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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만화거리 재미로, 오른쪽 건물이 만화의 ㅁ, ㅎ을 형상화한 만화박물관 `재미랑`

호호의 유쾌한 여행 (10) 중구 – 명동 만화거리 ‘재미로’

단풍을 기대하기엔 아직 이른, 짙푸른 여름의 잔영이 남아있는 9월이면 남산에 오르고 싶어집니다. 지하철 한 번이면 가는 명동까지 치열한 여름을 지나 참 멀리 돌아온 기분입니다. 아는 사람들만 와서 신나게 즐기고 간다는 남산 아래 만화 특화거리 ‘재미로’가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기분 탓일까요? 가을의 여유만큼 한산해진 길을 걷는 발걸음이 산뜻합니다. 지하철 명동역 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상상공원의 로보캅 폴리와 앰버가 반겨줍니다. 만화거리 ‘재미로’는 상상공원부터 퍼시픽호텔과 명동주민센터 사이 길을 따라 숭의여대,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이어집니다. 450미터의 짧은 거리지만 길거리 곳곳의 만화 캐릭터들을 찾아보고 전시공간에 들르다 보면 반나절은 쉬이 지나가는 시간여행 길입니다.

명동역 3번 출구 앞 상상공원이 시작점

길을 걷자니 골목길, 돌담길, 전신주와 건물 구석구석까지 만화주인공들과 때아닌 숨바꼭질 놀이를 하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기념사진 톡톡히 남길 수 있는 길입니다. 로보트태권브이가 간판에 걸린 명동주민센터와 미니특공대가 지키는 새마을금고를 지나자 본격적인 갤러리가 보이기 시작됩니다. 상상공원을 출발한 지 2~3분만에 남산공영주차장 4층, 5층에 자리한 ‘웹툰공작소’에 도착합니다.

손대지 마시오 안내가 없어도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웹툰공작소의 한정판 피규어

웹툰공작소 5층에 올라가니 작은 갤러리 안에 쉽게 접하기 힘든 한정판 피규어들이 신기합니다. 전시장 가운데는 인기캐릭터를 만들어볼 수 있는 3D 프린터도 있습니다. 가만가만 들여다 봐야 하는 정교한 피규어와 체험 프로그램은 유아보다는 초등학생 이상에게 더 적합한 곳입니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있는 4층은 현재 임시 휴무 중입니다.

재미랑의 백미인 옥상 만화책방. 편한 자세로 인기만화책을 섭렵할 수 있는 곳이다

재미랑 옥상 테라스에 나와 바라본 한가로운 재미로 골목길과 N타워 모습

공작소를 나와 걷다보면 만화 글자의 자음 'ㅁ'과 'ㅎ'을 얹어놓은 독특한 외관의 진노랑색 건물이 나오는데 바로 만화박물관 ‘재미랑’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지하 1층부터 4층 다락방 만화책방까지 걷는 수고가 따르지만 만화 거리의 대표 박물관답게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곳입니다. 현재는 안데르센을 주제로 지하 1층과 2층에서 동화상영과 체험 전시가 한창입니다.

재미랑의 백미는 4층 옥상 만화방입니다. 마루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인기 만화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을 들면 옥상 너머로 탁 트인 가을 하늘과 N서울타워가 펼쳐집니다. 이보다 멋진 경관을 가진 공짜 만화방이 서울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평일 오후에 가면 오롯이 나만의 아지트에 온 듯 뒹글뒹글 만화책 삼매경에 빠지기에 제격입니다.

재미로 4호 삼박자체험공방은 작가들과 직접 만화 체험할 수 있는 이색 공방

반겨줄 사람이 있을 때 공간은 더 빛나는 법이지요. 지난 8월에 문을 연 재미랑 바로 건너편 ‘삼박자 체험공방’은 작가들이 상주하며 직접 길손을 맞아줍니다. 바로 10년 넘게 끈끈한 인연을 맺어온 아말록 만화작가 겸 영상콘텐츠 감독(사진 왼쪽)과 소공 만화·일러스트 작가(사진 오른쪽), 송송화 금속공예가 등 3인방입니다.

만화공방에서는 누구나 캔버스에 그림 그리기와 만화책 만들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유명 작가들이 작업 도중 뽀로로 음료수를 계산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 어색한 모습에 웃음이 나는 유쾌한 공간입니다. 꼭 한번 들러 인사를 건네보세요.

재미로 골목 끝지점 50년 한국 만화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만화언덕

재미로 골목 끝에는 다소 투박한 옹벽의 ‘만화언덕’이 나옵니다. ‘로봇, 찌빠’부터 ‘달려라 하니’까지 한국 만화사를 빛낸 40편의 만화 주인공이 새겨진 야외 갤러리입니다. 갤러리 속 주인공들을 찬찬히 구경하며 언덕을 넘으면 거대한 로보트 태권V 모형이 세워진‘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코 앞입니다.

국내 인기캐릭터가 총출동한 국내최대 만화박물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국내최대 만화박물관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현재 귀여운 캐릭터들이 셀카를 찍게 만드는 애니타운 프렌즈 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2층에 오르면 복도 한 켠에 카투니스트 지현곤 씨의 작품들이 걸린 갤러리가 있습니다. 하반신마비중증 장애로 50여 년 넘게 누워서 창작활동을 해온 그의 카툰을 보다 보면 한 획 한 획 만화에 대한 열정이 담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듭니다.

편한 자세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만화의집 2층 영상센터

애니센터 바로 옆 보물창고 ‘만화의 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애니센터가 아이들의 천국이라면 만화책과 영상자료가 가득한 만화의 집은 청소년과 어른들의 놀이터입니다. 영상센터 2층에서는 빈백(Bean bag)에 누워서 편안한 자세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로보트 태권 V’, ‘마루치아라치’, ‘똘이장군 시리즈’ 등 30여 년 전 만화영화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지요.

재미로 3개의 테마길 중 하나인 도로도로 골목의 계단 언덕

돌아가는 길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골목골목을 돌아 다시 명동역으로 내려와 보세요. 주택과 좁다란 계단 언덕 사이사이 자투리 공간에 ‘도로도로 골목길’, ‘과거여행길’, ‘명랑골목’ 등 3개의 테마 골목길이 있어 아기자기한 표지판과 복고풍의 그림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아이와 함께 남산여행겸 ‘재미로’를 가보시라고 소개했는데 막상 가보니 시간 날 때 혼자 오고 싶어집니다. 재미랑 옥상 만화방을 동굴 삼아 들어가 원 없이 만화책을 읽고 만화의 집 빈백에 누워 실컷 만화영화에 빠지고 싶은 가을날엔 말입니다. 물론 아이와 함께 가면 추억이 주렁주렁 기쁨 두 배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요.

추억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재미로 과거 여행길의 벽화

* 여행스토리 호호 : 여행으로 더 즐거운 세상을 꿈꾸는 창작자들의 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