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억울해요” 누명을 쓴 개 해피 이야기

최경

Visit623 Date2016.10.28 15:20

강아지ⓒ뉴시스

방송작가 최경의 <사람기억, 세상풍경> (45) 의문의 발가락 실종사건

119에는 별 희한한 신고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대부분 허위, 장난전화인 경우가 많다.
어느 여름날 걸려온 전화 역시 그랬다고 한다.

“발가락이 없어졌다니 너무 황당하니까 소방관 생활 20년 만에 이런 일이 처음이라 믿을 수가 없었죠.”

긴가민가하며 출동한 집에는 복합장애로 누워서 생활하는 한 중년남자가 정말로 발가락 다섯 개가 뜯긴 채였다고 한다. 남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런데 CCTV를 살펴봐도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누군가 남자의 발가락을 고의로 자른 것이라면 범행도구나 잘린 발가락을 버린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나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이상한 것은 발에 난 상처였다. 발가락이 잘려나간 모양이 뭔가에 거칠게 뜯겨 나간 듯 했고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손상된 것이 아니라는 검안의의 의견도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남자의 집에 있는 애완견 세 마리가 용의선상에 올랐고 곧바로 증거확보가 시작됐다. 동물병원에 국과수팀이 출동했고, 개 세 마리에 대한 엑스레이 촬영 결과, 개 한 마리의 대장 쪽에서 뼛조각으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 유력 용의견으로 압축된 개는 닥스훈트 종 ‘해피’였다. 유난히 배가 불룩했다는 해피는 개복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안에서 수상한 물질이 강제로 꺼내져 정밀감식에 들어갔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닥스훈트종은 사냥견종으로 개량돼 무는 힘이 센 공격적인 개라고 한다. 만약 해피의 몸 안에서 꺼낸 물질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형사 처벌할 수는 없고, 주인 동의를 받아서 사살이나 안락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피의 운명을 쥐고 있는 개주인은 발가락을 잃은 피해자의 아들 H씨. 그런데 그는 해피가 범인일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우리 해피가 주인 발가락을 왜 물겠어요. 전 우리 강아지 입에 피 묻은 것도 본적 없어요. 안락사요? 법적으로 주인이 동의 안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절대로 안 해요.”

아들 H씨는 경찰이 확증도 없이 무리하게 해피의 배를 가른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발가락 실종사건의 유력용의견이 돼 배를 5센티미터나 갈라야 했던 해피는 전에 없이 우울한 모습으로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해피를 범인으로 지목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또 있다고 했다. 피해자가 당뇨를 앓고 있었고 괴사된 발 냄새가 개의 후각을 자극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한 애완견이 당뇨로 괴사된 주인의 발을 물어뜯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제작진이 피해자의 주치의에게 확인해 보니, 혈당수치가 정상범위였고 당뇨와는 상관없다고 했다.

어떻게 된 걸까? 당뇨라는 말이 나온 건, 최초 신고자인 피해자의 아내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남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그는 당시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국과수의 정밀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해피의 뱃속에 있던 물질에서 DNA가 전혀 검출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료를 먹고 배가 불러 있는 애꿎은 해피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셈이다. 사건 당시 집에 있었던 건 개 세 마리와 가족들이었고, 각자 방에서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고 했다. 개가 범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일까? 최초 신고자인 피해자의 아내는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녀 역시 잠을 자다 나와 보니 남편 발가락이 뜯겨나가 있어 신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에서 가족 모두를 조사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여전히 증거는 없고 의문의 발가락 실종사건은 그렇게 미궁에 빠져버렸다. 다만 누명을 썼던 개 해피의 억울함만 풀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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