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백범 광장에 세워진 백범 김구 동상

남산 ‘역사문화길’ 산책…민족의 얼을 찾아서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대한매일신보, 1910년 3월 25일 자) 죽음을 초월한 의연함으로 마지막까지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하기 전 조국의 동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호소 ‘동포에게 고함’이다. 감동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동상 ⓒ이봉덕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지금 독립 국가로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며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밤낮으로 노력한 애국자들 덕택이다. 6월의 마지막 주말, 남산 역사문화길을 걸으며 애국 지사의 얼을 찾아가는 호국 보훈 역사 탐방에 나섰다.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 일대는 안중근 의사 동상 및 기념관, 백범 광장 및 백범 김구 동상, 이시영 선생상, 김유신 장군상, 다산 정약용상, 퇴계 이황상 등이 모여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 10여분 걸으니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로 이어지는 백범광장이 나왔다.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이봉덕 안중근 의사는 일제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 혼이 살아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 영웅이다.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던 중 1910년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념의 예를 갖추었다. 민족 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에 1970년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했으나 철거되고, 2010년 새 기념관을 개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많이 아쉬웠다. 안중근기념관 앞 광장에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생전에 남긴...
충숙공 묘역

6월에 걷기 좋은 길! 노원 ‘충숙근린공원’

노원구 하계동 서울시립과학관 바로 옆에 1988년 4월 2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문신 충숙공 이상길 묘역이 있다. 묘역과 그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충숙근린공원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충숙공의 충절도 느끼고 숲속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하계동 주민들에게 보배 같은 공간이다. 충숙근린공원 표지석 ⓒ최병용 충숙근린공원이라는 이름만 듣고는 동네에 작은 공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묘역 안내도를 보니 왼편에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중앙에 묘역, 우측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충숙공 이상길이 생전에 거처했던 동천재는 조선시대 사대부 기와집의 전형으로 보인다. 기와의 수려한 곡선과 오랜세월을 버텨온 나무 기둥, 흑과 백이 잘 조화를 이룬 건물로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동천재 앞의 솟을대문은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권위의 상징이다. 대문이 집안 건물과 수직으로 놓여 있어 적당히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역할도 한다. 반면에 주변의 담장을 낮게 만들어 마을과 소통의 공간으로 열려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천재 ⓒ최병용 동천재의 솟을대문 ⓒ최병용 충숙공 묘역은 홍살문, 신도비, 묘역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릉에서 보던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홍살문이 사대부 묘소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사대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상길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상길 선생은 선조 18년(158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인조 때에는 공조판서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명을 받아 영위사가 되어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몰려오자 아들에게 뒷일을 부탁한 뒤 자결로 생을 마쳤다. 이러한 그의 충절을 기려 ‘충숙공(忠肅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는 사각의 받침돌 위로 비몸을 ...
국립서울현충원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현충원 ‘사이버참배’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는 변곡점을 맞는가 싶었는데, 지역사회 감염 확산으로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6월 5일 잠실 롯데월드를 방문한 고교생이 7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를 통보받은 롯데월드는 즉시 전 방문객을 퇴장시킨 후 영업종료 조치를 내렸고, 해당 고교생이 다니는 학교 역시 8일~10일 전 학년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하는 등 긴급조치를 취했다. 이전 이태원 클럽, 부천 물류센터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아직 방역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와 외출을 자제하고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등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이 요구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6월14일까지 일반인 방문이 제한된다. ⓒ조시승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원에 안장된 가족을 방문하기도 어려운 시기임에 따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사이버 참배'를, 국립대전현충원은 ‘안장자 묘소 사진 받아보기’ 서비스 등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유족들이 유공자가 영면해 계신 현장으로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 온라인 상으로라도 나라가 정성껏 살펴드리는 마음의 가교라고 할 수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사이버 참배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 국립서울현충원) ‘사이버 참배’란 말 그대로 멀리 있거나 사정이 있어 방문하지 못하는 유가족 및 일반인을 위해 온라인으로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있는 안장자 및 추모장소에 참배하고 추모글도 남겨 보존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안장자 묘소사진 받아보기' 설명문과 예시사진으로 이해를 돕고 있다. (출처: 국립대전현충원) 사이버 참배를 하려면 서울 또는 대전의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안장자 찾기 메뉴에 접속한다. 이곳에서 안장자의 성명과 신분, 계급을 입력하면 사망일자와 안장일자 그리고 사망장소와 안장장소 (묘역, 표판, 묘비)가 나온다. 사이버 추모관에 들어가면 추모하고 싶은 글을 안장자에게 남길 수 있다. 하늘로 가는 편지는 공개, 비공개를 선택할...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꽃시계, 현충문 모습(뒤편)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을 아시나요?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으로 도는 이들 돌보아 드린 이 하나 없고 기억마저 사라져 가므로 존함이나마 정성껏 새겨 따로 이곳에 모시옵나니 선열들이여 국민 모두가 후손이외다 우리들 제사 받으옵소서”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새겨진 헌시비의 일부 내용이다.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무후선열제단 모습 ⓒ최용수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서 대형 태극기 조형물을 만난다. 독립유공자묘역을 알려주는 무언의 태극기이다. 서울현충원에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국군장병은 물론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순국선열들이 함께 계신다. 모두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들이다. 대형태극기 조형물이 있는 곳이 독립유공자 묘역이다. ⓒ최용수 서울현충원은 해발 174.8m 공작봉을 중심으로 활짝 날개를 펼친 공작새가 한강을 내려다보며 품고 있는 형상으로 풍수지리적 명당 중의 명당이다. 약 44만평(144만㎡)의 대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8만 1,000여 분이 영면하고 계신다. 국립서울현충원 묘역 전경 ⓒ최용수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된 후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된다. 이후 2006년 1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원수묘소, 임시정부요인묘역, 독립유공자묘역, 무후선열제단,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외국인묘소 9개 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산책길에는 영령들을 추모하는 유가족들의 글이 찡하게 느껴온다. ⓒ최용수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유가족, 시민,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현충원의 호국영령들을 찾는다. 그러나 시민들이 거의 찾지 않은 외로운 순국선열들을 찾아가 보았다. 바로 무후선열제단(無後先烈祭壇)이다. 무후선열제단은 독립유공자묘역 충열대 뒤편에 자리했다. 의무후선열제단의 내부 모습, 가운데 제단이 있고 130명의 위패가 3계단에 모셔져 있다. ⓒ최용수 무후(無後)는 후손이 없다는 뜻이다. 구한말 때의 의병활동과 일...
현충문

해설 들으며 현충원 탐방하니 또 새롭네~

현충원 탐방에 참가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쉼터에 모였다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http://www.snmb.mil.kr)를 통해 '해설과 함께하는 현충원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 현충원 탐방의 이유는 나라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의 묘역을 순례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현충문을 앞을 지나고 있다6월의 현충원은 신록을 머금은 듯 그 푸르름에 눈이 부셨다. 오후 2시, 종합민원실 옆 쉼터(빨간 우체통 앞)에서 집결한 참가자들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나라사랑의 마음에는 세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제일먼저 우리가 찾은 곳은 ‘현충탑’이었다. 현충문을 지나자 현충탑이 나왔다. 집례담당 직원의 안내로 흐트러졌던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며, 현충탑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었다. 좀 전까지도 떠들었던 아이들은 어느새 경건한 마음이 되어있었다. 꽃을 준비한 아이들은 헌화대 위에 국화꽃을 올려놓은 뒤 경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탐방객 중 남녀 대표 각각 한명이 재단 앞 향로에 세 차례 향을 넣고 분향을 하였다. 세 번을 분향 하는 의미는 천지인(天地人)사상에 의한 것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묵념을 하였다그중 첫째가 사람에 대한 감사인데, 17만 명의 안장자와 유공자에 대한 감사이다. 두 번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선조 분들께 하는 감사이다. 마지막은 하늘과 땅 사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감사이다. 우리 모두가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감에 감사하는 것이다. 분향 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들께 경례를 하고, 고개를 가볍게 숙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묵념을 하였다.참배를 마친 후 탑 내부에 위치한 ‘위패봉안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위배봉안관은 6․ 25전쟁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4천여 호국용사들의 위패와, 유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