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1층, 세계에 3·1운동을 알린 프랭크 스코필드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신새봄

시청에서 만난 푸른 눈의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서울시청 1층, 세계에 3·1운동을 알린 프랭크 스코필드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위 군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를 잡아야 했다. 나는 어느 일본인 가게 2층에 올라가 신을 벗을 사이도 없이 베란다로 나가 급히 셔터를 눌렀다.” “그 날 오후 2시 10분 파고다공원에 모였던 수백 명의 학생이 10여 년간 억눌려 온 감정을 터뜨려 ‘만세, 독립만세’를 외치자, 뇌성벽력 같은 소리에 공원 근처에 살던 시민들도 매우 놀랐다. 공원 문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종로거리를 달리며 몸에 숨겼던 선언서를 뿌리며 거리를 누볐다.” 서울시청 신청사 1층에 마련된 전시회에서 글귀들을 읽으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1919년 3월 1일 거사일에 사진기를 들고 탑골공원과 종로 일대의 시위 장면을 촬영했으며, 언론을 통해 일본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국내외에 광범위하게 알린 그는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다. 98년이 지난 오늘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서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인다. 3.1운동 때와 비슷하게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외롭지도 않았을 뿐더러 한 마음 한 뜻으로 광화문을 지킨다는 마음이 든다. 98년 전 스코필드 박사의 눈으로 바라본 3.1운동도 외국인의 눈이었지만 똑같이 뜨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남녀노소 모인 국민들은 태극기 하나만을 손에 든 채, 일제의 총알에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스코필드는 제암리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언론을 통해 세계에 폭로했다.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이처럼 잔인한 심판이 그들에게 닥친 것일까? 그들이 왜 갑자기 과부와 고아가 되어야 하는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제암리 학살 현장을 본 스코필드 박사의 말이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제암리를 비롯한 화성 일대를 방화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 박사는 곧장 제...
1912년 지어진 고풍스런 분위기의 승동교회ⓒ김종성

3.1운동의 흔적을 찾아…승동교회를 아시나요?

1912년 지어진 고풍스런 분위기의 승동교회 종로 탑골공원을 지나 인사동 거리로 접어드는 초입에 100년이 넘은 오래된 예배당 승동교회가 있다.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인사동에서 이정표를 따라 교회 입구 골목으로 들어서면, 신기하게도 주위가 고요해진다. 교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담벼락 게시판을 지나, 붉은 벽돌의 고풍스럽고 아담한 교회가 보인다. 인사동 거리 초입, 승동교회 가는 골목 1912년 지어진 승동교회는 일제의 창지개명 당시 개명된 ‘인사동’이 생기기 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이 교회의 오랜 역사는 ‘승동’이라는 이름으로도 알 수 있다. 승동교회가 생겨난 자리는 종로 한복판 ‘절골’(寺洞, 지금의 인사동 137번지)이라는 동네였다. 절골 또는 사동(寺洞)이란 동네 이름은 고찰 원각사 때문에 붙여진 것인데, 승려가 많다 해서 ‘승동’(僧洞)이라고도 했다. 이후 교회의 이름은 현재의 ‘勝(이길 승)洞’으로 바뀌었다. 이채로운 종탑과 아치형 창문이 정겨운 승동교회 풍경 로마네스크풍이라고 하는 반원형 아치 모양의 큰 창문이 붙어있는 붉은 벽돌이 눈에 띈다. 교회 마당엔 보기 드문 종탑과 함께 앉아 가기 좋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마련돼 있어, 종탑을 바라보며 종소리를 상상하며 쉬어가기 좋았다. 교회 입구에 관리실이 있지만 누구나 오갈 수 있도록 정문은 물론 후문도 열려 있다. 교회의 몸체를 두른 붉은 벽돌은 군데군데 색깔이 다르다. 한양도성 성곽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개보수를 한 흔적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인 승동교회는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1993년 ‘3·1운동 유적지’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교회 마당 한 편에는 3·1 독립운동 기념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919년 2월, 교회 1층 밀실에서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을 중심으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 명이 모여 3·1독립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모의했다. 2월 28일 밤엔 1,500장의 독립선언문을 경성 각처로 배포했다. 교회의 위치가 기미...
독립문ⓒ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올해는 특별하게! 3·1절 앞두고 꼭 가봐야 할 곳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죠. 올해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대한민국의 독립 의사를 전 세계에 알린 1919년 3·1 독립운동 제98주년입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내 손안에 서울에서 삼일절에 가볼 만한 곳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아로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  기억의 터 남산 옛 통감관저터에 열린 `기억의 터` 제막식 중 `세상의 배꼽`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인권이슈로 부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에 그 아픔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조차 없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8월 조성됐다.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기존의 통감관저터 표지석, 거꾸로 세운 동상과 함께 설치돼 있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해외 추가신고자 포함)의 성함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을 시기별(끌려가던 순간-위안소에서의 처절한 삶-해방 후 귀국, 귀향하던 때-반세기의 침묵을 깬 그 이후 인권활동가로서의 새로운 삶)로 새겼다. 또한 故김순덕할머니의 작품 ‘끌려감’이 함께 새겨져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배꼽’에는 윤석남 화가의 작품과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글귀가 한글·일본어·영어·중국어로 함께 새겨졌다. 세상의 배꼽 주변으로 놓이는 자연석들은 전국, 전 세계에서 마음을 모아온 할머니들과 국민들을 뜻한다. 기억의 터에 마련된 `대지의 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겼다.(좌) 둥근 언덕으로 둘러싸인 `세상의 배꼽`은 평화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