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음식 피자에 이런 뒷얘기가?

서울시 식품안전뉴스

발행일 2016.10.27. 14:49

수정일 2016.10.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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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이탈리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피자다. 피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규격화된 패스트푸드 피자에서부터 레스토랑의 특색을 살린 피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피자가 존재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의 허름한 거리에서 시작된 피자는 이탈리아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음식이 되었다.

이탈리아 왕국과 마르게리타 피자

19세기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 지역에 있던 사르데냐 왕국은 수많은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일한 주역이었다. 사르데냐 왕국은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주둔군을 프랑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몰아내고 북부지역 통합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의 활약에 힘입어 1861년 마침내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1870년에는 로마의 교황령까지 합병되면서 이탈리아는 수도를 로마로 옮겼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 왕비가 1889년 나폴리를 방문했다.

당시 왕과 왕비는 유럽 귀족들의 주식이었던 프랑스 요리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피자 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는 왕과 여왕이 먹을 다양한 피자를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돼지기름과 소젖으로 만든 치즈 카초카발로, 바질을 사용한 피자와 작은 생선을 얹은 피자, 그리고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얹은 피자를 만들어 올렸다.

마지막 피자는 ‘피자 알라 모차렐라’라고 불렸는데 여왕이 그 피자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해서 이후에는 왕비의 이름을 따 ‘마르게리타’ 피자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피자에 얹은 빨간 토마토, 흰 모차렐라 치즈, 녹색의 바질, 세 가지 색깔은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과 일치한다. 마르게리타 피자가 통일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음식의 민족주의 개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르게리타 피자가 오늘날 정부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진정한 나폴리 피자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자

가난한 자의 음식에서 국민 음식으로

오늘날의 피자는 오래 전 나폴리에서 둥글납작한 빵 위에 마늘과 돼지기름, 소금을 얹어 먹던 것에서 출발했다. 흔히 이를 화이트피자라고 부른다. 이보다 비싼 피자에는 치즈를 토핑으로 올렸다. 요즘처럼 피자 위에 토마토를 올리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메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전래된 토마토는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피자에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나폴리에서 피자는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그들은 노점에서 피자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었다. 아침 식사용으로 조그만 피자 조각은 1페니였으며, 아이의 점심 도시락으로 2페니짜리 피자 조각 하나면 충분했다고 한다. 게다가 피자에 대한 평가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좋지 않았다. 이는 1883년에 출간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쓴 카를로 로렌치니가 피자에 대해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굽다가 태운 크러스트의 시커먼 색, 마늘과 앤초비의 희끄무레한 광택, 기름에 볶은 허브의 누르스름한 초록빛, 여기저기 뿌려진 토마토 조각의 붉은 빛이 뒤섞인 피자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어울리는 오물덩어리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에서 피자를 맛보고 난 후 피자는 당장 이탈리아 국민음식의 반열에 올랐을 것 같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피자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북부 공업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대거 이동하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함께 가져갔다. 또 유럽의 여러 국가로 이주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현지에서 피자가게를 차리면서 피자는 이탈리아의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피자는 이탈리아 내에서 그리고 유럽 내에서 퍼져 나가면서 이탈리아 국민음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나폴리 빈민가에서 팔던 싸구려 음식 피자가 이탈리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피자헛 1호점. ⓒwikimedia.org, Sanjay Acharya

피자헛 1호점.

피자, 세계인의 음식으로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따라 19세기 후반 미국에 상륙했다. 미국 북동부 공장에 취업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대단위로 모여서 살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비싸지 않은 피자를 통째로 팔거나 잘라서 팔았다. 1905년에는 최초로 판매허가를 얻은 롬바르디스 피자가게가 문을 열었다. 미국 북동부에서 피자가게가 줄지어 생겨나면서 피자벨트가 형성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에서 피자 맛을 본 미국 병사들이 귀국 후 이탈리아 식당을 찾게 되고 점차 피자 소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피자가 대중적 인기를 얻자 1958년 피자헛 1호점이 1960년엔 미시간에서 도미노피자 1호점이 문을 열었다. 1977년 무렵에는 미국 내 피자헛 매장이 3,400여 군데 생겼다. 규격화된 패스트푸드로 변신한 피자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는 1985년 이태원에 피자헛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규격화된 프랜차이즈 피자가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새롭고 독창적인 피자를 만들고자 하는 피자 전문점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피자전문점도 지역시장에 맞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성정과 변화 속에서 피자는 세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피자

피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음식이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들이 모여 점심이나 저녁 또는 간식으로 “피자나 시켜 먹지”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피자는 나폴리 뒷골목에서 빈민들이 먹던 음식으로 시작한 피자가 이탈리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고, 오늘날에는 사회적·지역적·민족적 구분을 넘어서 세계인들도 즐기는 음식이 된 것이다.

출처 : 서울시 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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