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뜨는 ‘연트럴파크’를 아시나요?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6.06.27. 13:03

수정일 2016.06.27. 16:02

조회 6,857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작정하고 길을 나서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대중매체에 간간이 그 공간에 대한 소식이 전해져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소박한 동네가 어느 날부터인가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특별히 주목받지 않았던 소박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이 궁금해졌다. 서울시 도시공간지원단이 진행하는 서울 도시‧건축 답사는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반갑다, 경의선숲길공원!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에 시민들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에 시민들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서자 최근 핫한 공간으로 떠오른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이 펼쳐졌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미국의 센트럴파크에 빗대어 경의선숲길공원을 ‘연트럴파크’ 라 불렀다.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은 잘 조성된 산책로와 잔디밭, 곳곳에 만들어진 휴식 공간 등으로 센트럴파크 부럽지 않을 만큼 도심 속 녹색 휴식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남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의선숲길공원은 연남동 주민들뿐 아니라 이 공간이 궁금한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호기심 이는 장소였다. 과거 연남동은 경의선 철길이 동네 중앙을 관통하면서 양쪽으로 단절된 느낌을 줬던 곳이다. 하지만 경의선 철길과 공항철도가 지하화 되고, 옛 철길 부지는 지형 그대로를 살려 긴 공원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그 경의선숲길공원이 궁금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연남동 구간에는 세교실개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연남동 구간에는 세교실개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경의선숲길공원 연남동 구간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세교리, 잔다리 등이었다. 고지도를 통해 옛 수계(지표의 물이 점점 모여서 한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는 하전의 본류나 지류의 계통)를 확인해 보면 이 지역엔 작은 물길이 여러 갈래로 지나갔다고 한다. 공원을 만들면서 긴 공원을 따라 작은 실개천을 만들고 이름도 옛 지명의 의미를 넣어 ‘세교(細橋)실개천’이라 했다. 세교실개천은 경의선 철도와 공항철도의 지하 유출수를 이용해 시간당 150톤 정도가 지상으로 올라와 흐르면서 공원 안의 정겨운 실개천을 만들고 있었다.

폐품으로 만든 기차 모형. 철길이었던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폐품으로 만든 기차 모형. 철길이었던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공원 중간 중간에서 볼 수 있는 녹슨 폐 선로는 이곳이 철길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공원 양옆으로 늘어선 키 큰 나무와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초화류들, 잘 조성된 공원길과 잔디밭, 맑은 물이 흐르는 세교 실개천은 공원을 더욱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공원길을 여유 있게 산책하거나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 앉은 젊은이들의 모습, 공원의 벤치에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앉아 담소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폐선로가 선명하게 살아있다

폐선로가 선명하게 살아있다

밤엔 젊은이들이 더 많이 경의선숲길공원을 찾는다. 얼마 전, 모 신문 매체에서 경의선숲길공원의 밤풍경과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 거주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행동에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무엇인가를 온전히 누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도 함께 갖춰야 할 것이다.

오래된 것과 새 것이 공존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남동 골목 풍경들

연남동 경의선숲길공원을 거닐어 보았다면 연남동의 속살, 골목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연남동 골목을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여기 뭐 하는 곳이지?” 싶은 공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조용하고 평범한 주택가 골목의 주택들은 건물 전체가 리노베이션(낡은 집을 새집으로 변경하는 작업)됐거나 1층 혹은 반 지하 공간, 2층의 일부가 개조돼 카페가 되고, 음식점이 되고, 작가의 공방이 됐다. 작가의 공방만 연남동엔 40여개가 넘는다. 천연비누, 차, 플라워, 음식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런 작가의 공방들을 연남동 골목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작가는 작업을 하고, 강의도 하고,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도 한다.

낡은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곳곳에 숨어 있다

낡은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곳곳에 숨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연남동의 골목에서는 건축가의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건축물들도 만날 수 있다. 기존 다가구 건축물에 한 층을 새로 위로 얹은 건축물 ‘연남387-31’과 3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민 건물의 외관을 살려 리노베이션 한 ‘이음빌딩’ 등은 발길을 저절로 멈추게 한다. 건축물 ‘연남 387-31’은 다세대주택이 리모델링되는 과정에서 옛날의 흔적을 다 지우고 건축하느냐 아니면 옛날의 흔적을 보존하면서 새것을 건축하느냐를 건축가들이 고민하는데, ‘옛것은 보존하면서 새것을 덧붙인다’는 원칙이 제대로 적용된 일반건물이란 평이다. ‘이음빌딩’ 역시 건축가와 건물주가 협의를 거쳐 시간이 축적된 공간의 히스토리를 감안해 외관을 많이 살리고 내부도 자연스럽게 리노베이션한 건물로 손꼽힌다.

마포구를 대표하는 주거 공간 연남동은 1층 혹은 2층짜리 단독주택들이 많은 동네였다. 연남동엔 30년 이상 된 건축물이 47.4%로 가장 많으며, 15년 미만 건축물이 33.3%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 다가구 주택 규제 완화시기를 거치면서 주택 측면의 공용계단을 통해 세 들어 사는 가구의 출입이 용이한 혹은 옥상으로 진입이 쉬운 유형의 다가구 주택(28%)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 연남동에는 이러한 다가구 주택 혹은 단독 주택의 일부 공간을 개조해 예술가의 공방 혹은 카페와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등의 공간으로 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골목 안은 늘 시끌시끌하다. 공사를 하기 위해 천막으로 가려 놓은 집도 있고, 이미 많은 주택은 공간 개조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다면 동교로를 중심으로 아래위로 형성된 연남동의 ‘골목공방거리’ 가 활성화 되었던 단초는 무엇이었을까?

“연남동의 동진시장은 오래된 재래시장이었어요. 시장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빠져 나가면서 재래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멈춘 채 방치돼 있었죠.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가 동진시장을 5년 동안 장기 임대해, 야채와 떡을 팔던 재래시장 안쪽 공간을 다른 방식의 시장으로 바꾸면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봐요. 재능을 가진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그들이 만든 것들을 파는 시장으로 공간을 탈바꿈시키면서 홍대권역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이 주변에 아름아름 안착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또한 그와 맞물려 동진시장 뒤쪽에 커피상점 이심, 카레 맛집 히메지, 커피 리브레, 태국음식점 툭툭 누들타이 등이 생기면서 시장 뒤쪽 짧은 골목길이 활성화되면서 점차 소문이 났어요.”

이진오건축가(건축사무소 SAAI 공동대표)

이진오건축가(건축사무소 SAAI 공동대표)

연남동 주민인 이진오(건축사사무소 SAAI 공동대표) 건축가는 동진시장과 동진시장 뒤쪽 짧은 골목길이 활성화 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을 이유로 꼽았다. 이진오건축가는 연남동에 소규모 1인 가게의 좋은 선례를 보여준 ‘어쩌다가게@동교’ 와 다세대주택 2동을 리모델링해 1인 가구 주택 ‘어쩌다집@연남’을 건축한 바 있다.

어쩌다집에서 바라본 연남동 풍경

어쩌다집에서 바라본 연남동 풍경

핫한 공간 연남동에 공연히 딴지 걸기

연남동에는 동교로, 성미산로, 연남로 등 대로변부터 동네 깊숙한 좁은 골목길까지 규모는 작지만 운영자의 감성과 개성이 묻어나는 소규모 카페, 책방, 식당, 작가의 작업실, 공방, 게스트하우스 등이 많다. 1~2년 전부터 제2의 홍대라고 불리는 연남동. 북적대고 화려한 홍대와 달리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조용한 주택가와 골목길의 정취가 아직은 많이 남아 있는 동네다.

연남동 깊숙한 카페까지 사람들은 몰려 들고 있었다

연남동 깊숙한 카페까지 사람들은 몰려 들고 있었다

동네를 걷다가 만난 주민에게 물었다. “이런 깊숙한 골목까지 사람들이 오나요?”, “그러게요. 요즘 젊은이들은 아파트에서 살아서 그런가? 이런 골목의 이런 주택을 정겨워 한다네요. 특색 있다고 좋아해요. 어떻게 알고 오는지 참 많이들 와요. 동네 주택들 대부분이 작은 공방, 카페, 작은 음식점으로 집의 일부를 거의 내줬어요.”

잠시 스치는 생각 하나는 ‘이것도 도시재생으로 봐야 하는 건가?’ 라는 것이었다. 연남동 주택가에서 만난 오래된 주택의 일부가 공방으로, 카페로, 음식점으로, 술집으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기 위해 새롭게 개조를 마친 모습들을 보며 주택가에서의 ‘묘하고 독특한 공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세대 주택 1층은 공방이 됐고, 허름했던 단층 주택은 리모델링을 거쳐 게스트하우스 혹은 카페가 됐다. 주거와 상업 공간의 경계가 연남동 골목에서는 없어져 가고 있었다.

연남동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경의선 숲길의 별명은 `연트럴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다

연남동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경의선 숲길의 별명은 `연트럴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다

연남동은 1970년대부터 복개천인 동교로를 따라서 기사식당과 중국식당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홍대를 근거로 한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비교적 싼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골목길에 공방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문화적 인프라가 입소문이 나면서 상업적인 공간들도 속속 들어오고, 부동산이 급등하는 동네가 됐다. 얼마 전부터는 연남동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동네가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한다. 주민이 떠나는 대신 카페와 술집, 음식점 등 상업적인 공간들이 들어와 북적이기 시작한다고. 동네에 거주민이 사라지고 상업적 공간만 남으면 동네는 오래가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연남동 골목에서 만난 오래된 주택들과 골목길 풍경의 변화를 보면서 지난 시간이 축적된 공간들이,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흔적 없이 점차 사라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 기우(杞憂)는 끝까지 기우(杞憂)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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