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 집터 아래에 위치한 홍난파 가옥

파란 눈 독립운동가 ‘베델과 테일러’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앨버트 테일러 묘지 “나는 죽지만 신보(申報)는 영생케 하여 대한민국 동포를 구하시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잠들어 있는 어니스트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의 유언이다. 광화문에서 경교장-서울교육청을 지나 10여분 올라가면 ‘달빛이 머무는 교남동, 행촌성곽마을’이라는 안내 간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베델의 집터가 있는 ‘월암근린공원’ 입구이다. 아흔이 넘은 동네 토박이 할머니는 “원래 베델의 집터는 저기였다”며 기자에게 공원 끝의 아파트를 가리켰다. 실제 집터는 아파트가 되었고, 지금은 공원 안의 표석만이 ‘베델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남아 있었다. 베델의 집이 있었던 월암근린공원 입구(좌), 어거스트 베델 집터(우) 어니스트 베델은 언론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국인 독립운동가이다.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특파원으로 한국에 온다.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해 곧바로 양기탁과 함께 국·한문 및 순 한글판, 영어판 등 3개의 신문을 발행한다. 그는 헤이그 특사파견, 국채보상운동, 시일야방성대곡 영어 발행, 황무지 개간권 반대 보도 등을 통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결국 공안을 해친다는 죄로 체포되어 6개월 근신형과 상하이로 끌려가서 3주간의 금고형을 살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1909년 5월 37세로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안장됐다. 고종은 베델의 독립운동을 평가하여 ‘배설(裵說)’이라는 한국명을 하사했고,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양화진 외국인묘소에 위치한 베델의 묘지 이어서 베델 집터 인근의 미국인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를 찾아 행촌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은행나무가 심겨진 권율 장군의 집터에서 내려다보면,  ‘딜쿠샤(DILKUSHA)’란 현수막이 나붙은 2층의 서양식 주택이 보인다. 테일러가 19년 동안 살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바로 그 집이다. 딜쿠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들 브루스...