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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차 수제화 장인도 '자영업자 생존자금' 큰 보탬

윤혜숙 2020-07-27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자그마치 38년간 구두업에 종사하며 한 우물을 판 수제화 장인이 있다. ㈜해원다이얼 김남흥 대표(66세)다.

김 대표는 군대를 제대한 후 구두업계에 뛰어들어 어느덧 38년 차의 경력에 이르고 있다. 그는 구두를 만지면서 청춘을 보냈다. 구두업으로 돈을 벌면서 결혼해서 가정도 일구고 자녀도 교육했다. 7년 전부터 성동구청 일자리지원센터,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인천 연수구 자활센터 등에서 저소득층 취약계층, 장애인들에게 자립과 창업을 위한 기술 나눔을 실천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디자인, 구두제작, 수선 등 필요한 기술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서울시의 '2018 지역사회공헌 인증점포'로 선정된 해원다이얼
서울시의 '2018 지역사회공헌 인증점포'로 선정된 해원다이얼 ⓒ윤혜숙

최근에 서울 영등포구 소셜캠퍼스 온 서울2센터에서 김 대표가 강의를 맡아 진행해오던 ‘착한신발 구두관리원 양성교육’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착한신발 구두관리원 양성교육’은 인천 연수구 소재 자활센터에서 장애인과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자립과 창업을 돕기 위해 기획한 사회적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김 대표는 7년간 지역사회에 나눔을 베푼 선행을 인정받아서 서울시의 ‘2018 지역사회공헌 인증점포’로 선정되어 표창장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산업화하던 시기만 해도 산업화의 근간에 소상공인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소상공인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조업이 없고 서비스업만 있는 사회는 산업 기반이 약해서 언제든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소상공인을 육성하고 우대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 현재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누구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이다. 김 대표가 체감하는 지금의 경기는 흡사 제 2의 IMF를 맞이한 것처럼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남흥 대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남흥 대표 ⓒ윤혜숙

김남흥 대표는 수제 볼링화 브랜드 ‘험비스포츠’를 제작, 판매하고 수선도 곁들여서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볼링장 같은 스포츠센터에 가지 않고 있다. 그러니 볼링화의 주문도 줄어들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매출 수준이 전년 대비 30% 정도라 같이 일하던 직원도 내보내야 했다. 동종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직원을 쓰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지금은 김 대표와 부인이 수제 볼링화 제작 및 수선에 매달리고 있다. 수제화라서 선주문 후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에 연속되는 불경기로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의식해 누구나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저가 볼링화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수많은 수제구두 종류 중에서 왜 볼링화를 제작하는지 궁금했다. 수제 볼링화를 제작하기 전에 김 대표는 한동안 구두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유독 볼링화 수선 문의가 많았다. 볼링화를 수선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볼링화는 거의 외국산으로 특히 중국산이 95%에 이르고 있었다. 품질은 낮은데 독점 방식이어서 단가가 높은 편이다.

김남흥 대표가 제작한 수제 볼링화
김남흥 대표가 제작한 수제 볼링화 ⓒ윤혜숙

그는 국내산 수제 볼링화를 제작해서 시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8년 12월부터 볼링화 제작을 계획했다. 수제 볼링화 제작에 필요한 공정을 갖추기 위해 모든 시설과 장비를 준비했다. 처음 수제 볼링화를 제작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느라 2019년 상반기를 보내야 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볼링화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의 급증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곳곳에 볼링장이 많았다. 볼링장은 건물 입구에 사람 키보다 큰 볼링핀이 있어서 금방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볼링장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던 중 2013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 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볼링, 배드민턴, 탁구 등의 스포츠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동안 주춤하다시피 했던 볼링 인구도 늘어났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동네 스포츠가 멈췄다. 사람들이 볼링을 즐기지 않으니 볼링화나 볼링용품의 수요가 감소했다.

볼링화의 좌우 바닥이 다르다. 자세 때문에 한쪽은 주름진 트렉션솔로 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쪽은 슬라이딩 패드로 되어있다.
볼링화의 좌우 바닥이 다르다. 자세 때문에 한쪽은 주름진 트렉션솔로 되어 있는 반면에 다른 쪽은 슬라이딩 패드로 되어있다. ⓒ윤혜숙

김 대표는 작년에 대출받은 소상공인 자금으로 지금까지 연명해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던 2월 말부터 6월까지는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간이다. 주변에 폐업하는 점포도 늘어났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서울시에서 코로나19의 충격파로 위기 상황에 직면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140만 원의 생존자금이 지원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 매출 2억 원 이하의 서울 소재 사업장만 6월 말까지 신청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성수동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으로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안내문을 보았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김 대표 또래의 자영업자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게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선입견에 불과했다. 누구든 인터넷에 접속해서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신청할 수 있을 만큼 신청 절차와 방법이 간단했다. 김 대표의 말을 빌리면 “몇 번 클릭하니까 신청이 완료되었다”고 했다.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홍보 포스터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홍보 포스터 ⓒ서울시

김 대표는 7월 중에 70만 원을 받았고, 또 8월 중에 70만 원을 받을 예정이다. 한창 매출이 높았을 때는 70만 원이 큰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70만 원은 큰돈이다. 수입이 없다시피 해서 결제를 미루고 있었던 지급 건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나머지 돈을 월세에 보태었다. 그에게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은 구세주인 셈이다.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재료비, 임대료, 관리비 등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고정비 중에서 임대료를 줄이면 조금 수월하리란 생각에 건물주에게 말해서 점포를 내놓은 상태다. 지금 부부만 근무하는 작업장의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인다면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점포를 둘러보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김 대표는 구두 자격증 즉 신발류 제조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터줏대감으로 이곳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구두 장인으로서 오로지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자신과 같은 소상공인이 신상품을 출시하면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스포츠 잡지에 지면 광고를 내면 홍보가 많이 되긴 하는데 광고비가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다.

볼링화를 수선하는 김남흥 대표
볼링화를 수선하는 김남흥 대표 ⓒ윤혜숙

김 대표는 “서울시나 구에서 소상공인의 상품을 홍보하는 광고 제작을 지원해준다면 좋겠다”며 “또한 서울시나 구의 소상공인 지원책이 많은데 정작 소상공인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빠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두 가지 요청사항을 보완해준다면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소상공인이 느끼고 있을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실감했다. 38년 경력의 구두 장인도 이런데 하물며 경력이 짧은 소상공인은 오죽하겠는가!

볼링화를 주문하는 손님의 발 치수를 재고 있는 김남흥 대표
볼링화를 주문하는 손님의 발 치수를 재고 있는 김남흥 대표 ⓒ윤혜숙

인터뷰 중 볼링화를 주문하려는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이 매장에 전시된 볼링화 중에서 디자인을 선택하니 김 대표가 발의 치수를 잰다. 볼링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평균 12일이 걸린다. 그런데 손님이 급하다고 하니 8일 만에 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야근하면서 납기를 맞춰야 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오늘 한 건의 주문이 들어와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처럼 더 많은 주문이 들어와서 김 대표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