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극복, 그가 말하는 기적이란?

시민기자 채경민

Visit736 Date2013.11.12 00:00

[서울톡톡]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고 저소득층 아동과 이웃을 도우며 20여 년간 봉사의 삶을 살아온 하태림 씨(47·이레지역아동센터장, 목사)가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수상했다. 절망의 나날을 보냈던 그가 ‘희망 전도사’로 새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운영하는 이레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3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하태림 씨


하 씨에게 불행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1988년, 친구들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진지 이틀 만에 눈을 떴다. 의식은 찾았지만 정작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척추 뼈가 으스러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건강했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눈물로 밤을 지새웠는데 정작 눈물을 내 손으로 닦을 수조차 없었어요. 육체적 통증까지 계속되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마음까지 들더군요.”


세상에 대한 원망은 커져갔고 마음의 문도 굳게 닫혔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우연히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봉사자들이 찾아와 노래와 기도를 해 주었던 것. 봉사자들은 한주도 빼놓지 않고 찾아와 노래를 해 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픈 몸과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더해지자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병상에 있던 저에게 그분들이 보여 준 관심과 위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퇴원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겠노라 마음먹었어요.”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진통제마저 끊고 필사적인 의지로 재활에 매달린 지 1년 여 만에 일부 신경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목발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진통제마저 끊고 필사적인 의지로 재활에 매달리니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퇴원 후 그는 고려대 부속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병상을 돌며 환자들에게 위로의 말과 정성어린 선물을 건넸다. 몸도 성치 않은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에 많은 환자들이 공감했다. 병원에서 봉사를 한 17년 동안 그가 상담한 환자만도 1000여 명이 넘는다. 환자들에게 더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고 싶어 봉사를 마친 후에는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상담학을 공부했다.


“섣불리 제 경험담을 늘어놓지 않고 저를 찾아온 환자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어요. 나중에는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아도 환자 스스로 해결책을 얻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고민을 하나라도 더 들어주고, 기념일을 챙겨주는 등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면 변화되는 분들이 많아요.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거죠.”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1991년 ‘사랑의 중창단’을 결성해 공연을 펼치며 모금 활동에도 앞장섰다. 소외된 이웃들의 병원비를 지원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살폈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지난 2010년 ‘이레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척 추운 날이었어요.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놀이터에 앉아 추위에 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어요.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어린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거죠.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풀이 죽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더군요.”


이례지역아동센터 공연 모습


현재 이레지역아동센터에서 돌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33명. 방과 후 학습과 취미 생활, 병원 진료 등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 최근에는 연세대학교, 하나고등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학습 도우미를 맡아주면서 아이들의 성적도 부쩍 늘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각기 다른 교실에서 학습과 밴드 활동 등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아이들이 하 씨에게 찾아와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모습에서 부모 자식 간의 정겨움마저 느껴졌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공부도 하고, 악기도 다루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는 거죠. 아이들이 부쩍 자라서 찾아오면 엄청난 보람을 느껴요. 아동센터를 열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이런 일 하기 참 잘했다 싶어요.”


그는 1년에 2번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다음 달 공연 준비로 그의 전화벨이 여러 차례 울렸다.


이레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하태림 씨, 다음 달 아이들 공연 준비로 그의 전화벨이 여러 차례 울렸다


“공연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줌과 동시에 봉사의 중요성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있어요. 노인정, 복지관 등을 찾아가 음악을 선물하면서 내가 받은 사랑을 남에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인터뷰 말미 하 씨에게 서울시 봉사상 수상 축하 인사를 다시 한 번 건넸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큰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병상에서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었을 뿐이니까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줄 알았던 저에게 이런 기적이 찾아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