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놀기만 해도 써지는 글

강원국

Visit818 Date2016.12.12 15:00

책트리ⓒnews1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9) 글과 놀아보자 – 글쓰기를 놀이처럼

글쓰기는 놀이다.
지적인 유희다.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호위징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진지함에서 벗어나 놀이의 세계로 들어갈 때 문화가 만들어진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 ‘호모 루덴스’라고 규정했다.

글쓰기는 네 가지 놀이
호모 루덴스 개념을 계승한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놀이와 인간>에서 네 종류 놀이가 있다고 했다.
‘아곤’은 바둑, 장기와 같이 경쟁하는 놀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의 우월성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알레아’는 윷놀이, 주사위놀이와 같이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 놀이다.
이를 통해 운명을 시험한다.
‘미미크리’는 소꿉장난, 연극놀이와 같은 모방과 재현 놀이다.
이를 통해 역할을 대행해 본다.
‘일린크스’는 그네타기, 회전목마 등과 같이 아찔함을 즐기는 놀이다.
이를 통해 짜릿함을 경험한다.

글쓰기는 이 모두를 포괄한다.
표현을 통해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창의성과 운을 시험하며, 역할을 대신 해보고, 짜릿함을 체험한다.
글쓰기는 남의 글과, 혹은 자신이 이전에 써놓은 글과 경쟁하는 놀이다.
글쓰기는 아이들 블록 쌓기와 같이 운이 좌우하는 놀이다.
글쓰기는 누군가 써놓은 글을 모방하고 패러디하는 놀이다.
글쓰기는 막막함과 후련함 사이를 오가는 놀이다.

놀면 써진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친구가 놀자고 했는데, 공부하려고 안 논다고 한 적이 꽤 있다.
그런데 실제로 공부한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늘 후회했다.
놀기라도 할 걸. 글쓰기 시작하면서부턴 이런 후회를 안 한다.
그냥 노니까.
원고 마감을 앞두고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나간다.
지하철 타고 오가는 중에 반드시 쓸거리가 생각난다.
교회 가기 싫어 글 써야겠다고 핑계 대다 아내 성화에 못 이겨 끌려 나간다.
목사님 설교말씀을 들으며 집에 있었으면 근처에도 못할 여러 글감이 떠올랐다.
새벽에 글 쓰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아들이 산책가자 해서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아들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글 쓸거리가 마구 떠올라,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생각했다.

글은 쥐어짠다고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쓰려면 사람을 만나고 듣고 느껴야 한다.
집을 나서 놀아야 한다.
글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백지와 씨름한다고 써지지 않는다.
글 쓰는 일은 얼마나 축복인가.
글 쓰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저 놀기만 해도 써지는 게 글이니까.
노는 게 글쓰기니까.

글 갖고 놀아보기
1. 아크로스틱(Acrostic)
재미 삼아 하는 삼행시 외국 버전이다.
그리스어로 ‘맨앞’을 뜻하는 아크로스(acros)와 ‘어구’를 의미하는 스티코스(stichos)가 합해져 만든 말이다.
글자의 앞머리나 특정 부분을 따서 맞춰보면 의미 있는 단어나 어구가 나오도록 쓴 짧은 시가 아크로스틱이다.
요즘 유행하는 ‘인구론’도 일종의 아크로스틱이다.
인문계 졸업생/구십 퍼센트가/론(논)다.

2. 연상되는 단어 쓰기
예를 들어, ‘가을’ 하면 떠오르는 단어 쓰기다.
독서, 귀뚜라미, 여행, 낙엽, 추남, 가을동화, 야구경기 등

3. 끝말잇기
어렸을 적 많이 해봤다.

4. 낱말 퍼즐 맞추기
신문이나 잡지에 많이 등장한다.

5. 운자 쓰기
처음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정해 놓고 그 사이를 메우는 놀이다.

이밖에도 글 갖고 노는 방법은 많다.
이야기 이어쓰기, 아는 이야기 결론 바꿔 쓰기, 주어진 단어 넣어 글쓰기, 광고 문안 쓰기, 광고 패러디하기, 비유하기, 장면·그림 보고 느낌 쓰기, 반박문 쓰기, 묘사하기, 영화 보고 줄거리 이야기하기, 영화, 드라마 리뷰 쓰기, 내 생각에 관한 반론을 예상하고 이를 반박하기, 주제문의 이유와 근거 밝히기 등.

글쓰기, 끈기가 필요한 놀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축대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옥상에서도 뛰었다.
다칠 각오만 돼 있으면 꽤 재미있는 놀이다.
스릴 만점에다 성취감도 컸다.
경쟁하는 재미도 쏠쏠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1밀리미터씩 높여가면서 10,000일을 뛰면 10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
하루 1밀리미터씩 높여나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10,000일을 뛰는 끈기만 있으면 가능하다.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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