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100년 전 2월 8일에 외친 ‘독립선언’ 세계에 알려요!

3·1운동 100주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7일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이 ‘2.8독립선언’ 내용으로 교체됐다. 100년 전인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의 기독교청년회관(현 재일본 한국YMCA)에서 조선인 유학생 수백여 명이 조국독립을 선포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심장부에서 전 세계를 향해 일제가 한국을 침략한 정황과 일제의 폭력성에 대해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의지를 밝혔던 역사적인 '2.8독립선언'이다. '2.8독립선언'은 이후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내용의 기미독립선언서와 범민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시가 2.8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교육청, 사이버외교관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와 공동으로 '2.8독립선언서'를 번역해 총 5개 언어로 전 세계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100년 전 조국독립의 염원과 뜻이 현재를 사는 시민들에게도 쉽게 와 닿을 수 있도록 기존 국한문체로 쓰여진 선언문은 읽기 쉽게 풀어 쓰고, 이를 4개 언어(영어, 일본어, 중국어, 에스페란토어)로 번역했다. 특히, 중립적인 국제 공용어이자 식민지 청년들에게 가장 선진적인 의미를 가졌던 에스페란토어로도 번역했다. '2.8독립선언서'는 8일 오후 2시 3‧1운동 100주년서울시기념사업 공식 홈페이지와 반크가 운영하는 ‘독립운동가의 꿈’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반크는 선언문을 전 세계에 있는 한글학교와 해외 한인단체에,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전 학교에 공문 형식으로 각각 배포할 예정이다. '2.8독립선언서'는 같은 해 2월 1일 만주 지린에서 발표됐던 ‘대한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았는데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조소앙 선생이 도쿄에 파견돼 유학생들을 지도해 선언서 작성이 이뤄졌다. 당시 와세다 대학교 학생이었던 이광수가 초안을 작성했다. 2.8독립선언의 주체들은 국한문체의 선언문을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 3·1운동 당시의 종로 일대

3·1운동 역사의 현장 속으로…시민답사 신청하세요

서울 3·1운동 당시의 종로 일대 서울역사편찬원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서울 곳곳의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는 시민답사를 진행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함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해외로까지 전파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인 3·1운동은 국내외 항일독립운동의 원동력으로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기억되고 있다. ① 3월 9일, 첫 답사는 3·1운동 태동의 현장을 찾아간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당시 각 종교의 민족지도자들의 회합을 보여주는 장소와 3·1운동의 중심이었던 학생들의 움직임을 따라가 볼 예정이다. ② 3월 16일, 두 번째 답사는 독립선언서의 인쇄 과정과 태화관에 모였던 민족대표 33인들, 그리고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벌어졌던 서울 3·1운동 그날의 만세시위가 실제로 서울 시내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 주요 현장들을 찾아간다. ③ 3월 30일, 세 번째 답사는 버스를 타고 이동, 서울에서 3·1운동이 확대 및 전파되는 과정을 따라가 본다. 당시 3월 1일 이후에도 지속된 서울에서의 만세시위가 언제,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라는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서울 사대문 밖에서 벌어졌던 만세시위의 현장을 방문할 것이다. ④ 4월 6일, 마지막 답사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체포와 재판, 그리고 수감과 순국의 현장을 방문한다. 만세 시위에 참가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어 재판 받았던 경찰서와 재판소 터, 수감되거나 순국한 형무소 등에서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답사는 총 4회에 걸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참가자 접수는 2월 8일부터 시작되며, 참가대상은 매회 40명씩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역사편찬원 홈...
정신여고 김마리아 선생 동상

3·1운동의 잔다르크 김마리아를 아시나요?

정신여고 에 세워져 있는 김마리아 선생 동상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600여 명의 조선 유학생들이 운집하였다. 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2·8독립선언’을 계획하였다. 이 자리에 여자 유학생 김마리아도 있었다.김마리아는 2·8독립선언문 10여 장을 복사해 몰래 숨겨 국내로 들어와 교육, 종교 분야 지도자들을 만나 동경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리고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이후 3·1운동 배후로 지목된 선생은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지만,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김마리아 선생은 일제 강점기 최대 여성 비밀 항일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대한민국 임시정보에게 독립자금을 보내기도 했다.“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고 했던 김마리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첫 여성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김마리아 선생(좌), 정신여고 김마리아관 입구 조형물(우)잠실 정신여고에 가면 김마리아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마리아 선생의 모교이자 선생이 교편을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1944년 숨을 거둘때까지 민족의 교육과 여성교육,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유품은 수저 한 벌이 전부로 현재 정신여고 김마리아관에 보관돼 있다.정신여고 ‘독립운동나무’에는 김마리아 선생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전해온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몇 달 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정신여학교(현재 잠실 소재 정신여고의 전신)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다. 일본경찰은 김마리아가 비밀리에 결성한 독립운동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학교 건물을 수색했다. 그러나 조직원 명부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당시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애국부인회를 결성한 김마리아는 일경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3·1 운동 관련 비밀 문서와 태극기, 한국 역사책 등을 교정 뒷마당에 있던 고목(古木) 구멍에 숨겨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이 나무는 수령 500년으로...
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대한제국 ‘환구단’에서 꼭 봐야 할 4가지

석조 삼문을 통해 바라본 황궁우 야경 “오전에 환구단에 임하시어 하느님께 제사하시고, 황제위에 나아가심을 고하시고,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태황제폐하, 황태후 폐하, 황태자 전하께 크게 하례(賀禮)를 올리니, 백관이 즐거워하더라. 집집마다 태극 국기를 높이 걸어 인민의 애국지심을 표하며,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얼굴에 즐거운 빛이 나타나더라.”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던 상황을 보도한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기사 내용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최초로 황제국이 됨을 하늘에 제사 드린 ‘환구단(圜丘壇)’은 어디일까? 한파가 계속되는 겨울 한복판,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는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이곳에서 동쪽의 도로를 건너다보면 빌딩 숲 사이에 큼직한 기와대문이 서있다. 대문과 이어진 담장 끝자락에는 ‘돌북’ 형태의 3개의 화강암 안내석이 나란히 놓여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유서 깊은 장소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2000년 10월 서울시가 조성한 ‘환구단 시민 광장’이다. 돌북 형태의 화강암 안내석 3개가 놓여있는 환구단 시민 광장 환구단(일명 환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한다. 1897년 고종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설치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원추형 제단을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고종은 황제로 등극한다. 이와 함께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대한제국의 탄생을 국내외에 선포하다. 당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등한 자주독립국가임을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대한이란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 계승되었고, 정부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제국 탄생의 상징이던 환구단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강제로 헐리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이 세워진다. 1960년대 후반 화재로 소실된 철도호텔 자리에 다시 들어선 것이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이다. 환구단은 호텔이 건축되면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음악 공모

3.1운동 100주년 기념곡 공모 ‘록·랩·발라드 가능’

서울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 음악 공모전 “오등은 자에 아음악”을 20일까지 개최한다 서울시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일 자유로운 장르와 주제의 음악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선정곡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콘서트와 8.15 광복주간 기념행사 등에서 공연으로 만날 수 있으며, 음원 사이트를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1946년 당시 문교부 의뢰로 만들어진 3.1절 노래가 있지만 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락, 랩, 발라드, 가곡, 동요 등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기념곡을 제작해 3·1운동의 역사와 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공모전 명칭은 ‘기미독립선언서’ 서두의 “오등(五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를 활용해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음악(我音樂)”으로 정했다. 서울시는 공모에 선정된 8팀에게 서울산업진흥원 미디어콘텐츠센터를 무료 대관해 음원 녹음을 지원하며, 우수팀 4팀에게 곡당 400만 원의 음원제작비를 지원한다. 공모전 지원곡은 3·1운동 포함 항일운동 관련 순수창작곡으로서 락, 랩, 발라드, 가곡, 동요 등을 포함하는 대중음악 장르의 곡(연주곡 제외)이다. 참여대상은 순수창작곡 제작이 가능한 개인 및 단체이며, 서울시가 주최하는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공연이 가능해야 한다. 다만 음원제작비는 창작자 명의의 개인사업자,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업체(개인사업자 또는 법인사업자) 또는 등록업체 소속 창작자에 한해 지원된다. 서해성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총감독은 “역사의 의미와 시대의 정신을 일깨우는 노래의 힘을 믿는다”며, “3.1운동 100주년 기념 노래가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탁 서울시 경제정책과장은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 공모전을 통해 젊은 세대 또한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우리 민족의 ...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안국역~탑골공원 일대가 삼일대로라 불리는 까닭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3․1운동은 일제강점에 저항하여 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피력한 대규모 민족운동이다. 우리 겨레는 이 운동을 1919년 4월 11일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갔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12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앞에 ‘100주년 기념 홍보탑’을 세웠다. 이 홍보탑은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모티브로 했다. 상해 현지에서 생산된 적색벽돌을 사용하고, 출입문도 시간의 흔적을 질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홍보탑 상단에는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정신과 임시정부의 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하는 의미로 100, 태극, 악수, 불꽃 등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슬로건을 표시했다. 서울시에서는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안국역과 탑골공원 사이, 삼일대로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서울시는 이곳을 ‘3․1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3․1운동의 7대 핵심거점을 선정, 연결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고, 각 거점 사이를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오는 삼일절 완공 예정이다. 7대 거점은 ▲안국역 5번 출구 앞 ▲독립선언문 배부 터(현 수운회관 앞)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북학회 터(현 건국주차장) ▲태화관 터(현 종로구 공영중차장) ▲탑골공원 후문 광장 ▲낙원상가 5층 옥상이다. 3.1운동 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인 7대 거점 그런데 왜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선정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1운동의 준비와 전개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3․1운동 준비 초기에는 천도교, 기독교 장로교계와 감리교계 등 종교계와 학생들이 제각각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거족적이고 일원화된 독립만세운...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모습

남한산성 겨울 풍경 속에서 만난 ‘만해 한용운’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모습 기해(己亥)년이 밝았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별한 새해를 맞아 민족대표 33인이자, 불교계를 대표한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만해 한용운을 만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그는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짓는다. 심우장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이란 뜻으로, 남향으로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돼 북향으로 지었다. 1944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생전의 발자취를 모아 ‘만해 기념관’이 탄생했다. 원래 성북동 심우장에 있던 만해기념관은 1990년 남한산성으로 옮겨졌다. “남한산성은 승군(僧軍)에 의해 축성된 호국(護國)의 상징입니다. 또한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역사적 장소여서 이곳으로 옮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만해 선생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기념관을 옮겼습니다.” 전보삼 기념관장이 기자에게 귀띔해준 기념관 이전 배경이다.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 가려면 지하철 8호선 산성역(번출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9, 9-1, 52번)를 타면 된다. 종점인 남한산성 정류장에 내려 ‘만해기념관’ 표지판을 따라 120여 미터 오르면 기념관이 나타난다. 상설종합전시실, 기획전시실, 교육관, 체험학습실 등 60여 평의 전시관과 야외조각공원으로 꾸며진 복합문화공간으로현재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돼 있다. 7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진 상설전시장 상설전시실에는 만해의 삶이 담긴 스토리를 따라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뜻을 세우다 ▲불교인으로의 지향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침묵의 미학 ▲설중매화 ▲심우장의 정절 ▲만해가 떠난 그 후 등 7개 소주제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일화, 초간본을 비롯한 160여종의 판본 및 그 외 800여 편이 넘는 연구서, 기념주화, 건국훈장 등 선생의 다양한 면면을 만날 수 있는 자료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상설전시장에서는 님의 침묵 초간본과 인도 시성 타고르...
서울시청사 로비에서 2019년 1월 20일까지 ‘빼앗긴 길, 한국상·장례 문화의 식민지성’ 전시가 열린다

알고 계셨나요? 삼베 수의·유족 완장은 일제 잔재

서울시청사 로비에서 2019년 1월 20일까지 ‘빼앗긴 길, 한국상·장례 문화의 식민지성’ 전시가 열린다 삼베로 수의(壽衣)를 만들어 고인에게 입히는 풍습을 전통적인 장례문화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풍습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34년 ‘의례준칙’을 통해 관혼상제 같은 우리의 전통 생활양식을 일본식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고인이 입었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했다. 삼베수의 뿐만 아니라 유족 완장과 리본, 국화로 치장한 영정 같이 오늘날 보편화된 장례문화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다. 서울시와 시립 장사시설을 관리‧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새해를 맞아 ‘빼앗긴 길, 한국 상‧장례 문화의 식민지성’이라는 주제의 장례문화 전시회를 연다. 1월 20일까지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 장례문화에 잔존하고 있는 일제의 식민지성을 집중 조명하고, 장례문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특히 한국인의 장례 전통을 말살하고 의식을 지배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시공간은 한 개의 터널구조물로 관객들은 한 개의 길을 걸으며 전시내용을 경험할 수 있다. 그 길은 실제보다 마치 먼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도록 디자인됐다. 한국 전통 장례용품인 만장(挽章)을 재구성하여 길로 엮음으로써 한국 상‧장례 문화가 거쳐 온 지난 100여 년 동안의 길을 담아냈으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권을 잃으면 삶과 죽음의 정체성도, 문화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의 : 서울시설공단 추모시설운영처 031-960-0223 , 어르신복지과 02-2133-7432 ...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있었다

서울-평양 교류 기대…경평축구 부활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경평축구' 전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9년 10월 8일, ‘경평축구대항전’이라는 축구대회가 역사적인 서막을 올렸다. 기록에 의하면, 운동부 기자 이원용과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최정연이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경성과 평양이 각각 축구단을 조직해 친선 경기를 갖자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축구를 매개로 경성과 평양이 도시 간 선의의 대결을 벌여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으로 요즘 말로 하면 ‘경평 더비’의 시작이었다. ‘경평 더비’는 1929년 10월 8일 경성팀(전경성군)과 평양팀(전평양군)의 첫 대회를 시작했지만 1930년 2회 대회 후 중단되었다. 그 후 1933년에 경성과 평양을 각각 대표하는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창단된 것을 기념해 ‘경성평양대항 정기축구전’이란 명칭으로 재개됐다. 그러나 이것도 1935년까지 열린 뒤 중단됐다. 다행히 ‘경평 더비’는 이후 다른 도시의 축구팀까지 더해져 ‘전조선도시대항 축구대회’, ‘3지방대항 축구전(경성, 평양, 함흥)’ 같은 도시 대항 축구대회로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42년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구기종목을 금지시키면서 모든 대회가 중단됐고, 해방 후 1946년 3월 25일 엄청난 관심과 열기 속에 다시 경기가 열렸지만 이번에는 38선에 가로막혀 다시 열리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제1회 경평축구대항전(전경성과 전평양 축구대항전)이 주최로 1929년 10월 8일 열렸다 그런데 왜 두 도시의 친선경기가 축구였을까? 바로 당시의 엄청난 축구 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축구 열기가 대단하지만, 지난 9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자료에 의하면, 축구는 구한말 도입돼 1910년대 전후로 인기가 오르면서 관련 체육단체가 창립되고 각종 축구대회가 열리는 등 축구 열풍이 거세져 ‘축구하면 조선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더구나...
8.15 기다리는 태극기와 무궁화

걸으면 보이는 역사! 강연+탐방 패키지 1일부터 접수

광복절 기다리는 태극기와 무궁화 서울시는 8월 14일, 15일 양일 간 3.1독립운동의 진원지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길’ 일대에서 ‘2019 3.1독립선언광장을 열다’란 주제로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행사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3.1운동 진원지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 터에 조성 중인 광장의 공식 명칭인 ‘3.1독립선언광장’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3.1독립선언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주요 프로그램은 ①역사강연+독립선언의 길 탐방 ②문화공연 : 서도민요 저녁콘서트, 태화 런치콘서트 ③해설이 있는 역사문화전시 ④역사 속 태극기 전시 등으로 구성됐으며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명 일시 장소 세부내용 태화학교&독립탐방 패키지 (역사강연, 독립선언의 길 탐방) 8.14(화) 16:00~18:30 태화빌딩 강연실 외 (사전예약)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대한민국역사, 함께 알립시다” 8.15(수) 10:30~13:00 태화빌딩 강연실 외 (사전예약) 최연 서울학교 교장 ‘태화관의 진실, 3.1독립선언’ 해설이 있는 역사문화전시(종로편) (역사문화전시+건축역사강연) 8.15(수) 14:00~16:00 태화빌딩 강의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사전예약) 김백영 광운대 교수 ‘도시는 역사다. 태화관길 이야기’ 태화런치콘서트 8.14(화) 12:30~13:00 태화빌딩 앞 싱어송라이터 김꽃 서도민요 저녁콘서트 8.14(화) 19:00~20:00 하나투어빌딩 로비 (사전예약/현장접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