는다. 한편 글을 읽어 한 작가를 만나는 것처럼 그림 작품을 보며 화가에게 다가선다. 두 명의 화가를 만나러 떠나보자. 20세기를 화려하게 연 신예술 아르누보(Art Nouveau)와 그 뒤를 이은 1920-30년대 아르데코(Art Deco)의 거장을.

아르데코의 여왕, 타마라 렘피카

단순하고 과감하다. 화면을 꽉 채운 양감에 숨이 막힌다. 투명성을 표현하는 도구도 흰색 물감이다. 수채화가 아닌 유화인 까닭이다. 투박한 질감 탓에 양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백 장의 그림 가운데 당신은 내 그림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타마라 렘피카는 아르데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섰던 여성화가다.

1920년대 미국은 경제적 호황기를 맞아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실용성이 강조됐고, 단순한 도형의 반복과 지그재그 등 기하학적 무늬를 즐겨 쓰는 아르데코 양식이 꽃을 피운다. 건축과 디자인에도 이런 시대적 배경이 스며들었고, 파리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번졌다.

타마라 렘피카는 1920년대 뉴욕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이런 여성들을 그려 ‘부드러운 입체주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독특한 화풍은 전통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에 아르데코 양식을 과감히 적용한 시도에서 싹튼다.

전통적 여성성을 초월한 과감한 붓 터치와 풍부한 양감으로 타마라 렘피카는 자신만의 영역을 쌓아올린다. 그녀의 명성은 1927년 프랑스 보르도 국제 미술전에서의 1위 수상이 증명한다.

모던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알폰스 무하

렘피카의 그림이 과감하고 결단력 있다면,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섬세하고 치밀하다. 1mm 반지름의 원과 불, 물 등 정교한 문양이 그림을 수놓는다. 아르누보 양식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아르데코 계열 렘피카의 그림과는 궤가 다르다.

19세기 말을 풍미하며 20세기 신예술의 지평을 연 아르누보 양식은 의도적인 직선의 삭제와 넝쿨을 모티프로 한 자연을 그리고 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누보를 이은 아르데코는 단순한 도형의 반복이 특징이다.

알폰스 무하의 대표작 `사계` ⓒ고륜형

알폰스 무하의 대표작 `사계`

1900년대 프랑스 여배우 사라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리면서 명성을 얻은 알폰스 무하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공식 연회 메뉴디자인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다.

<뉴욕 타임즈>가 미국을 방문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1면을 그의 그림으로 장식한 일화는 당시의 명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사계를 여신의 모습으로 그린 장식 패널이며, 달과 별, 태양계를 여신의 그림으로 그린 석판화도 그의 영적이고 신비로운 모습을 잘 담고 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의 그림은 예술의 영역에만 갇혀 있지 않고 대중의 영역도 껴안는다. 광고와 우표, 달력 등 실생활의 영역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기를 바란다.” 미술의 대중사회가 시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그는 말년에 체코의 프리메이슨 등 다양한 사회개혁 조직에 참여해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체코의 재건을 돕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의 만화풍 그림은 알폰스 무하에서 영향

현대의 만화풍 그림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화 <카드캡터 체리>가 대표적이다. 19세기 말 메이지시대에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접한 일본의 경우, ‘소녀 잡지’에서 아르누보 양식이 유행을 탔다.

`카드캡터 체리`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집단 `클램프(CLAMP)`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체를 계승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고륜형

`카드캡터 체리`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집단 `클램프(CLAMP)`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체를 계승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후 ‘소녀 잡지’가 일본의 ‘순정 만화’로 발전한 것은 아르누보 양식에서 비롯된 시각예술의 발전이다. ‘건프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 이즈부치 유타카와 만화가집단 ‘클램프’도 그 뿌리는 아르누보 양식에 두고 있다.

현대까지 알폰스 무하의 영향력이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칫 탐미주의로 빠질 수 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그림인데도 말이다. 이는 포스터와 달력, 과자봉투, 성냥갑 그림에서 보이듯 예술을 대중 속으로 끌고 들어간 시도 덕분이다.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노력은 세상을 한층 더 견고하게 다져주고 있다.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를 구분해 보는 법

아르누보와 아르데코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전시회를 관람하면 한결 더 흥미로워진다. 아르데코 양식이 189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유행한 아르누보 형식의 반감으로 진화한 것인 만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선의 형태와 변화, 그림의 질감 차이가 눈여겨 볼 만하다. 당시 실용성과 순수예술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람들의 고민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전시회 모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돼 3월 5일에 함께 막을 내린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기 쉽지만, 몸을 쫙 펴고 20세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두 작가를 만나며 20세기 예술의 세계로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 이 기사는 청년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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