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옛 조선신궁 자리, 남산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옛 조선신궁이 자리하던 남산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음악극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문을 연 기념식은 숙연하지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제가 우리 나이로 92살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아베한테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치며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고령이 무색하게 정정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은 특히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제작한 기림비를 서울시에 기증한 샌프란치스코 교민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미 2017년 샌프란치스코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바 있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이 이번에도 뜻깊은 동상을 세우는 데 주축이 되었다. 재단 설립자 김한일 대표 역시 “할머니들이 바라는 두 가지 소원은 일본의 사과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라며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서명에 참여해주기를 촉구했다. 또한 중국계 판사 출신으로 미국의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 (CWJC)의 공동의장인 릴리안 싱, 줄리 탕도 참석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학살과 만행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도 함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기림비는 시민들과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동상...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 핀 무궁화 꽃

8~15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무궁화 축제’ 열린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 핀 무궁화 꽃 서울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8월 8일부터 광복절인 15일까지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3.1운동 기념탑을 품고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서울 무궁화 축제’를 개최한다. 올해 ‘서울 무궁화 축제’는 ‘역사의 외침, 꽃의 함성’ 라는 주제로 ▲나라꽃 무궁화 100주 전시 ▲독립운동의 역사 속 무궁화 특별전 ▲ ‘무궁화’를 주제로 한 시민참여 행사로 꾸며질 예정이다. 우선 국립산림과학원의 지원을 받아 배달계, 단심계 등 국내‧외 품종별 무궁화 100주가 전시된다. 또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은 매일 4회씩 ‘무궁화 해설투어’가 진행된다. 해설사와 함께 서대문 독립공원 일대를 다니며 무궁화의 역사·의미·품종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무궁화 해설투어는 단체 10명 이상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이 가능하다. 역사 속 ‘무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기억할 역사, 새로운 탄생’ 특별 전시도 열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뜻과 의지를 되새기는 ‘영웅들의 무궁화 노래’ 16점을 만나볼 수 있다. 독립문 일대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에서 선정한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무궁화길이 조성된다. 시민체험 행사로는 13일에서 15일까지 3일간 ‘무궁화 공방’ 부스를 운영한다. ▴무궁화부채 만들기 ▴무궁화 폼클레이아트 ▴무궁화 페이스페인팅 ▴무궁화머그컵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2019 서울 무궁화 축제 포스터 아울러 ‘무궁화 소원터널’에 소망달기와 무궁화로 서울 지도를 완성하는 프로그램도 상시 운영된다. 한편, 8일 오후 6시에 진행되는 축제 개막식에는 시민이 기획하고, 시민이 만드는 플래시몹이 진행된다. 서울시민 100명이 모여 ‘아름다운 우리의 꽃 무궁화’ 노래에 맞춰 모두가 하나 됨으로써 무궁화 축제의 의미와 ...
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일상에서 독립역사를 마주하는 그날을 위해!

7월 2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협약식 및 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2일 서울시청에서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을 위한 협약식이 개최됐다.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7인의 독립운동가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을 기리는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용산구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공존’과 ‘개방’, ‘역사’라는 세 가지 원칙 하에, 독립운동가 묘역과 효창운동장이 공존해야 하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이곳의 역사가 온전히 구현되어야 함을 방향으로 설정했다. 효창공원은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1940년대에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충혼탑 설립을 명목으로 조선 왕실 무덤을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효창공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묘역은 원래 규모의 3분의 1로 줄었고, 도로로 둘러쌓이면서 고립된 공간이 되고 말았다. 광복이 되자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삼의사(1946년)와 임정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을 모시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기다리며 가묘를 조성했다. 그리고 1949년 7월 본인도 이곳에 잠들었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를 모신 최초의 국립묘지를 조성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거센 반대에 부딪혀 이장은 포기했으나, 운동장은 강행해 1960년 준공됐다. 1961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골프장 건설을 시도하다 저지당했다. 이후 공원에는 반공투사 위령탑,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 시설 등이 들어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효창공원 재조성 계획은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네 기관이 업무협약을 통해 이러한 암초를 모두 끊어내고 미래 효창공원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식일 열렸다

겨레의 큰 스승 김구 선생 추모 낭독회 참가기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70년 전인 1949년 6월 26일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이 자객 안두희의 총탄에 의해 쓰러진 날이다. 지난 6월 26일,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추모식과 함께, 묘소 앞에서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추모 낭독회’가 열렸다.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총감독의 진행으로 추모 낭독회에서는 백범 김구의 증손자인 김용만 씨와 이종찬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장, 이종걸 민주당의원,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사무총장 등이 함께 참여해 시민들과 백범일지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윤봉길의사의 장손녀 윤주경 여사도 본인이 제일 감명 깊게 느꼈던 부분을 낭랑히 읽어 내려갔고 가끔 목이 메기도 했다. 백범일지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상편과 해외에서 피신과 유랑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을 하던 상황을 기록한 하편으로 구분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 묘역 앞에서 백범일지 낭독회가 열렸다. 먼저 백범의 증손자인 김용만 씨의 낭독이다. 백범의 나이 53세에 겨우 10살과 7살의 어린 아들(김인과 김신)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글이다. “지금 이 글을 기록하는 것은 장차 너희들이 장성하여 나의 경력을 알고 싶어 할 정도가 되면 보여주라고 부탁한다. 결코 너희 형제가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니 동서고금의 수많은 위인 중에서 가장 숭배할 만한 이를 택하여 스승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아버지이면서도 자기 외 다른 사람도 존경할 사람이 많다는 것, 그들의 장점도 본받으라는 유서이자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 시민위원은 ‘나의 소원’ 귀절을 인용하였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
대한민국연극제 공연이 열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로비

독립운동가 홍범도, 연극으로 부활하다!

대한민국연극제 공연이 열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로비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예술계에서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선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을 주제로 한 카자흐스탄 고려극작의 작품을 공식 초청했다. 실제로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고려인 3세, 4세 배우들이 한국어로 하는 공연이다. 대한민국연극제는 국내 유일의 전국연극제로 지난 6월 1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6월 23일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 예술극장을 찾았다. 연극 ‘날으는 홍범도 장군’을 관람하러 각계 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2층 로비에서는 ‘배우의 얼굴, 이것이 연극이다’ 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학로를 함께 지켜온 사진작가 김명집, 최용석과 116명 배우들의 협업으로 기획되었다. 연극에 문외한인 필자에겐 낯설었지만 연극계의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2층 로비에선 연극인 116명에 대한 사진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날으는 홍범도 장군’, 그는 누구인가? 학창시절을 거쳤던 사람들이라면 한국사 시간에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은 한때 잊혀진 독립운동가였다. 왜 그랬을까? 머슴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그는 강원도 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1920년 6월 7일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 해 10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은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했다. 이렇듯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과 맞서 ...
지하철 6호선 내 전시된 보훈정신을 담은 캘리그래피 및 문인화 작품

나라사랑 작품 가득! 6호선 ‘보훈문화열차’ 타봤어요

지하철 6호선 내 전시된 보훈정신을 담은 캘리그래피 및 문인화 작품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선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하철 6호선은 1개 열차를 ‘달리는 보훈문화열차’로 꾸며 보훈정신을 담은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달리는 보훈 문화열차’는 차량 내부 광고가 있던 자리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보훈정신을 담은 유명 작가들의 창작 서예, 캘리그래피, 문인화 등 232점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열차 칸마다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있어 도착역에 내리기 전까지 다른 칸으로 옮겨 다니며 감상해도 좋겠다. 6호선 열차에서 만난 ‘대한독립’ 캘리그래피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강한 힘이 느껴지는 창작 서예이다. 힘차게 써진 ‘대한독립’, ‘평화로운 나라’와 같은 글씨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단견심을 고취시켜 준다. 5월 10일까지 달리는 보훈문화열차를 운행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가 협력해 지하철에 광고 대신 문화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문화예술철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 6호선 내 ‘웃는 고양이’ 예술작업 등 지속적인 문화예술철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달리는 보훈문화열차’는 5월 10일까지 평일 16회, 주말 8회 운행한다. 해당 열차 편성은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에 공지된 ‘보훈문화열차 운행시간표’를 참조하여 원하는 역에서 승차하여 관람하면 된다. 서울시 직원기자단 ‘홍당무 기자’ 앞으로 ‘홍당무 기자’가 서울시 주요 사업 및 정책에 대해 알기 쉽게 알려드립니다! ‘홍당무 기자’는 서울시 및 산하기관 사업담당자로서, 담당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서울시 숨은 정보를 속속들이 전해드립니다.서울시 홍보를 당당하게 책임질 ‘홍당무 기자’의 활약을 기대해 주세요. ...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열사가 있다

2024년 달라지는 효창공원 지금 가보니…

효창공원에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의열사가 있다 집 가까이 있어 자주 찾던 효창공원이 2024년 변모한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 효창공원을 독립운동 기념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무척 반가웠다. 관련기사 ☞ 용산 효창공원 ‘독립운동 100년 기념공원’으로 만든다 그동안 효창공원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지역 사람들 이외에는 많이 찾지 않지 않는 편이라 아쉬웠었던 것도 사실이다.  공원 내부를 보면 여느 근린공원과는 달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효창공원 입구 효창공원은 원래 효창원으로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생모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 속의 박씨 및 영온옹주 3개의 묘가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사적의 격하를 위해 공원법을 제정하고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개칭해 강제 이장케 했다. 그런 곳이었지만, 이곳에는 현재 김구 선생의 묘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사의 묘,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안중근 가묘까지 삼의사와 임정요인 더욱이 임시정부의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의 묘까지 있는 중요한 곳이다. 정문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임정요인 묘역 효창공원은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을 따라 올라가면 임정요인 묘역이 나온다. 설명을 읽고는 태극문양이 새겨진 문을 지나 윗부분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임정요인 묘소에 다다른다. 임정요인을 생각하면서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그 옆으로 가면 원효대사 동상과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한다. 백정기 무궁화를 비롯, 5명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딴 무궁화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시 정문 쪽으로 내려오면 현재 쓰이지 않는 연못과 제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뒤로 각 5명의 이름을 딴 무궁화들이 있는데 단지 이름만 딴 무궁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김구 무궁화는 마곡사에서, 윤봉길 무궁화는 윤봉길 생가 터에서...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억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선 가장 활발하게 3·1운동이 전개되었던 서울과 평양의 모습을 담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일제의 강제 병합에 의해 식민지가 된 조선의 현실은 비참했다. 착취와 차별은 일상이었고, 군대와 경찰의 무장으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이 먼저 독립선언을 외쳤고, 이는 3월 1일 만세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다. 총과 칼로 무장하고 조선을 탄압했던 일본군 모습 2월 24일 천도교, 기독교계 학생들은 각각 준비한 독립선언을 함께하기로 하고, 불교계도 참여하게 된다. 3월 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을 개최하기로 하고 보성사에서 비밀리에 인쇄한 것을 전국으로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의 준비를 마쳤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거리행진을 시작하면서 시민들까지 합세하게 되었다. 지역, 신분, 계층을 떠나 이 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고, 전국으로 쉼 없이 이어졌으며, 국외에서도 함께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민족대표 33인 이름으로 발표된 3.1독립 선언서. 전국으로 전달되어 만세운동을 확산시켰다 평양에서는 2월 26일 태극기와 전단을 미리 만들었으며 28일에는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3월 1일 오후 1시 장로교는 장대현교회 앞마당인 숭덕학교 운동장에서, 감리교는 광성학교 근처 남산현교회에서, 천도교는 설암리교구당에서 고종의 봉도식과 독립선언식을 하고 행진을 시작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하였다.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가 함께한 평양 만세운동 만세운동을 전국에 전파하는 데 ‘지하신문’은 큰 역...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고맙고 아픈 태극기史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 오늘 다시 보았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大韓國)……”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태극기’라는 제하의 시 앞부분이다. 2009년 5월, 해체 복원공사를 시작한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벽에서 보퉁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물건을 싼 보자기는 귀퉁이가 불에 타고 얼룩져 낡았지만 분명히 태극기였다. 그 안에는 1919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발행된 신문기사와 여러 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3·1만세운동 이후를 전하는 ‘조선독립신문’과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신채호가 발행한 ‘신대한’ 등 무척이나 귀하고 드문 자료였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꾸짖는 경고문도 있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누가 왜 법당의 벽을 파고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낡고 때 묻고 찢긴 태극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장기 위에 청색을 덧칠해 태극 문양을 만든 태극기라는 점이었다. 만든 이의 의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태극기였다. 그 후 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 밝혀진 것은 이 보퉁이를 벽에 감춰 보관한 이가 백초월 스님으로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20대에 이미 큰스님 반열에 올랐던 스님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20년 동안 숱한 체포와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또 다시 독립운동 자금 건으로 수감되었던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순국한 스님의 시신은 현재 자취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이 진관사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날 광...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을 수놓은 1만 5,179개의 별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다. 3·1절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3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광장은 독립광장으로 선포됐고, 서울광장에서는 ‘꽃을 기다립니다’ 추모전시가 열렸다. 1만 5,179개의 꽃이 겨울밤을 수놓으니 광장 전체가 향기로 가득했다.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독립을 향한 울음이고 슬픈 노래며 광복된 조국을 간절히 보고 싶은 꽃이었다. 이 전시는 대지의 별로 이 땅에 돋아난 1만 5,179명의 독립유공자를 역사의 은하수로 표현한 것이다. 불빛의 색은 태극기의 색 비율과 일치시켜 흰색, 파랑, 빨강으로 하였고, 등불을 세우고 있는 기둥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서해성 총감독이 독립광장 선포의 경과를 해설하고 있다 서울시 3·1운동 100주년기념 310 시민위원들은 3월 5일 밤 서울광장 야간전시를 관람하였다. 스카이뷰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고, 기자 자신도 독립유공자의 자녀이기에 참여했다. 야간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보는 서울광장의 야경은 거대한 둥근 은빛 은하수 물결이었다. 시간마다 바뀌는 색의 향연, 조국 산야에서 북만주 광야에서 외쳤던 독립 함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들리는 듯했다. 야간투어를 하는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시민위원들 하나하나의 기둥은 지하로 선을 연결하여 불이 들어오도록 했다. 마치 은하수가 광장을 수놓은 듯했다. 밤이면 태극기의 색인 파랑, 빨강, 흰색이 조화를 이루었고, 기둥은 저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출생연도, 사망연도가 기록된 함축된 인명부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자들이 많았다는 것. 독립운동으로 3백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활동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얼마 동안 기억하고 있을까?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이름 없는 군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은하수 별빛으로 변한 서울광장 독립광장으로 선포된 이곳은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한 환구단과 가깝고 마지막 황궁인 덕수궁과 도보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