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지정된 안국역에서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의 만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안국역, 3·1운동테마역으로 재탄생!

삼일절,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지정된 안국역에서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이 만세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우리는 한국 광복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가수 안치환의 노랫소리가 안국역에 우렁차게 퍼졌다. 깃발을 들고 독립운동가 가면을 쓴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힘차게 따라 불렀다. 지난 3월 1일, 3호선 안국역 지하4층 승강장에서는 3⋅1 운동 99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3·1운동 100주년 D-365일을 기념하고 ‘독립운동테마역-안국역’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이다.서울시는 일 년 앞으로 다가온 3·1운동 100주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는 안국역을 비롯해 종로구 삼일대로를 시민공간으로 조성하며,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를 복원하는 등 여러 계획을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올해 중 안국역 지하 2~3층 공간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등을 주제로 한 전시공간과 휴게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정확히 99년 전에 일어났던 3·1운동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다. 또한 왕조의 마지막에 대한 거대한 추모이자 만인의 함성을 통해 대한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알린 날이다. 나아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연결되었다. 3·1운동 과정을 통해 우리 민족사 100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이러한 3·1운동의 참된 가치를 일상의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자 서울시는 안국역 곳곳에 3·1운동을 담아내어 전국 950개 지하철역 가운데 유일한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재탄생시켰다. 안국역 지하4층 승강장 8개 백색기둥에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새겼다.안국역을 독립운동테마역으로 선정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3·1운동의 중심지였던 북촌과 인사동 등을 잇는 연결 거점으로서 손병희, 여운형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집터가 인근에 있고, 각종 교육기관과 인사동 등 관광명소도 밀집돼 있다.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어록을 지하 4층 승강장 구간 스크린도...
3·1독립운동기념탑 주변 조형물

장충동에서 기억하는 1919

3·1독립운동기념탑 주변 조형물 장충동 남산공원 산책을 하고서 국립극장을 지나서 가는 길에 ‘3·1독립운동기념탑’을 마주했다. 삼일절 99주년인 올해, 100주년 앞두고 있어서인지 국난에서 벗어나고자 온 국민이 나섰던 그날의 함성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발길을 멈췄다. 높이 19m 19cm(3·1운동이 일어났던 해인 1919년을 의미)의 3·1독립운동기념탑은 기단 오석판에 3·1독립선언서가 새겨 있다. 독립선언서에는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우리 민족이 이루고 나아가려는 바를 담고 있다. 좌·우측으로 한글과 영문 뒷면에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건립개요, 헌시가 있다. 3개의 기둥 축은 천·지·인과 천도교·기독교·불교 연합의 상징으로 마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하며, 삼태극(우주)을 원구로 구성하였다. 3·1운동이 조국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세계 최초의 종교연합운동으로서 비폭력 평화운동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원구 위에는 동서남북 4방위를 조형화한 민족웅비의 상을 올려놓았다. 정부수립 제50주년 기념일인 1998년 8월 15일에 착공한 3·1독립운동기념탑은, 3·1운동 80주년 기념일인 1999년 3월 1일에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탑 주변을 둘러보며 독립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보았다. 벽면에 새겨진 조각 속 장면에 그만 시선을 빼앗겼다. 일본 순사가 총검을 겨누고 있는데 사람들의 눈빛에 두려움 같은 건 찾아 볼 수가 없다. 굳건한 표정으로 목이 쉬어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또 외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귓전에 전해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대한독립만세!”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한마디였을까, 삼일절 99주년인 해에 목이 쉬도록 불러도 아깝지 않을 말이 아닐까...
지난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린 만세우동 재현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행사 모습

3·1 올레길 따라 외치는 그 날의 함성

지난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린 만세우동 재현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행사 모습함께 서울 착한 경제 (94) 99주년 삼일절 3·1 올레길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 외신 오보가 이어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1901년부터 1945년까지 강점했지만, 모든 한국인은 일본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할 것"이라는 NBC방송 평창올림픽 개막식 망언에 이어,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춘'이 이를 두둔하는 칼럼을 실어 국민적 공분을 샀다. 뿐만 아니라 영국 더 타임스는 한반도기의 제주도를 가리켜 '일본 섬인데 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고 소개해 빈축을 샀다.​문제는 이러한 외신들의 오보 사태가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해온 역사 왜곡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한반도기의 독도 표시를 문제 삼고 있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연상된다. 이는 그동안 주도면밀하게 진행해온 일본의 역사 왜곡과 외교적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통하고 있단 얘기 아닐까?3·1 운동 99주년을 맞아 '3·1 올레길 - 독립선언서의 길·만세운동길'을 걸으며,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일제 강점기 선조들 독립에 대한 염원을 되새기며, 일제 만행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서울에는 일제 강점기 국권 침탈, 식민통치의 흔적과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3·1운동 관련 유적지일 것이다. 3·1운동을 모의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배포하고 만세 운동의 시작을 연 곳, '3·1 올레길 - 독립선언서의 길·만세운동길'을 찾아가 보았다.① 의암 손병희 집터◈ 의암 손병희 집터-지도에서 보기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 가회동 길을 오르다 보면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의암 손병희 집터'가 나온다. 가회동주민센터 옆 북촌박물관 건물 앞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그 날의 함성, 잊지 않겠습니다! 삼일절 꼭 가야 하는 서울 바로 그곳

[카드뉴스] 삼일절 꼭 가야하는 서울 그곳

#1 그 날의 함성, 잊지 않겠습니다! 삼일절 꼭 가야 하는 서울 바로 그곳 #2 1919년 3월 1일 저항의 중심지였던 서울 곳곳을 돌아볼까요? 1.탑골공원 2.승동교회 3.천도교 중앙대교당 4.봉황각 5.서대문형무소 역사관 #3 3.1운동의 발상지, 탑골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이 지금도 그대로 있다. #4 학생 독립운동의 거점, 승동교회 3.1운동의 주축이 됐던 학생들이 인사동 승동교회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5 민족운동의 산실, 천도교중앙대교당 교인들이 대교당 건축비로 모금한 성금의 일부가 3.1운동 자금으로 쓰였던 격동의 역사를 간직한 곳 #6 수많은 독립투사를 양성한, 봉황각 천도교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손병희 선생이 설립한 교육시설로 민족대표 33인 중 다수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7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들이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고통받았던 감옥으로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여옥사도 이곳에 있다. #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이번 삼일절,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뜻깊은 시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던 서울의 그날을 기억해주세요 ...
`만인의 방`에 재현해 놓은 고은 시인의 책상 ⓒ최은주

고은시인 ‘만인보’ 집필서재 직접 가보니…

`만인의 방`에 재현해 놓은 고은 시인의 책상 ◈ 만인의 방-지도에서 보기 ◈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신사들이 서울도서관으로 모여들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문학, 예술계 원로들이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이다. 고은 시인의 역작 만인보와 관련된 전시공간인 ‘만인의 방’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오는 길이었다.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5,600명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 삶을 노래한 연작시로 집필 기간이 무려 25년에 이르는 대작이다. 만인의 방에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곳은 만인보를 쓸 당시의 방을 실감 나게 재현해 놓은 서재였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집필했던 안성 서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이곳엔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있었다. 가운데엔 시인이 직접 사용한 앉은뱅이 책상과 책들, 원고 집필을 위해 모아놓은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책상 위 어지럽게 펼쳐진 책과 원고들 사이에 고은 시인이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만인보를 쓰던 때 시인의 열정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만인보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 만인보의 산실을 구경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고은 시인이 `걸인독립단`을 낭송하는 모습 '만인의 방' 이름은 시인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만인보가 만인의 삶과 일, 눈물과 노래에서 나왔듯이 '만인의 방'은 시민들의 삶과 일이 담긴 만인보를 써내려갈 장소라는 의미다. ‘만인의 방’ 앞에 놓여있는 책상은 우리가 써 내려갈 만인보를 떠올리기에 좋다. 한쪽 벽면엔 3·1운동 및 항일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육필원고 원본 자료가 전시된 개관 기획전 ‘민(民)의 탄생’이 마련됐다. 한용운, 이육사, 김구 등 3·1운동과 항일 독립운동가를 그린 시 뿐 아니라 만세운동을 벌인 걸인과 기생의 이야기도 있었다. 개관식에 참여한 고은 시인은 거지들도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며, 쩌렁쩌렁 청년의 목소리로 ‘걸인독립단’ 시를 낭송했다. 시 속에 담긴 결기가 ...
백범일지 낭독회 행사를 진행하는 시민위원과 스님의 모습 ⓒ이재찬

봉원사 ‘백범일지 낭독회’에 가다

백범일지 낭독회 행사를 진행하는 시민위원과 스님의 모습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지난 11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많은 시민위원과 사참 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백범일지 초판 발행일 기념과 백범일지 낭독회 행사를 가졌다. 이날 강연을 맡았던 한시준 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이야말로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지도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의 한‧중‧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 중에서 중국은 공자, 진시황, 손문, 장개석, 모택동을,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이토 히로부미를, 한국은 세종대왕, 이황, 이이, 신사임당, 이순신 등을 거명하였다. 그런데 ‘세계에 알려진 한국인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알려야 할 시대적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이를 위해, 전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응당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평등·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세계인이 공감할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한(痛恨)의 독립운동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세계적 인물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을 찾는다면 누구인가? 국내외적으로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인물은 백범 김구 선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대만을 비롯해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과 대만에는 한국독립운동의 상징처럼 주목받고 있다. 중국 국민당과의 한‧중 대일 공동항전의 지도자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기념관이 없지만, 중국 상해, 항조우, 충칭 등 9곳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임시정부를 이해하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 정부나 중국인들은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를 대한민국의 탄생지로 여기고 있고 한국에서도 그렇게 여기는 줄로 알고 있다고 한다. 임시정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김구 선생을 이해하는 차원도 다르다. 중국에...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가는 황제의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답사단 ⓒ최용수

정동에서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환구단에서 황궁우로 가는 황제의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답사단‘대한제국(大韓帝國)’, 반만년 역사 중에 유일하게 황제를 모시며 살았던 우리의 나라 이름이다.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환구단(圜丘壇)에서 천제를 올리는 의례로 황제에 즉위했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니시-로젠 협정’의 체결로 한반도에서 국제세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자 자주독립국을 선포한 것이다. 이후 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까지 대한제국의 13년, 그 이야기를 정동길에서 되짚어봤다.지난 21일 오후 3시, ‘310인 시민위원회’ 위원 60여 명이 ‘환구단’에 모였다.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사업’의 마지막 답사 코스로 선정된 ‘대한제국의 길’을 걷기 위해서이다. 국권 회복과 국민국가를 태동시킨 제국의 역사를 상기하고 재조명하기 위한 답사였다. 안내와 그날의 이야기는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총감독(서해성)이 스토리텔링 해 주었다.답사의 시작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근대국가로의 꿈과 희망이 담겼던 ‘덕수궁’, 매국적인 협정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 ‘중명전’, 대한제국 중립외교의 거점이었던 ‘손탁호텔(Sontag Hotel)’ 그리고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장소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지는 총 2.6km 구간으로 구성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120년이 흐른 오늘날 옛 역사의 흔적에서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더듬어보았다. 팔각형 황궁우를 둘러보는 답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환구단((圜丘壇, 사적 제157호)은 역대 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祭天壇)이었다. 고려 성종 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화했으나, 고려 말 배원친명(排元親明) 정책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조선 세조 때 몇 차례 거행된 바 있으나 본격적인 제사는 1897년 환구단을 건립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민지배...
잊어선 안 될 역사 `국치의 길`, 미리 가보다

잊어선 안 될 역사 ‘국치의 길’, 미리 가보다

일제침략기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 경술국치의 현장 ‘국치일(國恥日, 나라가 수치를 당한 날)’,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날인 1910년 8월 29일을 말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법,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국치의 길’을 조성 중이다. 서울의 대표 명소 남산. 이곳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암울한 역사를 올올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1910년 한일병탄조약 이후 사실상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 의해 피탈되면서, 일제는 조선의 얼굴이자 수도 한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산에 가장 격이 높은 조선 신궁을 세운다. 그 후 메이지 왕을 제신으로 숭배하게 했으며, 조선 통치 중추인 통감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남산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서고 1995년 이전하기까지 100여 년간 시민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그 치욕스러운 역사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현재 조성 중인 국치의 길을 둘러보고 있는 시민위원 310 남산 ‘국치의 길’은 바로 이러한 역사 현장을 직접 걸으며 치욕의 순간을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자는 의미로 일제강점기 역사현장을 조성 중이다. ‘한국통감관저 터’에서부터 ‘조선신궁’까지 총 1.7km의 역사탐방로는 2018년 8월 완성될 예정이다. 지난 9월 23일,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과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310인 시민위원회’ 단장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위원 310’ 50여 명이 조선통감관저 터에 모였다. 서울시의 ‘3.1운동100 대한민국100’사업의 두 번째 답사행사인 ‘국치의 길을 걷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참여자들은 오후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조선통감관저 터 ~ 조선총독부 터 ~ 노기신사 터 ~ 한양공원 비석 ~ 조선신궁 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었다. 통감관저 터에 세운 `거꾸로 세운 동상`과 `기억의 터` 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공원 남쪽 문화마당에 C-47 수송관을 설치했다. ⓒ최용수

다시 돌아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송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공원 남쪽 문화마당에 C-47 수송기를 설치했다. 해방 3일 후인 1945년 8월 18일, 중국 시안(西安)비행장에서 이륙한 C-47 미군 수송기가 경성비행장(현 여의도공원)에 착륙했다. 비행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진대원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 등이 타고 있었다. “보았노라 우리 연해의 섬들을 / 왜놈의 포화 빗발친다 해도 / 비행기 부서지고 이 몸 찢기워도 / 찢긴 몸이 연안에 떨어지리니 / 물고기 밥이 된들 원통치 않으리 / 우리의 연해 물 마시고 자란 고기들 / 그 물고기 살찌게 될 테니” 비행기가 우리 연안 서해의 상공에 들어서자 이범석 장군이 쓴 글이다. 이들은 광복 이후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자 중국전구 미군사령부 ‘사절단’과 함께 날아왔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저항과 미군 사령관의 요구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국무위원 이시영 등이 이 비행기로 귀국하게 된다. 여의도공원에 설치된 C-47 수송기 모습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는 공군과 협조하여 여의도공원 남쪽 문화마당에 C-47 수송기를 설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비상하듯 고개를 든 C-47 수송기의 모습은 경성비행장 활주로에 착륙하던 순간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C-47 전시관 현장 해설사(이의근)는 “하루 수십 수백 명의 시민이 찾아와 현재까지 전시관을 찾은 시민은 6만6,000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콘서트에 참석한 모두가 독립군가 `압록강 행진곡`을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18일 저녁, C-47 수송기 앞 야외무대에서는 가 열렸다. 콘서트는 공군군악대와 의장대의 공연으로 시작해 시민들이 부르는 항일 독립군가, 광복군에 대한 역사 토크로 이어졌다.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로는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과 연주자, 독립유공자 후손, 공군군악대·의장대 장...
`시민토론캠프 310`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모습 ⓒ최용수

시민 310명, 3·1운동 100년을 이야기하다

`시민토론캠프 310`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모습 지난 8월 14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100년’이란 주제로 첫 번째 ‘시민토론캠프 310’이 개최되었다. 약 2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토론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이 진행하였다. 오프닝 문화공연부터 8개 주제에 대한 소그룹 심층 토론 발표가 있고, ‘시민위원 310’으로 선정된 시민들에게 서울시장이 직접 위촉장을 수여하는 순서까지 4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오프닝 문화공연은 손병희 가수가 이끌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여든을 넘긴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목청을 다듬어 힘껏 노래 불렀다. 특히 일제 치하 독립군이 불렀다는 ‘신독립군가’ 배움의 시간은 피가 용트림하면서 진군의 기상을 느껴보기에 충분했다. 독립운동의 기운이 시청사에서 울려 퍼졌다. 그룹별로 나누어 심층토론을 펼친 시민들 이어서 심층 토론은 8개 조로 나누어 소주제별로 2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펼쳐졌다. 3·1운동 대표로 선정된 ‘33인’의 리드로 소그룹 토론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과 한국 공화정의 역사, 독립운동과 여성, 3·1운동과 종교인의 역할, 독립운동 후손에 대한 사회적 대우 등에 대하여 시민위원들의 참신하고 솔직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룹별 토론에 대한 정리된 의견은 전체회의에서 요약 발표하였다. 토론결과를 발표하는 시민들(좌), 박원순 시장에게서 위촉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시민위원들(우) 토론 및 발표가 끝나고 박원순 시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건국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과 서울시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이어서 ‘시민위원 310’으로 선정된 시민들에게 위촉장 수여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인하여 서울시청 대회의실로 옮겨 진행되었다. 서울광장이야말로 1919년 3월 1일 7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대한독립을 힘차게 외쳤던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