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평 중고차시장, '애프터마켓'으로 부활
서울사랑
발행일 2016.11.02. 15:03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이 자동차 애프터마켓으로 재탄생한다. 매매 상가와 부품 상가는 현대 시설로 다시 태어나고, 중고차 매매 통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부품 등록제 등을 통해 투명화를 지향한다. 40년의 역사는 자동차 역사박물관, 도서관으로 보존된다. |
지금의 서울 중랑구와 광진구 일대는 조선 시대 도성의 동쪽 내사산인 낙산에서 동쪽 외사산인 아차산까지 넓은 들이 펼쳐져 있던 지역이다. 조선 조정은 이 땅을 목마장으로 만들었는데, 마장동은 말 목장이 있던 곳, 면목동은 목장 맞은편, 장안평은 목장 안 넓은 들판, 자양동은 암말을 기르던 곳이다. 말을 기르고 기마 훈련을 하던 마장동과 장안평은 중랑천을 끼고 발달한 평야였다.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기도 했지만, 개화기부터는 차차 농토로 개척해 비옥한 땅으로 변모했다. 그러자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그들의 착취 기관이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강제로 소속시키기도 했다.
무·배추·미나리밭과 공구상이 들어서 있던 장안평이 이름을 떨친 것은 1976년 중고 자동차 매매 시장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을지로와 종로3가에 있던 중고 자동차 매매상과 자동차 부품상이 교통 체증을 유발하자, 정부에서는 외곽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중고차 하면 장안평
“정부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라고 해서 왔더니 죄다 미나리밭, 무밭이더라고요. 그 당시 64개 상사(중고 자동차 매매업체)가 힘을 합쳐 땅 1만 평을 샀죠. 그중 3,000평에는 매매 상가를 짓고 6,000평에는 전시장을 만들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상사 한 곳당 100평의 전시장을 갖추어야 했거든요. 그것이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의 시작이었습니다.”
땅 구입부터 영업까지 장안평에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을 만든 터줏대감 격인 이성기 옹이 회상하는 장안평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광활하게 펼쳐진 중고차 전시장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언론에서는 동양 최대 규모라며 연신 대서특필했고, 외국에서도 중고차 시장을 견학 오는 등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자랑거리였다.
“1979년 1월에 문을 연 이후 1990년대까지는 북새통을 이뤘어요. 차를 사러 오거나 구경 온 사람들로 복도가 꽉 차서 드나들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이성기 옹과 함께 중고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온 이은기 장안평 조합 이사장은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고객에게 설명을 해도 힘든 줄 몰랐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이렇듯 개장 이후 줄곧 중고차 매매와 정비, 부품 조달의 중심 역할을 도맡으면서 ‘중고차 하면 장안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의 메카인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시설이 낙후되고 온라인 중고차 시장에 밀리면서 정체기를 맞았다.
허위 매물과 호객 행위도 장안평을 불황으로 이끈 요소였다. 호객 행위를 일삼던 ‘차잽이’와 불법 매매는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고, 젊은 고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경기 불황과 맞물려 판매량이 급속도로 줄었다. 2013년 3만 1,359대에서 2014년 3만 165대, 지난해 3만 578대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자동차 애프터마켓 메카로 재생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이 일대를 ‘자동차산업복합단지’로 조성해 서울 동북권 도시 재생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곳은 중고차 매매·부품·정비업 집적지로 부품 1,100개, 매매 150개, 중고·재제조 220개, 정비 50개, 튜닝 200개 등 총 1,700여개 업체에서 5,400여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신 부품 연간 매출액은 1조 원, 중고 부품 연간 매출액은 1,000억 원, 중고 자동차 매매 연간 매출액은 1,500억 원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요”
장안평 도시재생지원센터 김상윤 총괄 코디네이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차 관련 시설로 잠재력을 갖춘 지역”이라며 “서울시는 장안평 중고차 시장을 서울의 신성장 산업으로 재생해 자동차 애프터마켓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애프터마켓은 신차가 팔린 후 차량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자동차 부품의 수입·유통·판매, 정비·수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핵심은 지난 40년간 축적한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중고차 매매와 부품 산업을 활성화하고, 신 성장 산업인 튜닝 산업과 재제조 산업(중고 부품 리사이클링)을 지역 내에 새롭게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낡고 협소한 매매 센터와 부품 상가는 정비 사업을 통해 현대화한다. 아울러 수출지원센터, 영세 정비업체를 위한 공공 임대 공간, 자동차 박물관 등 공공 문화 기능을 도입할 예정이다.이와 같은 하드웨어적 현대화와 함께 허위 매물 등으로 떨어진 장안평의 경쟁력과 신뢰를 끌어올리기 위한 소프트웨어적 현대화도 병행한다. 성능 점검 기록부와 주행거리 등을 DB화한 ‘중고차 매매 통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딜러의 역량 강화 재교육을 통해 ‘착한 딜러’를 육성하는 등 장안평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둘째, 기존 영세 정비업체가 최근 각광받는 튜닝업체로 전환 할 수 있도록 튜닝 산업의 거점을 새로 조성할 계획이다. 또 전국 최초로 ‘재제조 혁신센터’를 중랑물재생센터에 건립할 예정이다. 재제조 산업은 중고 부품을 분해-세척-검사-보수·보정-재조립 등의 과정을 거쳐 재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신성장 산업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는 없다
서울시는 창신·숭인, 서울역 일대, 창동·상계, 가리봉, 세운상가, 장안평, 해방촌 등 13개 핵심 지역을 선별했다. 이 가운데 빠르게 구체화된 모습을 보이는 지역이 바로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이다. 서울시의 이러한 행보에 당사자인 상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인들은 대부분 상당히 반기고 있죠. 그런데 반신반의하는 분들도 있어요. 예전부터 재개발에 대한 말은 늘상 있어왔으나, 업체의 지분이 걸려 있어 항상 무산되곤 했거든요” 김상윤 총괄 코디네이터는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을 자동차 애프터마켓 메카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지만 상인 사이에 ‘어떻게든 장안평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도시 재생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마이카 붐, 1990년대 허가제 중고차 거래의 신고제 전환, 2000년대 SK의 진출 등으로 중고차 시장은 신차 시장의 2배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 규모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시장은 시 외곽에 건설된 현대식 매매·정비 단지와 온라인 시장 활성화로 고유한 경쟁력을 상실하고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대로 가면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던 이성기 옹의 말처럼 변화 없이는 40년 전통의 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 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시점에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자동차 애프터마켓 도시 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아닐까 싶다.
■ “장안평은 우리나라 중고차 매매의 역사입니다”- 이성기 옹(대원자동차상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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