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에너지 절약 실천하는 이웃들

시민기자 윤연정

발행일 2016.10.10. 10:36

수정일 2016.11.16. 13:38

조회 1,191

지난 8월 12일 저녁 7시,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 단지. 기록적인 폭염의 열대야 속에 주민 30여명이 아파트 뒤편 놀이터에 모였다. 무더위만큼이나 치솟은 불쾌지수에 아랑곳없이 넉넉한 표정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민들. 무슨 이유일까? 모두의 시선은 어둠이 채 내려앉기 전 황혼의 석양 위로 쏟아지는 저녁 달빛에 꽂혔다. 아파트며 가로등의 주변 불빛을 모두 끄고 온전한 자연의 달빛을 즐기는 ‘불끄기 행사(earth hour)’다. 홍제성원 에너지자립마을 회원과 주민들이 마련한 행사다. ‘에너지랑 놀자’ 청소년 마을동아리도 자리를 함께 나눈다.

놀이터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인 동네 주민의 너털웃음과 뛰어 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아파트 뒷마당에는 정겨운 마을 풍경이 한껏 묻어난다. 이 동네에 산 지 10년이 넘은 최윤지(53·홍제동) 씨와 이사 온 지 2년차 새내기 주민 박민정(34·홍제동) 새댁도 나란히 앉아 담소를 주고받는다. 최 씨는 “주민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 게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작년부터 마을 단위 활동이 시작됐는데, 예전보다 마을에 활기가 넘치는 거 같아 좋다”고 웃음 짓는다.

홍제성원 에너지자립마을 `불끄기 행사`에 참여 하고 있는 주민들 ⓒ 윤연정

홍제성원 에너지자립마을 `불끄기 행사`에 참여 하고 있는 주민들

아이들은 자연관찰 어른들은 에너지 절약

수박과 감자를 나눠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후원해준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자리도 살핀다. 불이 꺼진 7시부터 9시까지를 이용해서다. 어두운 공간에서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별과 달을 관측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저녁이 있는 삶’의 그 여유로운 저녁 모습이 그려진다.

정미경(8세) 어린이는 달과 토성을 처음 본다며 마냥 신기한 표정이다. 다음에도 또 놀고 싶다며 놀이터를 제집 거실처럼 뛰어다닌다. 미경이의 엄마 심은희(45세) 씨는 종로에서 3년 전에 이사 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활동에 눈을 돌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에너지자립마을 회원이 됐다. 아이들도 에너지 절약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활동에 적극적이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지 배우게 돼 좋다”며 “최근에 동생, 엄마 저 이렇게 세 가구가 미니 태양광도 설치했다”는 심 씨의 말에 주민의 삶 속으로 파고든 행사의 성과가 읽힌다.

서대문구청 행정지원과 정책보좌관이자 에너지자립마을 대표로 활동 중인 서정순 씨는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에너지자립마을 관련 교육을 펼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야외에서 실시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또 해볼 예정”이라며 야외 행사의 장점을 짚어준다.

아이도 즐기는 구청의 시민 교육 프로그램

김윤아 양과 윤혜연 씨가 에너지를 만드는 우리집 모형을 같이 만들고 있다. ⓒ윤연정

김윤아 양과 윤혜연 씨가 에너지를 만드는 우리집 모형을 같이 만들고 있다.

"나중에 진짜 집 지을 수 있으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또 직접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집 지을 거예요!" 지난 8월 27일 오전 10시, 서대문구청 대강당에서 김윤아(9세) 어린이가 또박또박 들려준 말이다. 윤아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재활용 우유갑에 가위를 들이댄다. 폐지와 색종이를 잘라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꾸민다. ‘내가 꿈꾸는 에너지를 만드는 우리집’을 상상하며 엄마와 함께 즐기는 모습에 에너지 절약의 미래상이 담겼다.

윤아가 놀이처럼 에너지를 공부하던 서대문 구청 강당에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150여명의 구민들이 모였다. 가족 단위로 에너지체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서울시 최초의 서대문구 에너지자립마을 협의체가 주최하는 행사다. 이번이 두 번째 워크숍이다. 아이들은 에너지 모형 집 만들기에 참여하며 ‘친환경 에너지’, ‘에너지 효율’에 대한 개념을 몸으로 익힌다. 부모들은 에너지 효율화로 돈을 아끼는 방법 강연에 귀 기울인다. ‘주택에너지효율화 제도 및 방안’이란 딱딱한 주제는 그렇게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참가한 가운데 쉽게 주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워크숍에서 열심히 참여하는 시민들 ⓒ 강은주

워크숍에서 열심히 참여하는 시민들

에너지 절약, 주택에서 주택단지로 범위 확대돼야

초청 강연을 맡은 박기수 에너지평가사는 “에너지 저소비형 주택에서 궁극적으로 영국의 제로에너지하우스 같은 주택단지로 가야한다”며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그린 리모델링이 대안”이라고 목청을 돋운다.

2011년 이전에 지어진 구형주택은 에너지효율이 30%에서 50%가량 떨어진다. 건물 벽체 단열 미비로 냉난방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전구를 LED 조명으로 대체하고 단열이 잘되는 삼중창 등 고효율 기자재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열 차단을 위한 ‘뽁뽁이’, 에너지 절약형 멀티탭 사용도 현실적인 절감방안이다.

교육차원에서 아이들을 데려왔다는 윤혜연(38세) 씨는 강연 뒤 “선진국에서는 벌써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정마다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며 “우리나라도 더 많은 지원을 통해 에너지효율 기술을 가정집에 보급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드러낸다.

발로 찾아가는 구청 설명회, 에너지마을에 활력

에너지 자립마을은 주민의 필요성과 공감대를 끌어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누진세제는 주민들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관심 영순위다. 주부 박정희(37.연희동)씨는 “이번에 누진세 때문에 원래 비용보다 요금이 2배나 더 많이 나왔다”며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엔 잘 몰랐는데, 이 동네에 와 구청의 현장 설명회에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누진세에 있음을 밝힌다.

서대문구청 에너지관리팀 이향란 팀장은 "2015년부터 6곳의 에너지자립마을이 설립됐지만 이해가 부족하고 실생활과 연결되지 않아 운영과 활동이 침체됐다”며 그 대책으로 “올 1월부터 마을로 직접 찾아가 소통과 공유를 위한 컨설팅과 간담회를 지원하면서 다른 구청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마을이 조성, 운영되고 있다”고 활성화의 비결을 알려준다. 구청의 발로 찾아가는 행정이 구호에만 머물던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셈이다.

서울시 에너지 자립마을 현재 55곳 운영, 증가 추세

서울시의 에너지 자립마을 목표는 100개. 올 3월 에너지 자립마을 24개를 새로 신청 받아 현재 55개가 설립됐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대문구가 올해 6개를 새로 설립하는 등 11개 에너지자립마을을 세워 확산의 일등공신이다. 서울시는 에너지자립을 위해 주민 공동체가 해법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는 "에너지자립마을은 에너지를 줄이고 생산하는 방법을 마을 주민들이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며 "주체가 공무원이 아니라 마을 주민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내 에너지자립마을 위치. 서대문구가 가장 밀집돼 있다. ⓒ윤연정

서울시 내 에너지자립마을 위치. 서대문구가 가장 밀집돼 있다.

유럽에는 벌써 에너지 자립마을 성공적 운영

2002년 완공된 에너지 효율 마을인 베딩톤 제로 에너지단지(BedZED·이하 베드제드)는 영국 최초의 성공적인 친환경 주택단지다. 런던 남단의 써튼 지역에 위치한 베드제드는 바람과 태양광 그리고 목재연료만 쓴다. 화석연료 없이도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주거 생활을 누린다는 취지다. 주민 만족도가 높아 이사 가는 세대가 없을 정도다.

영국 베드제드 주거단지, 지붕 위 환풍기로 바람을 순환시켜 사용한다. ⓒ윤연정

영국 베드제드 주거단지, 지붕 위 환풍기로 바람을 순환시켜 사용한다.

바이오리저널(Bioregional) 2015년도 리포트에 따르면, 베드제드 주택단지 주민들은 런던의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수도세, 전기세 및 냉난방비까지 훨씬 적게 낸다. 전기세 및 냉난방비는 2인 가구 기준으로 런던 내 평균 지출비용보다 68%, 수도세는 45% 낮다. 2015년 기준으로 2인 가구의 총 절감 비용은 1,094파운드(156만 원). 자동차세까지 합치면 매일 약 4파운드(6천원)씩 버는 셈이다.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 사업, 에너지 자립마을의 미래를 그리다

2020년도 전력 생산 및 수요·절감량 전망 그래프.

2020년도 전력 생산 및 수요·절감량 전망 그래프.

서울시는 '에너지살림도시, 서울' 사업을 통해 2020년까지 서울시 전력 자립률을 2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린 리모델링 사업, 미니태양광 설치 지원사업을 통해 기존 주거 공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일에 적극 나선다. 저소득층 건축물의 단열 사업 지원에도 주안점을 둔다.

에너지자립마을은 공동체 연대를 중요시하는 풀뿌리 에너지 절약 활동이다. 주민 생활공간이나 주민 생활양식을 제도만으로 바꾸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시민들이 에너지를 자생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습관을 조금씩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때 에너지 절약과 삶의 질 향상이 동시에 시민 품안에 깃든다.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단계에서 ‘베드제드’처럼 탄소 제로를 향해 가는 에너지자립마을의 미래상이다.

※ 이 기사는 청년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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