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첫 촛불집회…잊지 않겠습니다

시민기자 최은주

Visit334 Date2017.01.09 17:14

노란 풍선을 손에 쥐고 광화문으로 걸어가는 가족 ⓒ최은주

노란 풍선을 손에 쥐고 광화문으로 걸어가는 가족

지난 7일, 정유년 새해 들어서 첫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60만 명으로 해가 바뀌었어도 촛불의 열기는 여전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좋은 포근한 날씨 탓인지 광화문 광장에는 낮부터 가족끼리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이날 집회는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조명하고 진상 규명과 조기 인양을 거듭 촉구하는 자리였다. 특히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언급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누구보다도 생존 학생들의 고통을 잘 아는 유가족들이 학생들을 안아주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세월호 희생자를 상징하는 304개의 구명조끼 중 아들의 이름이 적힌 조끼를 쓰다듬고 있는 유가족. ⓒ최은주

세월호 희생자를 상징하는 304개의 구명조끼 중 아들의 이름이 적힌 조끼를 쓰다듬고 있는 유가족.

광장 한편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등장했다. 구명조끼가 놓여있는 바닥에는 노란 분필로 희생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조끼 위에 노란 풍선을 달거나 추모의 촛불을 밝히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수원에서 온 이미경(53세) 씨는 “구명조끼를 쓰다듬으며 오열하는 유가족을 보니 세월호 7시간이 왜 밝혀져야 하는지 온 몸으로 느껴졌다.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꼭 안아줬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고 울먹였다.

이번 본 집회는 조금 무겁고 비장한 감이 들었지만, 광장은 다른 때와 다름없었다. 노란 물결이 출렁이는 광화문광장에는 등산복에 배낭을 매고 온 사람, 연인과 함께 다온 커플,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등 광장에는 많은 인원만큼이나 다양한 참여자들로 가득했다.

친구와 함께 김포에서 왔다는 한 청년은 청와대 100m 앞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광화문에서 행진해 온 군중들과 함께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처음엔 집회 구경하는 재미로 나왔어요. 사람들도 많고 풍자와 해학이 넘쳐 나는 광장에 볼거리가 많아 열심히 구경하고 SNS에 올렸어요. 그런데 집회가 거듭될수록 생각이 달라지고 있어요. 촛불이 잠자고 있던 내 의식을 깨운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변화를 고백 했다.

10살 아들과 세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한 남성은 “우리 아이들은 안전한 나라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아버지와 함께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2017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아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크게 띄워 놓은 편의시설 안내 ⓒ최은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크게 띄워 놓은 편의시설 안내

60만 명이나 모인 집회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잘 진행된 데는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있다. 서울시에서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안전과 교통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세종문화회관 벽면에는 서울시가 마련한 편의시설 안내가 계속됐다. 집회가 장시간 이어졌기 때문에 서울광장 주변 개방화장실 안내는 요긴했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봐두었다가 찾아가면, 근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화장실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들고 있던 안내판은 화장실을 찾을 때 요긴했다. ⓒ최은주

자원봉사자가 들고 있던 안내판은 화장실을 찾을 때 요긴했다.

화장실 뿐 아니라 혼잡이 예상되는 지하철 입구, 계단이나 난간 같이 위험한 곳에는 야광봉을 든 안내요원들이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또한 곳곳에 구급차나 소방차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시민들 ⓒ최은주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시민들

그러나 세계가 칭찬하고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성공적인 집회의 공은 성숙한 시민들의 몫이다. 두툼한 겨울옷에 촛불이 옮겨 붙을라 조심하고 서로를 살피는 건 물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수십만 인파의 발걸음이 더뎌져 자칫 넘어질 염려가 생기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를 외쳤다. 방금 전까지 “퇴진”을 외치던 우렁찬 목소리는 일제히 “천천히, 천천히‘로 바뀌면서 스스로 안전과 질서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분당에서 온 정유진(27세) 씨는 “촛불집회에 처음 참석했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엄중하고 무거웠지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성숙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추모의 마음으로 세월호 구명조끼에 밝힌 촛불 ⓒ최은주

추모의 마음으로 세월호 구명조끼에 밝힌 촛불

폭력과 비타협의 장소였던 광장이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주말마다 이곳을 축제의 공간으로 빚어내고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해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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