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같은 책을 모은 집옥재
건청궁의 서북쪽에는 청나라 양식의 요소가 많아 이국적인 모습을 한 건물이 눈이 들어온다. 중심에 자리를 잡은 집옥재(集玉齋)와 그 서쪽에 팔우정(八隅亭), 동쪽에 협길당(協吉堂)이 있는데, 세 채의 건물은 유리창이 있는 복도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은 1881년(고종 18)에 창덕궁 함녕전(창덕궁 수정전 자리에 설치한 전각)의 북별당(北別堂)이었는데,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인 1891년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1891년 7월 13일 고종은 집옥재를 옮겨 짓는 공사를 중건소(重建所)로 하여금 거행할 것을 명하였다. 고종은 집옥재에 어진을 봉안하고, 서재로 사용하였는데, 집옥재에는 4만여 권의 도서가 수집되었다. 현판은 세로로 쓰여 있는데, 중국 북송의 서예가 미불(米芾)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집옥재의 도서는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고종은 집옥재를 건청궁과 같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도 활용하였다. 외국과의 문물 교류에 대한 공간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다. 1893년(고종 30) 한 해에만 영국, 일본,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외국 공사들을 접견한 기록이 『고종실록』에 나타난다. 고종은 집옥재를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중심 공간으로 삼고, 왕이 주도하는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였던 만큼 이를 현대식으로 활용하는 방안들도 진행 중이다. 2016년 집옥재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고, 궁궐을 찾는 사람들에게 개방을 하였다. 코로나 유행 기간에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집옥재는 다시 궁궐 내 도서관으로 고종이 세웠던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