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와 관한 짧지만 정말 대단한 이야기

최순욱

발행일 2016.07.06. 13:46

수정일 2016.07.06. 16:46

조회 2,065

홍수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묘사한 Raden_Saleh의 그림 ⓒWikipedia

홍수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묘사한 Raden_Saleh의 그림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36) 한국의 홍수 설화

며칠 동안 하늘에 구멍이 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운전을 하던 중에 ‘이러다 자동차랑 같이 떠내려갈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6일)에도 많은 곳은 120mm 이상의 ‘비 폭탄’이 이어질 수 있다고 피해가 없도록 누구든지 철저히 대비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큰 비가 오면 이렇게 난리가 나는데, 오래 전 옛날엔 대체 어땠을까 싶다. 하수도나 관개시설이 지금만큼 잘 갖춰지지 않았을 터이니 한번 웬만한 물난리가 나면 촌락이나 도시가 거진 다 떠내려가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큰 강이 범람하는 대홍수의 경우 문명 자체가 흔들릴 만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 큰 비로 인한 피해나 홍수에 관한 신화나 설화가 수백 개 이상 전해지는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한 세대의 기억 속에 완전히 각인될 정도의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을 경우, 문자 등 당시로서는 불충분한 기록 수단을 보완하기 위해 전설이나 신화 같은 이야기의 형태로 대홍수에 대한 기억을 남기려고 시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 싶다. 우리나라에도 몇 가지 홍수 설화가 전해지는데, 그 중에서도 ‘목도령’ 이야기가 특히 재미난 편이다.

아주 오랜 옛날, 선녀가 어느 날 지상에 내려와 계수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이 나무의 정기와 관계를 가져 잉태하고 후에 목도령(나무도령)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다. 목도령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선녀는 하늘로 올라갔고, 이때부터 목도령은 계수나무 아래에서 이 나무를 아버지라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나무가 소년을 부르더니 “앞으로 큰 비가 올 터이니 내가 넘어지면 등에 타라”고 말했는데, 과연 며칠 지나지 않아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상이 온통 물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목도령은 넘어진 나무를 타고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개미들을 만나 아버지 나무의 허락을 받고 개미들을 나무에 실어주었다. 가다가 만난 모기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목도령은 결국 세상의 온갖 짐승들을 다 구해주게 되었다. 마지막에 한 소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구해주자고 목도령이 말했으나 아버지 나무가 반대했다. 하지만 목도령은 구해야 한다고 우겨 소년도 나무 위에 실어주었다.

비가 멎은 후 나무도령 일행이 높은 산꼭대기에 닿았는데, 이 산이 백두산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짐승들은 각자 살 곳으로 흩어졌고, 두 소년은 산을 헤매다가 한 노파가 아름다운 딸과 하녀를 데리고 사는 집에 도착했다. 목도령이 구해준 소년은 노파의 딸을 차지하려는 생각에 노파에게 목도령에 대한 험담과 모함을 일삼았고, 결국 목도령은 어려운 시험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그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마다 홍수 때 구해줬던 동물들, 특히 개미들이 나타나 도왔던 덕분에 쉽게 곤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목도령은 노파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고, 구해 준 소년은 못생긴 하녀와 결혼했는데, 이 두 쌍이 대홍수 이후 모든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고 목도령은 나중에 백두산의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온 세상과 인류를 쓸어버린 큰 비와 대홍수에 대한 공포, 세상의 뭇 생명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 다른 짐승들의 신의 등이 해피엔딩과 함께 어우러진 이야기다. 짧지만 정말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가. 앞으로 며칠간, 또 장마동안 큰 비로 인한 이런저런 피해가 분명히 발생할 거다. 아무쪼록 모두가 목도령처럼 곤경을 잘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길 바란다.

#홍수 #최순욱 #신화여행 #목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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