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탑골공원 정문에는 `삼일문`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최용수

3.1독립선언서 길 따라 ‘100년의 시간여행’

3.1운동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탑골공원 정문에는 `삼일문`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난 15일 오후 종로구 수송공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1919년 3·1운동 ‘선언서(宣言書)’가 어떻게 작성, 인쇄, 운반, 낭독되어 전국적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는지, 그 날 이동 경로를 답사하는 ‘선언서의 길’ 행사였다. 오는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서울시는 3.1운동 정신이 우리 삶과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하는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 행사를 기획했다. ‘선언서의 길’ 행사도 그 중 하나이다. 보성사 사장 이정일 동상 앞에서 답사단은 잠시 묵념 시간을 가졌다. 은죽(銀竹)처럼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시민위원 310’ 50여 명이 종로구 수송공원에 모였다. 100년 답사 첫 번째 길, 3·1 독립 ‘선언서의 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답사행사는 3·1운동 100주년 서울기념사업 총감독 서해성 교수 설명과 함께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보성사 터 ~ 태화관 옛터 ~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진행됐다. 첫 번째 장소는 조계사 후문 골목 건너편 수송공원에 있는 보성사 터이다. 공원 규모는 작았지만 3·1 독립운동 역사적 의미에서 보면 이렇게 넉넉한 공원도 드물다. 보성사(普成社)는 3·1운동 당시 를 인쇄했던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였다. 보성사 소유주 손병희(천도교 교주)의 특명으로 최남선이 초안을 쓰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선언서를 넘겨받은 보성사 이종일 사장은 1919년 2월 27일 밤 3만5,000매를 인쇄한다. 운반 중 일본 측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 책이라 위장하여 위기를 넘긴다. 또 3월 1일에는 지하신문인 1만 부도 발행한다. 이에 일경(日警)은 보성사를 폐쇄하고, 급기야 6월 28일 밤 불을 질러 태워버린다. 보성사 터에는 6.35m 높이 ‘3인의 군상과 민족정기’라...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3.1운동 100주년 6대 랜드마크는?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9일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는 삼일대로를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하기 위한 ‘삼일대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계획 및 향후 추진계획을 공유하고, 주민대표 33인이 참여하는 토론 및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시는 전문가 및 지역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3.1운동 100주년기념 대표가로 조성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6대 랜드마크로 ▲3.1운동 대표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항일 독립운동 테마 역사 ▲만인보의 방 ▲딜쿠샤 복원 ▲남산 예장자락 역사 탐방로를 조성한다. 특히 삼일대로는 3·1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3·1운동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6년에 명명된 도로이지만, 지역 주민과 상인들마저도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실정. 시는 삼일대로와 그 주변지역을 3·1운동 대표가로로 조성하여, 3·1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할 계획이다. 100주년기념 대표가로 조성사업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건립, 탑골공원 원형 회복, 천도교중앙 대교당 기념공간 조성 등이 포함돼 있다.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외신으로 최초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 AP통신사 임시 특파원(special correspondent)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의 가옥 딜쿠샤가 70년 만에 복원된다. ‘딜쿠샤(Dil 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란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1923년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아내와 함께 머문 집이다. 임시정부 기념관 조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지하1층~지상4층 규모로...
이화여고기념관에서 3.1운동 100주년 모임이 진행되었다. ⓒ김경민

3.1운동 100주년, 310인 시민위원 모이다

이화여고기념관에서 3.1운동 100주년 모임이 진행되었다. 지난 5월 20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정동에 위치한 이화여고기념관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시민위원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화여고는 역사적 장소인 이화학당 전신으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곳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 서울 소재 시민과 중학생 이상 학교 재학생,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총 310인의 시민위원을 모집하였다. 선발된 시민들은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각종 기념사업에 직접 참여한다. 이들은 의견 제시 및 사업 모니터링을 비롯해 신규 기념사업 아이디어 제안과 SNS를 활용한 기념사업의 홍보활동을 하게 된다. 최초의 독립운동 태극기의 모습 이번 모임은 서해성 감독(서울시 3·1운동 100주년 예술감독) 사회로 오프닝 공연과 ‘대한민국 100년의 탄생’을 주제로 미니 다큐가 상영되었다.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적 가치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서울시의 독립운동 기념시설 조성, 시민참여 행사 및 교육, 독립유공자 예우 강화 등 3개 분야 총 17개 추진 사업이 소개되었다. 이와 함께 310명 시민위원들의 세부 활동 계획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이날 소개된 3.1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시민위원 배지로 제작된다고 한다. 이날 참석한 시민위원들은 예비위원 자격으로 향후 진행될 3.1운동 관련 강연과 답사, 백범일지 낭독 모임과 토론캠프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식견을 쌓은 뒤 정식으로 위촉되어 시민위원 기록 및 기획 활동과 사업제안을 하게 된다. 한편 이번 모임에 앞서 서울시가 기념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위촉한 33인 기념사업운영위원회 위원 강연과 소개도 있었다. 먼저 공동 위원장인 이종찬 위원장은 “3.1운동은 당시 1,000만 조선인 중 2백만 명 이상 양반에서 기생까지 종교와 신분, 지역과 성별에 구분 없이 참여하여...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뤘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국내 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문연다

시민들이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다.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2.8독립선언문이 발표됐습니다. 이는 국내의 민족지도자·학생들에게 알려져 3·1운동을 일으키는 한 계기가 됐는데요. 8일 서울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 없이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3.1운동 100주년 맞이 서울시 기념사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현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국내 최초·유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하고, 일대 명소를 연결하여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내용인데요. 지금부터 소개해드립니다. ※ 파란색 글자를 클릭하시면 관련 정보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현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국내 최초·유일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세워진다.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인 오는 2019년 개관이 목표다. 서울시는 기념관을 중심으로 그 즈음 복원을 마치는 딜쿠샤를 비롯해 독립문, 구 서대문형무소 등 일대 명소를 연결하는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지하철 안국역은 프랑스 파리의 '기 모케(Guy Moquet)' 테마역처럼 독립운동 테마역사로 조성한다. 종로에서 북촌으로 이어지는 삼일대로는 3.1운동 대표가로로, 남산 예장자락은 일제의 남산 침탈 흔적을 알 수 있는 역사탐방로인 ‘남산국치(南山國恥)의 길’을 각각 조성한다. (☞ `남산 예장자락` 도시재생 본격 착공) 독립운동을 한 자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한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전액 면제 대상도 5대손까지(기존 2대손) 확대하고 후손이 없어 방치되어 있는 독립유공자 묘지를 발굴하여 지원한다. 아울러, 나라를 위해 헌신했지만 현재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매년 74억 원을 추가 투입해 생활보조수당을 신설하고 보훈단체에 대한 지원도 대폭 ...
일제강점기 딜쿠샤 전경(1930년대)

3.1운동 유적 ‘딜쿠샤’ 자료 서울에 오다

일제강점기 딜쿠샤 전경(1930년대) 서울역사박물관은 1919년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Abert W. Talyor)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Jennifer L. Taylor)로부터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올 2월 방한해 자료 57점을 기증한 데 이어 두 번째다. 딜쿠샤(Dilkusha, 종로구 사직로2길 17)는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또는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란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부터 1942년까지 약 20년간 종로구 행촌동에 살았을 때의 가옥 이름이다. 관련 기사 내용 보기 ☞ 클릭 딜쿠샤 내부 구조 사진 이번에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자료는 조부모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그녀의 부모 브루스 테일러(Burce Tickell Taylor)와 조이스 핍스 테일러(Joyce Phipps Talyor) 등의 유품 및 딜쿠샤 관련 자료들이다. ■ 제니퍼 테일러 기증자료 세부내역 구분 계 사진앨범 회화 도서 아카이브 의상 공예 기타 수량(건) 508 14 79 33 148 49 167 18 ① 딜쿠샤의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 주요 기증자료를 살펴보면, 먼저 메리 테일러가 1923년부터 딜쿠샤에 거주할 당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딜쿠샤 내부 사진앨범이 있다. 거실, 침실, 주방, 서재 등 당시 가옥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테일러 부부가 사용한 가구, 장신구 등 당시 생활의 모습이 사진 속에 드러나 있다. 이밖에도 가옥의 영역을 표시한 도면 및 강서방(Kang Subang), 남도(Namdoo) 등 딜쿠샤에서 집안일을 돕던 사람들의 행방이 기록된 서류, 딜쿠샤 임대에 관한 편지 등이 있어 향후 딜쿠샤를 복원하고 가옥의 연혁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옥의 전경, 장식품 등이 담...
딜쿠샤 옛 모습

3·1운동 알린 특파원 집 ‘딜쿠샤’ 70년 만에 복원

딜쿠샤 옛 모습 역사 도시 서울에는 오래된 것들 참으로 많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새것들 사이에서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풍경을 볼 때마다 잊고 살았던 감성들이 새록새록 피워 올라와 기분 좋은 설렘을 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스스로 다그쳐도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된 것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저마다의 기록으로 남기는 게 아닐까요? 이제 곧 97주년 3.1절이 다가오는데요, 잊어서는 안 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을 위해 이번에 서울시가 특별한 건물의 복원을 추진합니다. 바로 ‘딜쿠샤’라는 불리는 가옥입니다. 70년 만에 복원되는 ‘딜쿠샤’ 이야기, 오늘 내 손안에 서울을 통해 만나보시죠! 1919년 조선에 대한 일본의 무단통치 실상을 고발하고,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 AP통신사 임시 특파원(special correspondent) 앨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의 가옥 ‘딜쿠샤’가 70년 만에 복원됩니다. 서울시는 종로구 행촌동 사직터널 북쪽에 자리한 ‘딜쿠샤’를 원형 복원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시민에게 전면 개방한다고 밝혔습니다. ‘딜쿠샤(Dil 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란 뜻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1923년 지어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아내와 함께 머문 집입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대지 462㎡, 총면적 623.76㎡)에 영국과 미국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형태로, 일제 강점기 근대건축의 발달 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가옥입니다. 앨버트 테일러가 지은 딜쿠샤의 옛 모습, 딜쿠샤(Dil 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란 뜻이다. 딜쿠샤 현재 모습 서울시는 딜쿠샤 복원 및 보존을 위해 기획재정부(딜쿠샤의 현 관리청), 문화재청(등록문화재 등록권자, 문화재 등록 이후 관리총괄청 예...
중앙고등학교 전경

그냥 지나쳤다면, 이번 삼일절에는 꼭!

중앙고등학교 전경 (1) 3.1절에 가볼만 한 곳 ①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해 전국에서 독립을 갈망하는 외침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최대 규모의 비폭력 만세운동이 시작된 97년 전 서울. 그들의 처절하고도 간절했던 외침을 기억하기 위해 3.1 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았다. 3.1 운동을 처음으로 논의한 곳, 중앙고보 숙직실 “운이 좋은 날에 오신 거예요. 평소에는 개방을 잘 안하거든요” 안국역에서 북촌 방향으로 끝까지 올라가면 외양부터 예사롭지 않은 고등학교가 보인다. 중앙고등학교는 1908년 중앙고등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지나가던 문화해설가가 평일에는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했다. 중앙고등학교에 위치한 삼일기념관은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숙직실이었다. 1919년 1월 일본 유학생 송계백이 교사 현상윤과 교장 송진우를 방문해 유학생들의 독립 운동 계획을 알린 곳이다.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며 3.1 운동을 처음으로 논의한 곳이기도 하다. 중앙고등학교(좌), 중앙보통고등학교 숙직실(현 삼일기념관)(우) 3.1 운동을 위해 종교들이 뭉친 곳, 유심사 중앙고등학교에서 안국역 방향으로 내려가면 왼편에 ‘유심사’가 있다. 한옥들 사이에 있어 휴대폰과 지도를 갖고서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담벼락에 작은 기념 현판이 걸려 있어 구석구석 살펴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한 지 3년이 다 되어간다는 마을 주민도 이곳이 삼일운동과 관련된 장소인 줄 몰랐다고 한다. 1919년 2월 28일 늦은 밤, 만해 한용운이 그의 학생들을 이곳으로 급히 불러 모아 독립선언서 작성 배경과 3.1 운동의 의미를 설명한 뒤 선언서 배포를 부탁했다. 불교 잡지 ‘유심’을 발행하던 출판사였던 ‘유심사’는 당시 불교계 독립 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다. 3.1 만세운동을 위해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합작 교섭을 마무리한 최린이 한용운을 방문해 불교계의 참여를 허락...
유관순 열사의 유언과 사진

열여덟 소녀가 감옥에서 남긴 마지막 말

※ 3.1절 특집기사 연재 시리즈 ①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2015.2.25.) ② 3.1절, 한용운 말고 백초월 스님도 있습니다 (2015.2.26.) ③ 3월에는 '3.1절 역사나들이' 어떠세요? (2015.2.27.) (4) 3.1절, 우리가 다시 유관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광복의 기쁨을 맞기 위해 우리 민족은 수많은 고난에도 끊임없이 독립을 위한 운동을 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독립 만세 운동, 즉 3.1절은 대표적 사례입니다.광복 70주년인 올해 3월 1일은 제96주년 3.1절이기도 합니다.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일제의 총부리 앞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던 그 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자리에 모여 함께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요? 이메일도 문자도 보낼 수 없었고, 심지어 전화조차도 귀한 상황에서 3.1운동은 날짜, 장소, 시간 그리고 구체적인 퍼포먼스까지 은밀히 공유되어 수개월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일제의 위협과 해산명령을 피하면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또 대규모로 벌어졌던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플래시몹'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전국방방곡곡 울려 퍼지던 그 날의 함성 안에는 꽃다운 10대 소녀도 서 있었습니다. 3.1 운동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 분, 유관순 열사입니다. 일제의 고문에 한 송이의 짓밟힌 꽃처럼 아스러져 간, 유관순 열사의 넋이 올해 3.1절을 맞아 시청을 찾아왔습니다. 서울시는 3.1절을 맞아 서울도서관 외벽에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유언을 담은 대형 통천을 설치합니다. 통천에 담긴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3.1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얼굴이 부어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당시 심한 구타와 고문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 입을 다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