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커피 한 잔

서울식품안전뉴스

Visit526 Date2016.07.29 09:32

쌉쌀한 맛의 그윽한 커피 향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늘날 커피는 하루에 약 25억 잔이 소비되고 있으며 경제적 가치가 석유 다음이라고 한다. 18세기 커피 한 잔에는 혁명의 기운이 그득했다.

커피콩

자극과 활기를 불어넣는 카와

커피이야기는 에티오피아 땅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주 옛날에 칼디라는 염소를 돌보는 목동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염소들이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해서 그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염소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 움직임 없이 자곤 했는데 그 염소들이 이상하게 불면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염소들은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암벽을 기어오르고 서로 몰려다니며 ‘매애매애’ 시끄럽게 울어댔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목동은 염소들이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 나면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디는 이 사실을 이슬람 수도원 원장에게 알렸다. 수도원 원장은 찬물에 열매를 넣고 짓이겨 보았으나 잘 이겨지지 않아 화덕 냄비에 넣고 가열했더니 검은 알갱이가 되었다. 이 검은 알갱이를 갈아 끓인 물에 넣으니 물이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지금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원장이 시험 삼아 마셔 보았는데 한밤중까지 정신이 또렷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평상시와 다르게 활동적이고 즐거웠고 무엇보다 각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는 이 음료가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고 사고가 투명하리 만치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에 이용했다. 그래서 수도승들은 이 검은 음료를 카와(khawah)라고 불렀다. 이는 자극과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의미였다.

세상을 논하는 공간, 카페

13~14세기에 커피는 아라비아를 거쳐 이집트와 터키 제국으로 전해졌다. 16세기 후반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럽에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음료를 의심했고 심지어는 악마의 음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커피가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으로 소개되면서 상류층에 급속하게 퍼졌다. 커피가 처음에는 상류층에게만 알려진 사치품이었으나 일단 상업적으로 유용해지자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호품이 되었다. 1650년에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고 교역과 정치 그리고 문학을 논의했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런던의 로이드 회사도 선원들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이 커피하우스에서는 배의 화물과 운송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고, 점차 운송보험을 팔기 위해 보험업자가 모여들면서 커피하우스는 로이드 보험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1670년 파리에서는 터키식 복장을 한 행상들이 돌아다니며 커피를 팔았다. 1686년에는 프로코피오 데이 콜델리가 파리 생 제르멩 시장 근처에 커피하우스 ‘카페 프로코프’를 열었다. 1720년 파리에는 380여 곳의 카페가 성업 중이었다. 이 카페들은 파리 시민들의 정신의 근원이자 저장소, 쉼터의 역할을 하면서 삶의 형태와 본질을 변화시켰다. 카페는 사회생활의 중심을 가정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카페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팸플릿을 보면 남녀를 막론하고 꽤 많은 인물들이 카페를 찾았다. 지방의 유지, 요염한 여인, 성직자, 군인, 시골뜨기, 작가, 공무원, 법조인, 술꾼, 도박꾼, 식객, 돈을 쫓는 사람, 황혼의 연인들, 허풍쟁이, 문학 애호가, 문인 등 모든 인간 군상들의 집합소라 할만 했다. 물론 단골손님들 중에는 두 특권 계층인 성직자와 귀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10만 명도 되지 않았고 제3계급인 평민들은 2400만 명에 이르렀다. 카페의 단골들은 대부분 부르주아, 장인, 노동자 등 현실에 불만이 팽배해 있던 이들이었다. 왕정 치하에서는 과도한 세금에 절망이 만연했다. 카페에 모인 부르주아, 사상가들, 변호사들은 커피 한 잔을 놓고 이러한 세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카페 프로코프에 모인 계몽주의자들을 그린 상상도. 손을 들고 말하는 사람이 볼테르이다.`

`카페 프로코프에 모인 계몽주의자들을 그린 상상도. 손을 들고 말하는 사람이 볼테르이다.`

검은 음료에서 혁명의 해가 밝아 오다

카페 프로코프에는 디드로, 달랑베르, 루소, 볼테르, 뷔퐁 등 계몽주의 시대의 유명한 문인과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볼테르는 카페 프로코프에서 즐겨 앉았던 탁자가 있었으며 하루에 수십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서 살았다. 프랑스의 카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계몽주의자들에게는 토론의 장이었고 파리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뉴스 공급처였다. 지식인들은 각종 연설과 글을 통해 만연한 빈곤과 사회적·경제적 비참함을 알리고 음악가는 악기와 노래를 통해 대중들의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치안당국도 카페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국무장관 아르젠손은 특별수사관을 임명하여 카페의 동향을 살피게 했다. 바스티유 감옥에 보관된 비밀문서에는 당시 카페에서 수집한 정보가 기록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왕정과 귀족체제의 견제 속에서도 카페에서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전향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프랑스의 역사가 줄 미슐레는 “카페 프로코프에 날마다 모였던 선각자들이 그들이 마시는 검은 음료의 깊이에서 예리한 눈짓으로 혁명의 해가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마침내 1789년 7월 12일 오후 젊은 변호사 카미유 데물랭은 카페 드 푸아에서 테이블 위로 올라가 권총을 휘두르며 이렇게 외쳤다. “형제들이여! 자유는 파멸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최고의 동반자입니다. 무장합시다. 시민 여러분! 무장합시다!” 그의 외침은 군중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고 화난 군중들은 이틀 후 바스티유 감옥을 포위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커피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 정한진(창원문성대학교 호텔조리제빵과 교수, <세상을 바꾼 맛> 저자)
출처 : 서울식품안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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