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건물이 생경스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모습

서대문독립공원, 독립지사들의 뜨거운 숨결을 찾아서

올해는 3·1운동 101주년이 되는 해로 100주년이었던 작년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뜻 깊은 행사가 곳곳에서 취소되고 모든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임시 휴관 중에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삼일절을 맞아 서대문독립공원을 찾아가보았다.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서대문독립공원은 독립문을 비롯해 3·1독립선언기념탑, 서재필박사 동상, 서대문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고루 산재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독립지사들의 숨결이 곳곳에 깃든 이곳은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대문독립공원의 우뚝 선 독립문(사적 제32호) ⓒ박분 서대문 독립공원에 이르면 우뚝 선 독립문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1896년 세워진 독립문은 화강암을 쌓아 만든 석조문으로 프랑스의 개선문과 모습이 닮아 있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으로 현판석 앞뒤에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 쓰고 그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했다.   한글과 한자가 앞뒤로 새겨진 독립문 현판석 ⓒ박분 독립문은 ​대한제국 당시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독립문이 세워진 자리는 본래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영은문이 세워져 있었다.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금의 독립문을 건립했으니 외세로부터 독립하려는 결연함을 엿볼 수 있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항일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1992년에 서대문구 현저동에 조성한 공원이다. 독립공원이 위치한 곳은 서울구치소가 있던 자리이다. 서울구치소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저항의 현장이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의 동상 ⓒ박분 독립문 가까이 보이는 동상은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다. 높이 치켜든 손에 들린 것은 그가 창간한 ‘독립신문’으로, 이 신문은 19세기 말 한국 사회의 발전과 민중계몽에 큰 역할을 한 기념비적인 신문이다. 선생은 독립협...
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잊어서는 안 될 33인의 별, 330개의 빛으로 기억하다

1919년 3월 1일,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관에서는 33인의 민족대표가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2019년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해로, 서울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태화관 터에 ‘3·1 독립선언광장’을 조성했으며, 지난 12월 23일 오후 6시부터 ‘3·1 독립선언광장 조명 점등식’을 개최했다.3.1 독립선언광장의 우측 전경 ©민정기3.1 독립선언광장의 좌측 전경 ©민정기‘3·1독립선언광장’에는 백두산과 한라산, 하얼빈과 카자흐스탄 등 주요 독립운동 7개 기념지에서 운반된 자연석이 사용되었으며, 100개의 마천석은 3·1운동 100주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바닥에 쓰인 330개의 조명은 소리와 음향에 반응하여 여러 가지 패턴을 연출하며, 이는 민족사의 별이 된 독립운동가를 상징한다.좌측부터 백두산 천지를 상징하는 우물과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하는 수로의 끝 ©민정기광장 한복판에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상징하는 우물과 수로를 조성하고, 그 사이에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다. 수로의 넓이는 450mm로 이는 광복을 이뤄낸 1945년을 상징하며, 수로 길이는 2만4,640mm로 이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2,464리의 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광장 우측에 위치한 소나무 세 그루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좌측에 위치한 느티나무 한 그루는 민족 공동체를 상징하며, 조경에 쓰인 풀과 나무 등은 모두 우리나라의 고유 품종으로 심었다고 한다.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공연하고 있는 '퍼포먼스 그룹 오' ©민정기이 날 행사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에서는 ‘퍼포먼스 그룹 오’의 공연이 펼쳐졌다. 쌀쌀한 날씨인 만큼 다양한 뮤지컬 공연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후, ‘광장에서 만나는 안중근’을 주제로 뮤지컬 <영웅>의 한 장면을 통해 독립투사들의 투쟁이야기를 공연했다. 광장의 취지와 어울리는 훌륭한 공연에 관람중인 시민들은 큰 호응으로 응답했다.공연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김남중과 엔클래식 앙상블 단원들 ©민정기1부가 끝난...
3ㆍ1독립선언광장의 점등식 축하공연, 뮤지컬 영웅 모습

빛으로 다시 태어난 3.1독립선언의 현장

옛 태화관터에 마련된 삼일독립선언유적지 기념비 ⓒ김은주 서울을 거닐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역사적 유적지와 마주치게 된다. 그 당시의 모습은 없어졌을지라도 그곳이 과거 우리 역사 속 어느 순간을 함께 했던 공간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기에 우리는 마주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인사동 태화관터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3.1운동의 진원지였다. 태화관터에 설치된 3ㆍ1운동 100주년 기념비는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3.1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3.1 독립선언광장의 조명 점등식 현장 모습 ⓒ김은주 서울시는 이같이 역사적으로 기억해야할 가치가 있는 이곳을 ‘3.1 독립선언광장’으로 조성했다. 원래 이곳은 종로구의 공영주차장과 태화빌딩의 부설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다. 광장의 이름은 국민을 대상으로 이름 공모전을 통해 선정했으며 광장에 사용된 돌은 독립운동이 펼쳐진 한라산, 카자흐스탄 등 국내외 10개 지역에서 공수해왔다. 3.1독립선언광장의 조명 점등식 축하공연에 함께하는 시민들의 모습 ⓒ김은주 광장의 양끝은 백두산의 천지와 한라산의 백록담을 상징하며 광장의 바닥에는 마천석 100개와 330개의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3.1운동 100주년을 뜻하는 숫자 100과 33인의 민족대표를 상징하는 330이라는 의미를 넣어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을 만들었다. 3.1독립선언광장의 조명 점등식 축하공연인 뮤지컬 갈라쇼의 모습 ⓒ김은주 1년 여 기간 동안 공사를 거쳐 드디어 지난 23일 3.1독립선언광장의 점등식을 거행했다. 3.1독립선언광장 조명 점등식은 불빛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누구나 이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점등식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주는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서해성 총감독의 독창적인 아이디...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옛 조선신궁 자리, 남산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옛 조선신궁이 자리하던 남산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음악극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문을 연 기념식은 숙연하지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제가 우리 나이로 92살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아베한테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치며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고령이 무색하게 정정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은 특히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제작한 기림비를 서울시에 기증한 샌프란치스코 교민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미 2017년 샌프란치스코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바 있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이 이번에도 뜻깊은 동상을 세우는 데 주축이 되었다. 재단 설립자 김한일 대표 역시 “할머니들이 바라는 두 가지 소원은 일본의 사과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라며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서명에 참여해주기를 촉구했다. 또한 중국계 판사 출신으로 미국의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 (CWJC)의 공동의장인 릴리안 싱, 줄리 탕도 참석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학살과 만행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도 함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기림비는 시민들과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동상...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억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전경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선 가장 활발하게 3·1운동이 전개되었던 서울과 평양의 모습을 담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일제의 강제 병합에 의해 식민지가 된 조선의 현실은 비참했다. 착취와 차별은 일상이었고, 군대와 경찰의 무장으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이 먼저 독립선언을 외쳤고, 이는 3월 1일 만세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다. 총과 칼로 무장하고 조선을 탄압했던 일본군 모습 2월 24일 천도교, 기독교계 학생들은 각각 준비한 독립선언을 함께하기로 하고, 불교계도 참여하게 된다. 3월 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을 개최하기로 하고 보성사에서 비밀리에 인쇄한 것을 전국으로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의 준비를 마쳤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거리행진을 시작하면서 시민들까지 합세하게 되었다. 지역, 신분, 계층을 떠나 이 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고, 전국으로 쉼 없이 이어졌으며, 국외에서도 함께 만세운동을 진행했다. 민족대표 33인 이름으로 발표된 3.1독립 선언서. 전국으로 전달되어 만세운동을 확산시켰다 평양에서는 2월 26일 태극기와 전단을 미리 만들었으며 28일에는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3월 1일 오후 1시 장로교는 장대현교회 앞마당인 숭덕학교 운동장에서, 감리교는 광성학교 근처 남산현교회에서, 천도교는 설암리교구당에서 고종의 봉도식과 독립선언식을 하고 행진을 시작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하였다.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가 함께한 평양 만세운동 만세운동을 전국에 전파하는 데 ‘지하신문’은 큰 역...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고맙고 아픈 태극기史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 오늘 다시 보았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大韓國)……”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태극기’라는 제하의 시 앞부분이다. 2009년 5월, 해체 복원공사를 시작한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벽에서 보퉁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물건을 싼 보자기는 귀퉁이가 불에 타고 얼룩져 낡았지만 분명히 태극기였다. 그 안에는 1919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발행된 신문기사와 여러 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3·1만세운동 이후를 전하는 ‘조선독립신문’과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신채호가 발행한 ‘신대한’ 등 무척이나 귀하고 드문 자료였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꾸짖는 경고문도 있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누가 왜 법당의 벽을 파고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낡고 때 묻고 찢긴 태극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장기 위에 청색을 덧칠해 태극 문양을 만든 태극기라는 점이었다. 만든 이의 의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태극기였다. 그 후 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 밝혀진 것은 이 보퉁이를 벽에 감춰 보관한 이가 백초월 스님으로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20대에 이미 큰스님 반열에 올랐던 스님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20년 동안 숱한 체포와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또 다시 독립운동 자금 건으로 수감되었던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순국한 스님의 시신은 현재 자취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이 진관사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날 광...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꽃을 기다립니다" 전시

서울광장에 15,179개 역사의 별이 쏟아지던 날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꽃을 기다립니다" 전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는 '만세행진'과 '100년 대합창'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공연과 전시 행사가 펼쳐졌다. 특히 올해 서울시 3·1운동 관련 행사는 ‘일상 속에서 역사를, 역사 속에서는 일상을’ 시민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추진돼 신선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서울광장에서 3월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독립유공자 기억의 공간 “꽃을 기다립니다” 전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의 백미(百媚) 아닐까 싶다. 3일 동안의 짧은 전시였으나, 그 감동과 기억은 여전히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꽃을 기다립니다”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해 기획된 독립유공자 추모 전시다. 서울광장에 독립유공자 1만 5,179명이 이름과 생존기간이 새겨진 ‘등불’을 설치했는데, 지난 6일 기자는 ‘시민위원310’의 자격으로 ‘등불(별)’ 스카이뷰 관람 행사에 다녀왔었다. 이날 안내와 해설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이 진행했다.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이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도서관 옥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서울광장은 마치 은하수 카펫을 펼쳐놓은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등불 색은 흰색·파랑·빨강으로 태극기의 색 비율과 일치를 이루게 했고, 등불을 받치고 기둥은 검은 색으로 구성했다. 3·1운동 100주년을 의미하는 ‘숫자 100’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서울광장에서 펼쳐진 "꽃을 기다립니다" 전시 서울도서관에서 나와 서울광장으로 향하니 등불로 환생한 유공자들이 서울광장에 영혼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대한민국의 향후 100년을 비춰주는 희망의 불빛 같았다.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지 말며, 어느 한 사람만을 칭송치도 말라.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이름 없는 분들이 더 위대하다.” 전시를 함께 둘러본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시민...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을 수놓은 1만 5,179개의 별

1만 5,179개의 꽃이 장식된 서울광장 서울광장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다. 3·1절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3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광장은 독립광장으로 선포됐고, 서울광장에서는 ‘꽃을 기다립니다’ 추모전시가 열렸다. 1만 5,179개의 꽃이 겨울밤을 수놓으니 광장 전체가 향기로 가득했다.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독립을 향한 울음이고 슬픈 노래며 광복된 조국을 간절히 보고 싶은 꽃이었다. 이 전시는 대지의 별로 이 땅에 돋아난 1만 5,179명의 독립유공자를 역사의 은하수로 표현한 것이다. 불빛의 색은 태극기의 색 비율과 일치시켜 흰색, 파랑, 빨강으로 하였고, 등불을 세우고 있는 기둥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서해성 총감독이 독립광장 선포의 경과를 해설하고 있다 서울시 3·1운동 100주년기념 310 시민위원들은 3월 5일 밤 서울광장 야간전시를 관람하였다. 스카이뷰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고, 기자 자신도 독립유공자의 자녀이기에 참여했다. 야간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보는 서울광장의 야경은 거대한 둥근 은빛 은하수 물결이었다. 시간마다 바뀌는 색의 향연, 조국 산야에서 북만주 광야에서 외쳤던 독립 함성이 시공을 초월하여 들리는 듯했다. 야간투어를 하는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시민위원들 하나하나의 기둥은 지하로 선을 연결하여 불이 들어오도록 했다. 마치 은하수가 광장을 수놓은 듯했다. 밤이면 태극기의 색인 파랑, 빨강, 흰색이 조화를 이루었고, 기둥은 저마다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출생연도, 사망연도가 기록된 함축된 인명부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무명의 독립운동자들이 많았다는 것. 독립운동으로 3백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활동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얼마 동안 기억하고 있을까?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이름 없는 군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은하수 별빛으로 변한 서울광장 독립광장으로 선포된 이곳은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한 환구단과 가깝고 마지막 황궁인 덕수궁과 도보로 연...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 임시개방됐다.

“붉은 벽돌집에 다녀오다” 딜쿠샤 가옥 임시개방

3월 1일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가 임시개방됐다. 3.1운동을 세계에 처음 알린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Dilkusha)’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임시개방됐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딜쿠샤 가옥이 안 그래도 궁금했던 터라 딜쿠샤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대에 찼다. 딜쿠샤의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 경교장,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동네 길을 걷다 보니 평범한 골목길 안에 커다란 붉은 벽돌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림막으로 가려놓고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 그 옆에 아름드리 은행나무까지 이 집이 딜쿠샤란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울시가 마련한 시민참여 장소에는 사전 신청자와 관계자 등 7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는 의미있는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려고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이 특히 많았다. 딜쿠샤와 앨버트 테일러, 메리 테일러에 대해 소개한 전시물 그곳에 가보니 이 집을 왜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광산업을 하며 조선의 독립을 돕던 테일러 부부가 한국에서 추방 당한 후 딜쿠샤는 오랜 세월 방치됐다. 그러는 사이에 17가구에 달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불법건축물을 짓고 살았다. 딜쿠샤는 심하게 망가지고 훼손됐다. 빌라와 주택들이 이어진 좁은 골목에 낡고 음산한 딜쿠샤가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딜쿠샤 시민참여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이 집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찾아나선 후에야 딜쿠샤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2017년에는 등록문화재 제687호 ‘서울 앨버트 가옥’으로 등록됐다. 집 주변을 돌다가 돌에 새겨진 딜쿠샤라는 글씨를 보았다. 해설사와 현장 관계자에게 딜쿠샤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공사현황을 듣고 주변을 자유롭게 둘러보...
독립선언서 배부터인 ‘수운회관’ 앞에 설치된 시민마루의 모습. 나비모양의 명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 몫이다

삼일대로에 나타난 검은 돌들의 정체는?

독립선언서 배부터인 ‘수운회관’ 앞에 설치된 시민마루의 모습. 나비모양의 명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 몫이다지난 3월 1일, 100년 3·1운동의 함성을 되새겨보는 만세운동과 퍼포먼스가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같은 날, 일상 속에서도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 명소가 탄생했다. 독립운동 테마역 안국역과 탑골공원 사이를 연결하는 삼일대로 주요 거점 5곳에 ‘100년 시민마루’가 오픈된 것이다.‘100년 시민마루’는 시민들의 기부 등 참여와 정성으로 조성된 돌 구조물로 누구나 쉽게 찾아와 쉴 수 있는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더 감동스러운 것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교포, 중국 위안부 피해자 등 해외에서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서울시 310시민위원회) 단장, 우당 이회영·이은숙 부부의 후손인 이종찬(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위원장 등 기부에 참여한 국내외 인사 3,140명과 70여개 단체의 이름이 검은 벽돌에 아로 새겨졌다.‘100년 시민마루’의 특이한 점은 이름 대신 나비 모양의 문양으로 조각된 명부였다. 사유를 알아보니 이름을 알리기 부담스러운 235명의 사정을 배려해 그렇게 조각했다고 한다. 3·1운동 100년 시민마루 개막식에 참석한 시민들(좌), 시민마루 조성을 주최한 사단법인 사람숲의 양길승 이사장(우)‘100년 시민마루’는 약 650m 구간에 걸쳐 삼일대로 핵심거점 다섯 곳에 위치해있다. ▲독립선언문이 보관, 배포되었던 수운회관 앞, ▲3·1운동 전후 다양한 민족운동 집회 장소였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민족계몽운동의 산실 서북학회 터, ▲고종이 출생하여 왕위에 오른 12세까지 성장한 잠저인 운현궁 앞, ▲그리고 학생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던 탑골공원이다.3월 1일 오후 4시 개막식이 진행된 후 곧바로 ‘100년 시민마루 투어’가 이어졌다. 서해성 3·1절100주년기념사업 총감독의 안내로 행사 참가자 모두 3·1운동 거점들을 돌아보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